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마음의 문을 여는 일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속은 헤아릴 길이 없다고 합니다. 사실 남의 마음속은 커녕 자기 마음조차 모를 때가 더러 있지 않나요? 마음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포착할 수 있다면, 그만큼 우리는 주변 사람과의 사귐에서 보다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흔히 허심탄회하게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나눠보자고 합니다. 허심탄회란 마음을 비우고 가슴속에 아무런 사념이 없는 상태이고, 흉금을 터놓는다는 것은 가슴속에 품은 생각을 다 털어놓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기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남과의 접촉이나 교섭에서 공감 또는 공감대의 형성을 그때마다 기대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화를 가로막는 마음의 벽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벽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로 손꼽히는 것이 편견 또는 선입관입니다.

상대편이 나에게 어떤 편견을 갖고 있다면 내가 그에게 아무리 좋은 말을 한들 효과가 나타날 리 만무합니다. 강사가 강연할 때 자기소개를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청중이 내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는 방향으로 분위기는 발전하고, 비로소 나는 청중을 향하여 설득력을 갖고 강연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상대편이 갖는 편견과 선입견을 그대로 방치해 둔 채 일방적으로 설득에 임해 봤자 효과는 전무합니다. 상대편은 계속 내게 등을 돌리게 될 뿐입니다.

 

둘째가 불신입니다.

우리 사회는 불신을 조장하는 장치가 참 많습니다. 그리고 불신을 자초하는 일도 많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따라 신의를 배반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한 피해가 때로는 인생을 망가뜨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내 말이 상대에게 설득력을 얻으려면 신용을 쌓아야 합니다.

 

셋째로 마음의 벽이 될만한 것은 이밖에도 많이 있다.

이를테면 반감, 욕구불만, 불안감, 좌절감, 심적인 압박, 자존심의 상처, 독선, 아집 등입니다. 내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벽이 쌓이지 않게 세심하게 배려할 때, 비로소 우리의 설득력은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폴로니아스가 햄릿에게 “무엇을 읽고 계십니까?”하고 물었을 때 덴마크 왕자는 대답하기를 “말, 말, 말”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햄릿에서 셰익스피어(W.Shakespeare 1564~1616)가 우리에게 전하려 하는 바는 말뿐 아니라 배우의 동작, 움직임, 표정 등으로도 표현됩니다. 때로는 배우의 침묵이 웅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음성을 동반하지 않는 전달도 많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의 정치가 플리니우스(Plinius 23~79)는 ‘박물지’에서 눈썹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동물도 눈썹을 갖고 있으나 인간의 눈썹만이 영혼의 신호로, 양쪽 혹은 한쪽이 움직이며 슬픔이나 기쁨, 부드러움이나 엄숙함을 표현한다. 눈썹은 우리의 동의와 부동의를 표시하고 특히 모멸을 고도로 나타낸다. 거만은 그 중에서 왕위를 점하고 마음속에서 생각한 것 뿐인데도 눈썹으로 나타난다. 눈썹은 몸에서 가장 높은, 가장 험한 부위에 머물고 그곳을 독점하고 있다.”

급히 입술을 굳게 다무는 것은 완고한 거부를 음성의 동반 없이 나타내는 것이고, 어깨를 움추림은 무관심을, 얼굴을 찡그림은 혐오와 모멸 등 일종의 불쾌감을 표현합니다.

또 여러 가지 표정 중에서 가장 다종다양한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 미소입니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하여 몇 세기에 걸쳐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습니다. 미소는 “나는 그대가 좋고 만나서 기쁘다”고 말하는 것인지 “흥미있다” 혹은 “그대가 지금 말한 것은 퍽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인지 혹은 “그대는 잘호고 있다. 그렇게만 해라” 아니면 “가엾다”라는 의미인지 모릅니다. 잔혹성과 증오감을 부드럽게 위장하는 가면일 수도 있고, 보복을 경고할 수도, “나는 그대를 이겼다”는 사실을 보이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 밖에 다른 이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같은 말이 친숙한 미소를 동반하면 애교 있는 겉치레 인사로 받아들여지고, 미소가 동반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