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넷을 키우다 보니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정 물건에 대한 유별난 집착은 저 또한 깊게 고민했던 주제입니다. 너덜너덜해진 이불을 절대 빨지 못하게 하고, 냄새나는 인형을 학교까지 가져가겠다고 떼쓰는 아이를 보며 “도대체 왜 이러나” 싶어 한숨 쉬어본 적, 다들 있으시지요? 오늘은 우리 아이가 왜 물건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제 경험과 전문 지식을 섞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도대체 왜 우리 아이는 물건에 집착할까요?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집스러운 행동 같지만, 그 이면에는 아이 나름의 생존 전략과 정서적 욕구가 숨어 있습니다.
1.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나만의 안전지대’
가. 위니코트의 ‘이행 대상(Transitional Object)’ 이론
영국의 저명한 소아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코트(D.W. Winnicott)는 아이들이 특정 물건에 집착하는 현상을 ‘이행 대상’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아이는 태어나서 얼마 동안은 엄마와 자신을 하나로 인식합니다. 그러다 점차 자신이 엄마와 분리된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데, 이때 아이는 필연적으로 분리 불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엄마를 대신해 자신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대상을 찾게 됩니다. 부드러운 담요, 곰 인형, 특정한 냄새가 나는 베개 등이 바로 그것이죠. 즉, 아이에게 이 물건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엄마의 또 다른 모습’이자,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중간 단계의 안식처인 셈입니다.
나. 아이 넷 엄마의 경험담
저희 셋째도 그랬습니다. 낡아서 솜이 다 빠져나온 토끼 인형 귀를 만지작거리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했어요. 처음에는 위생 걱정에 억지로 뺏어서 세탁기에 넣었다가, 아이가 숨이 넘어갈 듯 울어버려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이 아이에게 저 인형은 그냥 인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신이구나 하고 말이죠.
2.통제 욕구와 자아의 확장
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웁니다. 하지만 애착 물건만큼은 다릅니다. 내가 어디든 데려갈 수 있고, 내가 원할 때 만질 수 있으며, 내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아이 입장에서 물건에 대한 집착은 자신의 통제력을 확인하고 자아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나. 감각적 탐색의 즐거움
어떤 아이들은 특정 질감이나 냄새, 소리에 예민합니다. 손끝에 닿는 보들보들한 느낌이나 특유의 냄새가 아이의 뇌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정서적 결핍이라기보다는 감각 추구 성향이 강한 아이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3.부모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과 올바른 대처법
그렇다면 우리 부모님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작정 받아주자니 사회성이 걱정되고, 뺏자니 아이가 상처받을까 두렵습니다. 전문가들의 견해와 저의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안해 드립니다.
-
강제적인 분리는 금물입니다
가. 예고 없는 이별은 트라우마가 됩니다
가장 흔한 실수가 아이 몰래 물건을 버리거나 숨기는 것입니다. “더러우니까 버렸어”라는 말은 아이에게 “너의 가장 친한 친구를 내가 없애버렸어”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는 아이에게 깊은 상실감과 배신감을 줄 수 있으며,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켜 다른 물건에 더 강하게 집착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나. 아이의 감정을 존중해 주세요
“다 큰 애가 이게 뭐니?”, “창피하지도 않아?”와 같은 비난이나 조롱 섞인 말은 삼가야 합니다. 아이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읽어주세요. “이 이불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구나”, “엄마 냄새가 나서 좋구나”라고 공감해 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4.건강하게 이별하는 연습을 시켜주세요
가. 점진적인 거리 두기 (Desensitization)
물건과 떨어져 있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에는 집 안에서만 가지고 놀게 하고, 그다음에는 침대에서만, 나중에는 잘 때만 안고 자는 식으로 범위를 좁혀나가는 규칙을 아이와 함께 정해보세요.
나. 대체 활동과 대상으로 관심 돌리기
아이가 심심하거나 불안할 때 물건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가 물건에 집착하려 할 때, 더 재미있는 신체 놀이를 제안하거나 엄마 아빠와의 스킨십을 늘려보세요. “곰 인형 대신 엄마가 꽉 안아줄게”라고 말하며 따뜻한 체온을 나누는 것이 백 번 낫습니다.
4.위생 문제는 타협과 협상이 필요합니다
가. ‘목욕 시간’ 만들어주기
애착 물건이 너무 더러워졌다면, 아이에게 동의를 구하고 ‘인형 목욕 시간’을 만들어주세요. “토끼도 씻어야 안 아프대. 우리 같이 씻겨줄까?”라고 유도하여 세탁하는 과정을 놀이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탁되는 동안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곁에서 계속 안심시켜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 똑같은 물건 예비해 두기 (가능하다면)
만약 가능하다면 아이가 모르게 똑같은 물건을 하나 더 구비해 두는 것도 육아 꿀팁입니다. 교대로 세탁하며 사용할 수 있어 위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단, 예민한 아이들은 냄새나 촉감의 차이를 귀신같이 알아채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5.언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까요?
대부분의 물건 집착은 아이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면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재미있어지면서 애착 물건은 서랍 속 추억으로 남게 되지요. 하지만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일 때
물건이 없으면 어린이집이나 학교 등원을 거부하거나, 식사나 수면 등 기본적인 생활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는 단순한 애착을 넘어 병적인 불안장애나 강박증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
상호작용보다 물건이 우선일 때
사람과의 눈 맞춤이나 교감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특정 물건의 회전하는 부분이나 특정 부위에만 기계적으로 집착한다면 발달 과정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지만, 해답은 있다고들 합니다. 그 해답은 바로 ‘기다림’과 ‘믿음’인 것 같습니다. 아이가 물건에 집착하는 것은 스스로 독립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가 마음이 자라고 있구나”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시면 어떨까요? 엄마의 따뜻한 눈길과 여유로운 마음이 아이에게는 낡은 담요보다 더 포근한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오늘 제 글이 불안한 마음을 안고 계신 부모님들께 작은 위로와 팁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아이가 애착 인형을 놓는 그날까지, 저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