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양식

소를 타고 다니는 명정승 맹사성 문지방에 머리를 박은 이유는?

우리밀맘마2013.10.08 09:07


겸손, 조선시대 명정승 맹사성의 일화,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친다는 스님의 충고

 


 

오늘 새벽기도회 때 목사님 하신 말씀의 요지가 완고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교만하고, 자만심에 가득차 있으면, 항상 자신의 생각에 가득차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질 않는다는 것이죠. 이 말씀을 듣다 보니, 세종대왕 때 정승을 지낸 맹사성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맹사성_소세종 때의 명정승으로 유명한 맹사성 그는 소를 타고 다니기로 또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그림:이무성)

 



열 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여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가 무명 선사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대답했습니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 말에 기분 나쁜 듯 피식 웃으며 맹사성이 대답합니다.
 
"그런 건 삼척 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것 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습니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녹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구요,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찻물이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까?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맹사성이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나 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문지방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18:12)






by 우리밀맘마

기독교인들 전도할 때 제발 혐오감이 들지 않게 말해주세요
예수님은 왜 손가락질받는 죄인들과 식사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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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시렁 낙서장

너무 재능이 뛰어나 불행했던 여인 허난설헌

우리밀맘마2012.06.04 05:30

 

 
 

 

신사임당이 현모양처로 이 나라의 어머니를 대표하는 여성이라면 허난설헌은 자신의 재능으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산 대조적인 여성입니다. 그녀는 27살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 짧은 생애마저도 별달리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불행하였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녀는 대대로 명망 있는 양천 허씨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허엽은 서경덕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부제학까지 지낸 학자였으며, 그녀의 형제인 허성. 허봉. 허균은 당대를 대표하는 문장가들이었고, 그 가운데서도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은 조선의 기재이며 선각자였던 인물입니다. 

 

여성을 차별하던 사회라 아버지 허엽은 딸 허난설헌에게 글을 그르치려 하지 않았지만 오빠들이 공부하는 곳에 가서 어깨 너머로만 글을 배웠는데, 다섯 살 때부터 시를 지어 여신동으로 불렸을 만큼 그녀는 타고난 문장가였습니다. 

 

요즘으로서는 어린 나이인 15세에 명문 안동 김씨의 김성립과 혼인했고, 남편 김성립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승지에까지 이른 사람입니다. 남편의 친구 송도남이란 사람이 늘 남편을 찾아와서 부를 때에,

 

"멍성립이 덕성립이 김성립이 있느냐?"

 

라고 놀려댔는데, 이럴 때마다 남편은 한마디 대꾸를 못했는데, 매번 절절 매는 남편에게 허난설헌은 응수할 말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오, 귀뚜라미 매두라미 송도남이 왔구나!"

 

김성립이 이렇게 응수하니 송도남은 빙긋이 웃으면서 말하길

 

"부인에게서 배운 모양이군."

 

 

 

 

 

남편은 아내가 너무 똑똑하다 보니 조금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자연 부부 금실이 좋지 못했죠. 남편은 자주 외도를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아들과 딸을 잃고 배 안에 들었던 아이마저 유산하는 불행이 거듭되었고,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친정의 옥사가 있었습니다. 오빠 허봉이 율곡 이이에 관련된 당쟁에 휩싸여 귀양을 가 허난설헌보다 먼저 죽었으며, 동생 허균의 모반사건이 터지면서 친정은 멸문의 화를 입었습니다. 세 자식 의 요절, 친정의 멸문, 남편의 외도 등으로 생의 의욕을 잃은 그녀는 초당에 박혀 책만 읽다가 2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죠. 

 

허난설헌은 여선(女仙)으로 불릴 만큼 신선사상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여도선(女道仙)으로 자처하기도 했는데, 그의 시 213수 중에서 신선시가 128수나 됩니다. 아마 자신을 갑갑하게 하는 현실, 특히 당시의 조선적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심정이 시에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죽기 전에 자신의 시를 모두 불태워버렸지만, 허균이 명나라에서 사신으로 온 주지번에게 누이 허난설헌의 시집을 전해준 것이 '난설헌집'으로 출간되어 지금 우리가 그녀의 작품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시집은 중국의 문인들에게 널리 읽혔으며, 중국에서 허난설헌의 명성이 높아지자 조선에서도 허난설헌에게 주목했고, 이후 조선 최고 의 여류시인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시대가 인재를 잃어버린 것을 하늘이 다시 그 자리를 찾아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녀가 남긴 작품 중 시 한편을 들려드립니다.

 

 

 

봄비

 

 

- 허난설헌(許蘭雪軒),春雨

 

 

春雨暗西池 輕寒襲羅幕

춘우암서지 경한습라막

 

愁倚小屛風 墻頭杏花落

수의소병풍 장두행화락

 

 

봄비가 서쪽 지당에

남몰래 내리니

 

가벼운 추위

비단장막 속으로 엄습하네

 

시름에 겨워

자그마한 병풍에 몸을 기대건만

 

담머리에는 어느새

살구꽃만 지네

 

 

6월입니다. 이제 봄의 추억을 뒤로 하고 여름의 열정을 안아야 할 때군요. 시원한 냉차 한잔과 함께 시를 읊는 여유를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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