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넷을 키우다 보면 집안은 늘 시끌벅적하고 조용할 날이 없지만, 그 속에서도 아이마다 보여주는 독특한 행동 패턴 덕분에 매일이 새로운 배움의 연속입니다. 첫째 때는 아이가 조금만 울어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화장실조차 마음 편히 못 가던 시절이 있었지요. 엄마가 눈앞에서 사라지기만 하면 세상이 무너진 듯 울어대는 아이를 보며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죠. 엄마나 아빠가 외출할 때는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가, 정작 낮 시간 내내 함께 즐겁게 놀아주신 할아버지와 헤어질 때는 아주 쿨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서운함과 궁금증이 동시에 밀려오곤 합니다.
오늘은 넷째까지 키우며 몸소 겪은 경험과 전문가들의 식견을 더해, 왜 우리 아이들이 유독 부모에게만 강한 분리불안을 보이는지, 그리고 왜 할아버지와의 이별은 담담한지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아이의 눈에 비친 엄마 아빠라는 거대한 우주
분리불안은 사실 아이가 부모와 건강한 애착을 형성했다는 아주 중요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발달 심리학의 거장인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영아기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기본적 신뢰감’ 형성을 꼽았습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단순히 밥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존재를 넘어, 세상이라는 낯선 곳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안전 기지’ 그 자체입니다. 생후 6개월에서 24개월 사이의 아이들은 ‘대상 영속성’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라, 눈앞에서 엄마 아빠가 사라지면 그 존재 자체가 영원히 없어졌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아이 입장에서 엄마 아빠가 문밖을 나서는 것은 자신의 우주가 통째로 사라지는 공포와 같습니다. 넷째를 키우면서 느낀 점은, 아이들이 유독 부모에게만 강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부모를 향한 애착의 밀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는 아이의 생존과 직결된 주 양육자로서 아이의 모든 감정을 받아내고 투사하는 거울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부모와의 분리는 아이에게 단순한 헤어짐이 아닌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와의 이별이 쿨한 이유: 역할과 루틴의 차이
반면 매일 시간을 함께 보내는 할아버지와 헤어질 때 아이가 울지 않는 모습은 부모 입장에서 조금 의아할 수 있습니다. “나보다 할아버지를 덜 좋아하는 건가?” 혹은 “할아버지가 아이를 너무 오냐오냐 키우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요. 하지만 애착 이론의 창시자인 존 볼비(John Bowlby)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보통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놀이 파트너’이자 ‘즐거움의 원천’인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는 훈육과 돌봄, 규칙을 강조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할아버지는 아이의 요구를 조건 없이 수용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하시죠. 아이에게 할아버지는 즐거운 시간을 함께하는 소중한 존재이지만, 심리적 생존을 책임지는 ‘일차적 애착 대상’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할아버지와의 이별은 보통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거나, 할아버지가 귀가하시는 상황입니다. 즉, 아이의 생활 환경은 변하지 않은 채 인물만 바뀌는 것이기에 아이가 느끼는 불안감이 훨씬 적습니다. 반대로 엄마 아빠가 나가는 상황은 아이가 낯선 곳에 남겨지거나, 집의 중심축이 사라지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반응이 격렬해지는 것이지요.
건강한 독립을 돕는 부모의 태도와 “안녕”의 기술
아이의 울음소리에 마음이 약해져 몰래 집을 나가는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저도 첫째 때는 아이가 울까 봐 잠든 틈을 타서 도망치듯 나가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아이의 불안을 장기적으로 더 키우는 행동입니다. 어느 순간 눈을 떴을 때 세상의 전부인 엄마가 사라졌다는 경험은 아이에게 예고 없는 공포를 심어줍니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아이가 울더라도 짧고 단호하게, 그리고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는 확신을 주며 인사를 나누라고 조언합니다.
“엄마가 시장에 다녀와서 우리 OO이랑 맛있는 간식 먹을 거야. 시계 바늘이 여기 올 때 꼭 올게.”라고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비록 시계를 볼 줄 모르더라도 부모의 차분한 목소리와 약속하는 태도에서 안정감을 얻습니다.
넷을 키워보니 정말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이었습니다.
부모가 나갔다가 반드시 돌아온다는 경험이 반복적으로 쌓이면, 아이는 비로소 분리불안의 터널을 지나 독립적인 자아로 성장하게 됩니다. 할아버지와 헤어질 때 울지 않는 아이의 모습은 오히려 아이가 ‘누군가는 가고 누군가는 남는다’는 개념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하셔도 좋습니다.
조부모 육아의 지혜와 부모의 역할 분담
할아버지와의 긍정적인 관계는 아이의 정서 발달에 큰 자산이 됩니다. 영국의 아동 심리학자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는 아이가 여러 명의 성인과 신뢰 관계를 맺는 것이 사회성 발달에 큰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헤어질 때 아이가 울지 않는 것은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동시에, 아이가 할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얻었음을 의미합니다.
부모님들은 서운해하기보다 이를 육아의 조력자로 적극 활용하셔야 합니다. 부모가 외출할 때 할아버지가 아이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주시거나, 엄마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즐거운 활동을 제안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분리불안은 현저히 줄어듭니다. 아이는 할아버지를 통해 ‘엄마 아빠가 없어도 나는 즐겁고 안전할 수 있다’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분리불안은 성장을 위한 아름다운 진통입니다
아이의 울음은 “나는 엄마 아빠를 너무 사랑해요”라는 가장 강렬한 고백입니다. 지금 당장은 화장실 문앞까지 따라와 우는 아이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치시겠지만, 이 시기는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넷째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나니, 그때의 그 뜨거웠던 집착이 가끔은 그리워지기도 하더군요.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라며, 그 사랑이 충분히 채워졌을 때 비로소 부모의 손을 놓고 세상 밖으로 나아갑니다.
할아버지와 잘 지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우리 아이가 참 사회성이 좋구나, 든든한 조력자가 곁에 있어 다행이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세요. 부모를 향한 불안한 울음은 시간이 해결해주겠지만, 그 과정에서 부모가 보여주는 일관된 사랑과 신뢰는 아이의 평생 자존감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아이의 울음 섞인 인사에 흔들리지 말고, 따뜻한 미소로 “사랑해, 금방 다녀올게”라고 말해줄 수 있는 단단한 부모가 되시길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