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

 

*이 글은 울 막내 딸이 학교 과제로 낸 것인데 독도에 관해 잘 정리한 글이라 여기에 올립니다. 

 

독도의 영유권 주장다툼은 오랜 기간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지속됐다. 하지만 독도는 역사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국제법적으로도 확실한 우리나라의 땅이다.


우선 역사적으로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를 살펴보면, 일본의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정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인정해왔다. 이런 기록들은 일본의 고문헌과 고지도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일본여지노정전도'에는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의 경위선 밖에 그려져 있다. '대일본연해여지전도'등 여러 고지도에도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의 영토로 표기돼 있지 않다.

 

 

 

일본 외무성 관리가 조선을 조사해 제출한 보고서인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에도 '죽도(울릉도), 속도(독도)가 조선의 부속이 된 경위'라는 제목의 기록이 남아 있다. 이밖에 한국의 고문서와 고지도에서도 독도의 소유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첨부된 '팔도총도'에는 울릉도와 우산도(독도)가 그려져 있어 당시 조선이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인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지도1785년 일본에서 제작한 동해 지도에는 독도가 조선의 땅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독도는 '동국문헌비고', '만기요람, '증보문헌비' 등에도 조선의 영토로 등장한다. 또한 숙종 19, 계유년(1693) 봄에 울산의 어부 40여 명이 울릉도에 배를 대었는데, 왜인의 배가 마침 이르러, 박어둔, 안용복 등 2인을 꾀어내 백기주로 잡아서 가버렸다. 이에 안용복은 백기태수에게 독도는 조선의 땅임을 주장하고 자신들을 끌고온 부당성을 항의하자, 백기주 태수는 안용복 처리를 막부에 문의하였다. 이 안용복 문제로 조선과 일본 및 일본내 대마도와 막부에서도 논의가 진행되었고, 마침내 16961월 아부풍후수는 관백 덕천강길의 재가를 얻어 지리적으로 일본보다는 조선과 더 가깝기 때문에 조선의 지계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유시하였다. 즉 안용복 사건을 계기로 한일 간의 독도의 영유권 문제는 1696년 이미 결론이 난 것이다.


 

다음으로 지리적으로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를 살펴보면,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 울릉도(독도로부터 87.4)에서는 맑은 날이면 육안으로 독도를 볼 수 있다는 것으로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독도는 역사적으로 울릉도의 일부로 인식되어 왔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우리나라 고문헌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예컨대 조선 초기 관찬서인 세종실록‘’지리지우산(독도) 무릉(울릉도) 두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울릉도 주변에는 많은 부속도서가 있지만 날씨가 맑은 날에만 육안으로 보이는 섬은 독도가 유일하다. 또한 일본에서 독도와 가장 가까운 섬인 오키섬이 독도와 총 160km 떨어져 있고, 오키섬에서는 아무리 맑은 날이라도 육안으로 독도를 볼 수 없음을 생각하자면 지리적으로도 독도는 우리나라, 한국의 땅임을 알 수 있다.

 

 

국제법적으로 독도가 우리 땅인 근거를 살펴보면,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는 것을 근거로 주장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건 일본이 러일전쟁 수행과정에서 독도를 군사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취한 조치이며, 당시 우리나라는 이미 일본에 주권을 침탈당한 부득이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a)에서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 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여기서 독도가 직접적으로 거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독도를 자기들 영토라고 위의 시마네현 고시와 함께 엮어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한국의 약 3천여 개의 섬 중에서 몇 개만 예시적으로 열거한 것 일뿐 여기에 독도가 직접 명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독도가 일본에서 분리되는 한국의 영토가 아니라는 주장은 억지이다.

 

 

 

이 외에도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에도 막부의 도해면허를 예시로 들 수 있다. 17세기 중엽에 일본인들이 독도와 울릉도에서 활발한 어업활동을 했다는 일본 측의 주장도 오히려 역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이 어업활동을 위해 에도 막부는 돗토리 번의 두 가문에 '울릉도 도해면허'를 발급했기 때문이다.

 

도해면허는 자국의 섬이라면 굳이 필요치 않은 문서로 이는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를 자국의 섬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에도 막부의 질문에 대한 돗토리 번 답변서를 보면 막부는 돗토리 번에 "울릉도 외에 돗토리 번에 소속된 섬이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돗토리 번은 "울릉도, 독도는 물론 그 외에도 소속된 섬이 없다"고 답했다. 결국 막부는 17세기 말 울릉도의 도해를 금지하고, 독도 역시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포함돼 도해활동이 금지된다. 당시 울릉도에 도해했던 오야가문 문서를 살펴보면 독도에 대해 '울릉도 근변의 독도, 울릉도 내의 독도'라는 기록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독도가 우리나라의 영토라는 것은 확실해진다.

 

 

 


, 위에 국제법적인 근거에서 보충해서 적자면 '독도의 날' 지정의 계기가 된 19001025일 고종황제는 '대한제국 칙령 41'를 내려 독도가 우리나라의 영토라는 사실을 명시했다. 하지만 결국 1905년 독도는 일본의 영토로 편입되고 만다. 일본은 이 내각회의에서의 독도 편입이 자신들의 독도 영유 의사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강제적인 편입으로 일본은 러일전쟁 중 독도의 '무주지 선점론'을 내세워 독도를 침탈했다. 이 때문에 해방 이후, 연합국 총사령부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전까지 독도와 울릉도가 일본 통치 대상에서 제외된 지역으로 규정된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SCAPIN)'를 사용했다. 독도가 일본이 포기해야 하는 영토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듯 독도가 우리나라, 한국의 영토라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국제법적으로도 확실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본은 독도가 일본의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들은 독도의 영유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by 우리밀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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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맘마 2017.05.2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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