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매일 아침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
아주 심하진 않으시지만 치매와 파킨슨병을 비롯해 여러 질환을 함께 앓고 계신 친정엄마. 몸이 아픈 엄마를 모시고 살며 참 많은 일을 겪었다.
치매 환자들의 가장 힘든 점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돌발 행동과 한 번 꽂히면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고집이다.
어느 날은 갑자기 집을 뛰쳐나가시더니 택시를 잡아타고 목포를 가겠다며 버스 터미널로 향하셨다. 다행히 수상쩍게 여긴 기사님의 기지로 무사히 돌아오셨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쓸어내려진다.
우여곡절 끝에 많은 고비들을 넘기며 잘 지내오고 있지만, 여전히 나와 엄마 사이에서 팽팽하게 평행선을 달리는 숙제가 하나 있다.
바로 우리 집 반려견 ‘이삐’에 관한 문제다. 오늘 풀어갈 이야기는 치매 환자의 반려견 이야기다.

이삐의 중이염, 그리고 시작된 첩보전
얼마 전 이삐 귀에서 심한 냄새가 나 병원에 갔더니 중이염이 심하단다. 한 달을 지극정성으로 치료해 겨우 나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사람 먹는 음식 절대 주지 마시고 사료만 먹이세요.”
가만 보니 울 엄니, 그동안 이삐에게 별의별 것을 다 먹이고 계셨다. 이전에는 사료를 안 먹는다며 비싼 소고기 캔을 사다 섞어 먹이셨는데, 그게 피부병을 유발한다고 해서 내가 단호하게 끊어버렸다. 내가 워낙 완강하게 버티니, 그때부터 엄마와 이삐의 눈물겨운(?) 눈치 작전이 시작되었다.
사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이삐가 사료를 안 먹는 게 아니다. 밥그릇에 사료를 가득 채워두면 배고플 때 알아서 잘 먹는다. 그런데 그릇이 조금만 비어도 엄마는 밥을 안 먹은 줄 알고 또 채우고, 배부른 이삐가 먹지 않으면 “봐라, 이삐가 밥 안 먹는다”며 세상이 무너질 듯 걱정을 하신다. 그리고 결론은 늘 하나다. “고기가 없어서 안 먹는구나!”
하루는 부엌에서 맛있는 고기 냄새가 진동하길래 가봤더니, 냉장고에 있던 소고기를 양념해서 볶고 계셨다. 내 입으로 들어오나 싶어 슬쩍 다가갔더니, 엄마는 후다닥 고기를 챙겨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리셨다. 나중에 보니 사료에 볶은 고기를 잔뜩 섞어놓으셨는데, 배가 부른 이삐는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방에 들어간 나를 보며 엄마는 진심으로 걱정 어린 대사를 던지셨다. “맘마야 큰일 났다. 이제는 고기도 안 먹는다.”
엄마의 창의적인(?) 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날은 사료가 왜 이렇게 눅눅하게 바닥에 붙어있나 했더니, 달달하면 먹을까 싶어 올리고당을 잔뜩 발라놓으셨던 것. 맛있는 것만 있으면 일단 개 밥통으로 향하는 엄마였다. 그렇게 밥 안 먹는다고 동네방네 걱정을 하시는데, 희한하게 사료 봉지는 쑥쑥 줄어들고 이삐는 날이 갈수록 토실토실 살이 올라 여간 예쁜 게 아니었다.
“이게 몸에 좋은 거여, 어여 먹어!”
진짜 사건은 그 다음에 터졌다. 방에서 이삐가 고통스럽게 낑낑거리며 왈칵 토해내고 있는 게 아닌가. 놀라서 달려가 보니 엄마가 이삐 곁에서 호통을 치고 계셨다. “이것이 이게 몸에 좋은 것인게 어여 먹어. 왜 안 먹어야!”
엄마 손에 들린 것을 보고 나는 까무러칠 뻔했다. 다름 아닌 엄마가 매일 드셔야 하는 처방약이었다. 한 움큼이나 되는 당신의 약을 본인은 안 드시고 이삐 입에 억지로 밀어 넣으신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약을 삼킨 이삐는 속이 뒤집혀 토해내고, 엄마는 그 아까운 걸 왜 토하냐며 야단을 치시는 기가 막힌 상황.
눈앞에 뻔히 증거가 있는데도 “난 절대 그런 적 없다”며 딱 잡아떼시는 엄니를 보며, 정말 못 말리겠다는 한숨과 함께 가슴 한구석이 쌉싸름해졌다.
사위 잡는 장모님의 ‘이판사판’ 연기력
내가 절대 사료 외엔 아무것도 못 주게 철통 방어를 치자, 이제 엄마의 화살은 만만한 사위에게로 향했다.
낮에 점심을 드신 엄마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시더니 사위를 앞장세우셨다. 개 간식 사러 가자는 장모님의 등쌀에 못 이겨 끌려 나간 남편은 그나마 부작용이 없다는 오리고기 간식을 한 봉지 사 왔다. 분명 한 달은 먹을 양이었다.
그런데 웬걸, 이틀 만에 간식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삐가 너무 잘 먹으니 하루에 딱 두 개만 주겠다는 약속을 까맣게 잊으신 게 분명했다. 퇴근 후 남편이 방을 뒤지며 “어머니 벌써 다 먹이신 겁니까?” 하고 물으니, 엄마는 갑자기 연기대상 감의 메소드 연기를 펼치기 시작하셨다. 하루에 두 개씩만 주고 남은 건 잘 숨겨놨다며 여기저기 찾는 시늉을 하시는 것이다. 물론 휴지통에서는 이미 빈 봉지가 무더기로 발견된 후였다.
간식이 떨어지자 다시 이삐가 밥을 안 먹는다며 사위를 들들 볶기 시작하셨고, 마음 약한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며 또 간식을 사 오다 결국 나에게 딱 걸려 속사포 잔소리 폭격을 맞았다. 억울함이 극에 달한 남편이 울상을 지으며 항변했다.
“야, 너무 그러지 마라. 난 얼마나 힘든 줄 아냐? 어머니가 몸을 바르르 떨며 좀 실성한 표정으로
‘이판사판이여! 굶어 죽으나 먹어서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진데 이 불쌍한 거 차라리 먹여 죽이는 게 낫다’
하고 막무가내로 집을 나서는데 그럼 어쩌냐? 그거 진짜 무서워…”
그 말을 듣는데 픽 웃음이 나면서도 남편에게 미안해졌다. 나한테는 씨도 안 먹히니, 마음 약한 사위에게 치트키를 쓰신 것이다. 요즘 우리 남편은 점심때 밥 먹으러 집에 들어오는 것도 무섭단다. 장모님과 아내라는 두 고래 싸움에 낀 불쌍한 새우 등 터지는 신세라나 뭐라나.
치매라는 슬픈 질병 속에서도 엄마의 세상은 여전히 ‘사랑하는 존재에게 무엇이든 먹이고 싶은’ 따뜻함으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 방식이 엉뚱하고, 때로는 우리 부부를 녹초로 만들지만 말이다.
오늘도 이삐는 엄마의 과한 사랑(?) 속에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채 내 눈치를 살피고 있고, 남편은 장모님의 눈빛 레이더를 피하느라 바쁘다. 정신없고 고달프지만, 이 또한 훗날 돌아보면 그리워할 우리 가족의 소중한 한때이리라. 엄마, 제발 약은 엄마가 드시고, 이삐는 사료만 먹입시다, 네?!
추가) 치매를 앓았던 제 어머니는 5년 전에 별세하셨습니다. 이 글은 15년 전에 저희 집에서 2년 동안 모셨던 때의 일을 추억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