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신앙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지상명령처럼 다가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누군가에게는 숨이 막히는 가시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어린 시절 자신을 유기하거나 방치했던 부모가 세월이 흘러 나타나 ‘부모의 권리’를 내세우며 효도를 강요할 때, 자녀의 영혼은 말할 수 없는 혼란과 고통에 직면합니다. “나를 버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정말 주님의 뜻인가?”라는 처절한 질문 앞에,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공경의 참된 의미를 다시 짚어보아야 합니다.

부모의 유기는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한 죄입니다
가장 먼저 정립해야 할 사실은, 자녀를 버린 행위는 단순히 도덕적 결함을 넘어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를 정면으로 위반한 중죄라는 점입니다. 성경은 “자기 친속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고 엄중히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향해 느끼는 분노와 거부감은 불신앙의 결과가 아니라, 파괴된 정의에 대한 인간의 정당한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그 찢겨진 마음을 결코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고통의 현장에 함께 울며 서 계십니다.
공경은 맹목적 순종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공경’과 ‘순종’을 구분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공경(Honor)은 상대의 모든 요구에 무릎을 꿇는 굴종이 아닙니다. 공경은 그 부모가 비록 가해자일지라도,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한 ‘생명의 통로’였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 최소한의 인격적 태도를 의미합니다.
반면, 효도를 빌미로 한 부당한 경제적 요구하나 정서적 착취에 응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효도가 아닙니다. 부모의 잘못된 행위와 요구에 단호하게 선을 긋는 것은 불효가 아니라, 오히려 부모가 더 큰 죄를 짓지 않도록 돕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나 자신의 삶’을 지켜내는 청지기적 사명입니다.
‘주 안에서’ 세우는 건강한 경계선
에베소서 6장 1절은 “주 안에서” 순종할 것을 명시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와 평강이 깨어지는 상황에서는 멈춰 서야 함을 뜻합니다. 나를 버렸던 부모가 다시 나타나 내 삶을 휘두르려 할 때, 우리는 ‘건강한 거리두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만남이 영혼을 재차 파괴한다면, 대면하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만약 부모의 생존이 위태롭다면, 직접적인 관계 맺기가 아닌 공적 복지 체계나 제3자를 통해 최소한의 인도적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공경의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감당할 수 없는 정서적 도살장으로 자신을 몰아넣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당신의 진짜 아버지는 하나님이십니다
육신의 부모는 우리를 버릴 수 있고, 그 기능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약속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 육신의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과 인정을 그들에게서 받아내려 애쓰지 마십시오. 그것은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대신 당신의 참부모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십시오. 그분 안에서 당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을 때, 비로소 부모의 강요라는 사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용서는 당신의 자유를 위한 선언입니다
부모가 강요하는 효도에 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진정한 용서란 부모의 잘못을 없던 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모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맡겨드리고 나는 증오의 감옥에서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부모의 요구에 휘둘리지 않고 당신의 삶을 단단히 지켜내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승리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억지 효도의 희생양이 되기보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 안에서 온전한 한 인간으로 회복되길 원하십니다. 당신의 삶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존귀한 생명을 지키며,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이 힘겨운 시기를 건너가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글은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님께서 기고해 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