학교폭력은 기록된다: 대학 입시가 회복해야 할 최소한의 윤리

2026학년도 대입 전형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수십 개의 대학에서 학교폭력(학폭) 이력이 있는 지원자들이 속출하며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있습니다. 화려한 생활기록부와 최상위권 성적조차 ‘폭력’이라는 오점 앞에서는 무력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입시 제도의 변화가 아닙니다. 우리 교육이 비로소 ‘타인의 삶을 파괴한 행위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지극히 당연한 윤리를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학교폭력은 기록된다: 대학 입시가 회복해야 할 최소한의 윤리

1. 학폭은 ‘실수’가 아닌 ‘선택’이며, ‘파괴’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학교폭력을 “철없는 시절의 일탈” 혹은 “성장통”이라는 비겁한 언어로 포장해 왔습니다. 가해자의 ‘창창한 미래’를 걱정하며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할 때, 피해자의 미래는 이미 산산조각 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학교를 떠났고, 누군가는 평생을 따라다닐 트라우마 속에 갇혔습니다.

가해자의 미래를 지켜주기 위해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했던 시간 동안 교실은 무너졌고 교육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습니다. 이제는 분명히 선언해야 합니다. 학폭은 실수가 아니라 타인의 인권을 짓밟기로 한 ‘선택’이며, 그 선택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사회적 대가가 뒤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2. 대학 입학은 권리가 아닌 ‘사회적 자격’입니다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가치를 존중하고 타인과 공존할 줄 아는 시민을 선발하는 공적 관문입니다. 사회에 진출할 때 음주운전이나 범죄 전력이 결격 사유가 되듯, 강제전학이나 출석정지 수준의 중대한 학교폭력 이력은 대학 입학의 배제 기준이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만약 폭력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제약 없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다면,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최악의 메시지를 주는 셈입니다.

“남을 괴롭혀도 공부만 잘하면 인생은 아무 문제 없이 굴러간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관행을 끊어내는 것이 바로 입시 현장에서의 학폭 반영 강화입니다.

3. ‘회복’의 전제는 면죄부가 아닌 ‘책임’입니다

일각에서는 학생에게 ‘회복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과문 몇 장과 형식적인 봉사 활동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회복은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직면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과정에서 시작됩니다.

입시라는 인생의 중대한 분기점에서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정의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합니다. ‘회복’은 결과를 지워버릴 권리가 아니라, 책임을 지고 변화하려는 고통스러운 노력이어야 합니다.

교육은 폭력 앞에서 결코 중립일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폭을 반영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닙니다. “어떤 폭력까지 용납할 것이며, 어떻게 엄격하게 제한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강화입니다. 대학마다 제각각인 기준을 일원화하고, 사각지대 없는 강력한 가이드라인을 구축해야 합니다.

교육은 폭력 앞에서 중립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폭력 앞에서의 중립은 방관이자 가해자에 대한 묵인입니다. 대학이 학폭 가해자를 탈락시키는 것은 보복이 아니라, 교육이 바로 서기 위한 가장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폭력은 기록되며,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이 명제가 말뿐인 훈계가 아니라 ‘탈락 통지서’라는 실질적인 결과로 증명될 때, 비로소 우리 학교는 폭력이 뿌리 뽑힌 안전한 배움터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글은 박동진 목사(소토교회)께서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