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판사님 ‘긴장성 부동화 tonic immobility’를 아세요?

성폭행 피해자는 왜 저항하지 못했는가? 이유는 긴장성부동화 때문

 

성범죄 판사님 ‘긴장성 부동화 tonic immobility’를 아세요?

 

우리나라 형법상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수단으로 하여 사람을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든 뒤 간음을 함으로써 성립합니다.

강간죄 구성 요건에 폭행 및 협박이 포함되어 있기에 재판에서는 사건 당시 피해자의 현저한 저항이 있었는지가 주된 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의 입장에 입장에 치우친 듯한 판결도 많은 상황입니다. 2019년에 이루어진 한 판결에서 재판부는 “의사에 반해 성관계를 가졌다면 외상이 있어야 할텐데 없다”, “피해자는 강간이 벌어질 당시 ‘어떻게 저항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피고인의 강간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폭행을 당할 때 고함치거나 다리를 오므리는 식으로 저항하는 것이 정상적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긴장성부동화 tonic immobility란?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실제 자기도 모르게 일시적인 무기력증세에 빠져 저항하거나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되며, 이러한 무기력증은 외부 공격에 대한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다른 수단이 없을 경우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심리학적으로 긴장성 무운동(tonic immobility) 또는 긴장성 부동화로 불리는 이 무기력증은 최면과 유사한 상태에 빠져 외부 자극이나 고통에 반응하지 않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현상은 곤충, 어류, 파충류, 양생류, 조류 그리고 포유류 등 다양한 생물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증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물은 움직이지 않으며, 눈을 간헐적으로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고, 몸이 굳으며 때로는 머리를 든 상태에서 짧게는 수 초, 길게는 수 시간 동안 같은 자세를 지속합니다.

 

성폭행 피해자는 긴장성부동화에 빠졌다

원치 않는 성폭행을 당했을 때 피해자는 어떻게 될까요? 성폭행을 당할 당시 피해자의 신체와 뇌로 오는 모든 정보는 트라우마적이고 위협적입니다. 편도체는 이 정보를 인지하고 위험다는 신호를 시상하부를 거쳐 뇌하수체로 보냅니다. 긴급 스트레스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면 뇌하수체-시상하부-부신축에서 ‘호르몬 홍수’가 일어나게 됩니다.

먼저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알려진 카테콜아민이 편도체에서 분비되고, 이 호르몬은 ‘투쟁-도피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투쟁-도피반응은 긴박한 위협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생리적 각성 상태를 말합니다. 호흡이 빨라지고, 심장 박동이 급증하며 모든 근육이 긴장 상태로 접어듭니다. 위와 장의 움직임이 저하되고 혈관이 수축됩니다. 말하자면 천적과 맞닥뜨린 동물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 전두엽의 기능이 거의 상실되고, 오직 생존만을 위해 사고가 흘러가게 됩니다. 부신피질호르몬이 통제되지 않으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가 줄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피해자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폭행 상황에서 저항하거나 도망칠 수 있는 물리적 에너지를 상실합니다. 이렇게 긴장이나 공포 때문에 일시적으로 몸이 굳어 꼼짝하지 못하게 되죠.

 

긴장성부동화는 성폭행 피해자가 겪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스웨덴의 스톡홀름 사우드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애나 뮐러 박사 연구팀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습니다. 성폭행을 당한 뒤 1개월 이내에 스톡홀름 성폭력 피해자 긴급치료 센터를 방문한 298명의 여성을 상대로 벌인 연구에서 성폭행 당시 긴장성부동화(tonic immobility) 상태를 경험했는지 여부에 대한 진단하기 위해 ▲얼어붙은 듯 마비 상태가 된 것을 느꼈는지, ▲움직일 수 있는 상태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는지 여부, ▲고함치거나 비명을 지를 수 없었는지, ▲무감각 상태에 빠졌는지, ▲한기를 느끼거나 고립감을 느꼈는지 여부 등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298명의 피해자 가운데 70%는 폭행을 당할 당시 상당한 정도의 긴장성부동화(tonic immobility) 상태를 경험했으며, 이들 가운데 48%는 그 상태가 극심했다고 밝혔습니다. 저항이 아니라 얼어붙어 꼼짝 못하는 상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피해 여성들은 저항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 여성의 70% 정도는 폭행 당시 마비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특히 과거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이 피해를 입을 경우 처음 겪는 경우보다 두 배 이상의 긴장성부동화(tonic immobility) 상태를 경험했습니다. 심각한 폭력을 수반한 성폭행을 당한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6개월 동안 검진을 받은 189명 가운데 38.1%는 PTSD( PTSD 증상은 감정 마비, 트라우마 상황의 기억이 자꾸 떠오르는 플래시백, 각성 과민(주위 환경을 강하게 의식하거나 늘 ‘경계’를 취하고 있는 것)를 겪고, 22.2%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응답했습다. 긴장성 부동화(tonic immobility) 상태는 PTSD를 유발할 위험을 2.75배 높게 만들고 심각한 우울증에 걸리게 할 위험을 3.42배 높게 만든다는 밝혔습니다. 

연구팀은 긴장성부동화(tonic immobility) 상태가 알려진 것 보다 매우 일반적이라고 밝혔습니다.

성범죄를 판결하는 우리나라 판사님들, 이제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에게 왜 저항하지 않았는지 물을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왜 피해자의 동의없이 범죄를 저질렀냐고 시시비비를 따져야 합니다. 그래서 동의없이 강제로 하는 성관계는 범죄라는 사실을 알고, 건강한 성관계를 통해 남여관계가 성숙하도록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상 우리밀맘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