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이야기

경남 양산의 첫 국공립 전환 민간어린이집 탄생 비하인드스토리

우리밀맘마2017.11.07 07:00

경남 양산에서도 마침내 민간어린이집을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전환한 어린이집이 생겨났습니다. 


양산시민신문의 보도(https://goo.gl/LGsrp8)에 따르면 

양산시 물금에 있는 대방노블랜드 5차 에듀카운티아파트 입주자 대표회(회장 정지훈)와 양산시가 공동주택 내 의무 어린이집을 20년간 시에 무상임대하는 조건으로 국ㆍ공립 전환 협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사실 아파트 내 어린이집은 아파트입주민대표회의 주요 임대 수입원이기 때문에 수익이 없는 국ㆍ공립 전환을 꺼려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공동주택 내 어린이집 국ㆍ공립 전환 협약은 1천158가구 아파트 입주민들이 과반수 동의해 이뤄진 것입니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어린이집 임대수입보다는 

좀 더 보육환경이 좋은 국공립 어린이집에 우리 아리를 맡기는 것이 좋다는 인식의 변화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양산 물금 대방노블랜드 5차 에듀카운티아파트는

2016년 5월 입주 초기부터 양산시에 아파트 내 의무로 설치해야 하는 어린이집을 

국ㆍ공립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시에 문의해왔고, 

올해 4월(2017)께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어린이집 국ㆍ공립 전환을 신청하였습니다. 


이후 양산시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와 협약을 체결하고, 

9천만원 예산을 투입해 리모델링 공사와 기자재 구입 등을 진행해 이르면 내년 1월 개원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신규 입주하는 아파트에 이런 형태의 어린이집이 많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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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이야기

새로운 보육 모델 열린어린이집, 열린어린이집은 무엇인가?

우리밀맘마2017.11.06 22:03

최근 각 지자체에서 열린어린이집이 선정되어 운영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열린어린이집이란 어린이집의 물리적 공간 개방성과 함께 보육프로그램, 어린이집 운영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일상적 참여가 이루어지는 어린이집 운영 형태입니다. 


열린어린이집의 목적은  


부모, 어린이집, 지역사회가 더불어 건강한 양육환경을 조성하고 영유아와 그 가족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함입니다.


• 가정과 어린이집이 소통하고 참여함으로써 서로 신뢰하고 지지적인 관계로 발전하여 영유아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도울 수 있습니다.

• 가정, 어린이집, 지역사회가 동반자적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안정되고 개방된 양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 정보공개를 통해 부모의 어린이집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다양한 육아 정보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양산시도 이번에 ‘열린 어린이집’  6곳을 선정했습니다. 

선정된 어린이집은 동면 ‘e편한세상 남양산2차 어린이집’, ‘밖으로 나가자 숲 어린이집’, 평산동 ‘꿈나무 어린이집’, 덕계동 ‘덕계키즈킹덤 어린이집’, ‘미예림 어린이집’, 서창동 ‘이화어린이집’입니다. 

열린어린이집의 선정 기준은 어린이집 공간 개방성과 부모 참여성, 보육프로그램 지속 가능성, 지역사회 연계ㆍ협력 활동 다양성 등으로, 서류와 현장심사, 양산시 보육정책위원회 의결을 통해 선정하였고, 지정기간의 내달 1일부터 내년 10월 31일까지입니다. 


선정된 열린 어린이집은 공공형 어린이집 선정 시 가점 부여, 지도점검 제외 등 혜택이 있구요,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하는 우수형 열린 어린이집 선정 기회를 부여한다고 합니다. 




최근 어린이집에서 불미한 사건들이 일어나 학부모들의 걱정이 많았습니다. 

이런 열린어린이집은 좋은 대안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번에 선정된 열린어린이집들이 종래의 목적에 맞게 잘 운영되어서, 우리나라의 보육시설의 새로운 발전 모델이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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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선생과 함께 임시정부 개혁에 힘쓴 윤현진 선생

우리밀맘마2017.08.15 09:41

임시정부 초대 재무차장으로 활동한 우산 윤현진 선생

 

제가 살고 있는 경남 양산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우산 윤현진(18921921) 선생님이 있습니다.

 

윤현진 선생님은 18929월 동래 부윤을 지낸 윤필은과 김안이의 24녀 중 차남으로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내전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지역의 또 다른 독립지사인 이규홍 선생님의 대석리와 바로 이웃해 있는 동네입니다.

 

우산 선생님은 15살 때인 1907년 숙부 윤상은이 창설한 부산 구포의 사립 구명학교를 졸업(1)하고, 17세 되던 1909년에 중국의 남경·북경·상해 등지를 순회하면서 국제정세를 익혔습니다. 그리고 191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메이지 대학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1914년 대학을 중퇴하여 귀국했습니다.



 

귀국 후에 부산에 있는 백산 안희제 선생과 함께 백산상회를 경영하였고, 대동청년단에 가입하면서 많은 독립투사와 교분을 맺었습니다.

 

19193·1운동이 일어나자 경남은행 마산지점장 자리를 떨쳐버리고, 그해 321일 상해로 망명, 같은 해 4월 안창호·이시영·이동휘·노백린·김구·김규식·여운형·신익희·이동녕 등과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임시정부 의정원과 초대 재무차장을 역임하면서 임정의 재정난을 타개하려고 고향의 사재 30만 원을 헌납하였고, 임정의 내분을 수습하는 등 수많은 어려운 문제 해결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1920년 독립신문사를 주식회사로 확장하고 발기인이 되었다. 임시정부의 활동이 벽에 부딪혀 임시정부를 개혁하고 운동노선을 재정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자, 1921년 5월 안창호(安昌浩)와 함께 국민대표대회기성회를 조직하여 임시정부의 권위를 인정한 위에서의 개혁을 위해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다 과로로 병을 얻어 광복의 한을 풀지 못하고 1921917(음력 816) 순국하였고, 상해 임시정부는 국장으로 장의를 엄수한 뒤 정안사 외인묘지에 안장했습니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19956월 대전국립묘지에 봉환 안장됐습니다.


선생님이 요절하자 일본의 〈아사히〉 신문은 "형극의 배일 수완가 윤현진의 사"라는 제목하에 그의 죽음은 임시정부의 패망이라고 논평했을 정도로 임시정부에서 선생님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양산시는 윤현진 선생님의 선양사업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윤 선생에 대한 학술연구용역에 이어 흉상 건립과 만화제작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학술연구용역 결과 윤선생님의 활동에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윤 선생님은 국내 최초로 농민소비조합인 '양산소비조합'을 설립 운영해 농촌경제 부흥과 일본 상품 배척을 통한 민족사상을 고취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파리장서가 된 독립청원서를 영문으로 번역한 사실도 찾아내었습니다.



 

시는 최근 윤 선생의 흉상 건립을 위해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5000만 원을 들여 오는 11월 말까지 2.4m 높이의 청동으로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이 흉상은 윤 선생이 임정 재무차장으로 활동할 때 찍은 사진을 토대로 당시의 얼굴과 양복 입은 모습을 참고해 인물상과 복식을 재현하여, 교동 춘추공원 내 윤 선생 기념비 옆에 설치된다고 합니다. 윤 선생님의 기념비는 1959년 양산 군민의 이름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지난 해 발족한 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선생님의 기념비가 있는 교동 춘추공원 내에 '독립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으며, 시는 4억 원을 들여 춘추공원 진·출입로 개선 등 정비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또한 1600만 원을 투입해 선생의 유년시절과 임정 활약상, 고향 양산에서의 항일운동 등이 담긴 선생의 일대기를 담은 만화를 제작하여 지역 내 학교와 도서관 등에 배포해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양산항일독립운동 기념사업회 지원으로 중국 상해임시정부를 순례하며 윤 선생의 당시 활약상을 조망하는 행사와 윤 선생의 항일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도 개최할 계획이며, 향후 생가 복원 및 기념관 건립 등도 검토하고 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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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기억해야 할 인물, 양산의 독립운동가 이규홍 선생

우리밀맘마2017.08.14 21:41

광복절에 기억해야 할 인물 경남 양산의 독립운동가 백농 이규홍 선생

 

제가 사는 경남 양산에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훌륭한 애국지사가 두 분이 있습니다. 우산(右山) 윤현진(1892~1921) 선생님과 백농(白農) 이규홍(李圭洪, 1893~1939) 선생님입니다


우산 윤현진 선생님은 양산시 차원에서 선양 사업이 본격 추진되고 있지만, 이규홍 선생님은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 대상에서 제외되어 지역사회의 관심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규홍이규홍선생


백농 이규홍 선생님은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을 역임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주요한 일을 많이 하신 분입니다. 이규홍 선생님은 경남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동네입니다


선생님은 어려서 한학을 배웠고, 1913년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에 입학했습니다. 1916년 졸업하고 귀국하여, 1917년 부산부 대창정 2정목 18번지 백산상회 건너편 일광상회(一光商會)라는 위장 무역업을 경영하며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이후 19193월 삼일운동 후에 상해로 망명했습니다. 1919년부터 상해 임시정부의 경상도 선출의원으로 활동하며 임시정부 산하 청년단 출판부장, 임시정부 내부차장, 학무차장, 재무총장, 외무총장, 의정원 부의장, 국무원, 임시헌법개정 위원, 새약헌기초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임시정부 활동 와중에 병을 얻어 1927년 말 귀국해 고향에서 투병생활을 하다, 1939520일 향년 47세의 일기로 상북면 대석리 자택에서 타계했습니다.

 

상해임시정부 각료들이 찍은 사진에도 이규홍 선생의 모습이 있습니다. 독립운동 관련 자료에도 선생이 독립운동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분이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한 것은 명약관화한데도 국가로부터는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규홍 선생의 유족과 종친회에서는 국가보훈처에 수차례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보류 결정 통지를 받았습니다. 이유는 해방 전 귀국했을 때부터의 행적이 분명치 못하며, 변절의혹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훈처는 이 선생의 포상 제외 사유로 1920년대 상해임시정부에서의 독립운동은 인정되지만 1930년 이후 사망 시까지의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특히 이 선생이 귀국해 양산에서 가촌토지 주식회사 사장과 환영자동차 회사 무한책임사원으로 근무한 기록이 있다며 친일·변절 의혹도 제기했다. 그리고 아무리 환자지만 임시정부에서 각료를 지냈던 분이 귀국했는데 일제가 그냥 치료받도록 놔뒀을 리는 없고, 바로 체포해서 옥에 가뒀을 것인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전향(轉向)했거나 변절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변절하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유족들은 할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일본 외무성 까지 수소문하며 자료를 확보했습니다. 일본 외무성 자료에는 이규홍 선생이 일본경찰의 요주의 인물로 등록돼 편지내용까지 검열되고 있었으며, 이후 변절이나 투항을 한 기록은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보훈당국은 이를 인정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가촌토지주택회사 등 두 회사 대표로 조부 이름이 명기된 것은 당시 이 회사를 설립해 실질적으로 운영하던 동생과 아들이 재산 상속을 받지 못해 형식상 요건을 갖추기 위해 부득이 그렇게 한 것이며, 당시 선생님은 중병으로 투병 생활 중이어서 회사를 설립하거나 운영할 처지가 못 됐다는 것도 증명하였습니다. 더구나 선생은 이들 회사에서 비자금을 조성해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등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했습니다.

 

후손들은 선생님이 귀국한 뒤 1930년대 이후의 행적을 당시 마을 주민과 관련자 증언, 비자금을 상해 임정 첩보원에게 전달한 당사자 증언, 사진, 독립운동 관련 사료 등으로 확인여 제출했지만 보훈처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경우이규홍선생의 손자 이경우씨


 

이규홍 선생의 손자 이경우 씨는

 

"할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수십년 동안 노력했지만 국가에서는 아직까지 인정을 해주지 않고 있다. 엄연히 독립운동사에 나와 있고, 변절한 기록도 없고, 친일명단에도 없는 분이 왜 독립유공자로 인정이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형님이 할아버지의 독립유공자 인정을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돌아가시고, 나 또한 생업에 종사하며 백방으로 뛰어 다니고 있지만 이젠 너무 힘이 든다. 마지막으로 행정소송이라도 제기할 계획인 만큼 지역민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며 안타까운 심정을 지역 언론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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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에는 양산사랑 장학제도라는 특별한 장학제도가 있다

우리밀맘마2014.02.21 08:35

양산사랑장학제도, 양산시가 교육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만든 인재육성정책 그리고 특별한 장학제도

 


 

제가 사는 양산에는 좀 특별한 장학제도가 있습니다. 바로 양산사랑 장학제도가 그것인데요, 이는 양산을 교육도시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나온 것이라 합니다.

양산사랑 장학생은 관내 중학교 3학년 재학생 중 학기 성적이 3% 이내인 학생이 관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자 하는 경우 20명을 학교장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장학생으로 선발, 고교 3년간 매년 150만원씩 지급하고, 재단이 인정하는 우수대학 진학시 대학교 4년간 매학기 200만원씩 등록금을 지급하는 장학제도입니다.

현재까지 모금된 장학기금은 시 출연금 45억원을 포함하여 65억여원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이는 지역 기업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점점 더 참여도가 높아지고 있는 결과라고 합니다.



 

양산사랑장학금수여식_20132013년 장학금 수여식

 


장학재단 관계자는 기업체, 금융기관, 시민들이 장학기금 기탁에 많이 동참하고 있어 더욱 다양한 장학사업을 마련하고, 장학생 수혜대상도 점차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하네요.그리고 올해 초 경남은행(은행장 문동성)이 지역 인재육성을 위해 써달라며 양산시인재육성장학재단에 장학기금 5000만원을 기탁했습니다. 경남은행은 지난해에도 장학기금 2500만원을 기탁했다고 하네요. 

양산시 관계자는 "몇 년 전만 해도 학부모들로부터 교육환경이 열악하다는 원성을 들었지만 이젠 교육투자의 효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며 "앞으로도 진학정보에서부터 인터넷 강의, 명문대 체험 등 다양한 시책을 계속 발굴하고 지원해 명실상부한 교육도시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올해 장학재단은 2월 16일부터 30일까지 성적우수 및 저소득가정 중· 고교장학생, 양산사랑 장학생 등 384명을 해당 학교장과 읍·면·동장의 추천을 받아 성적우수 중학생 180명에게 9000만원, 고교생 110명에게 7700만원, 저소득가정 중·고교생 74명에게 2220만원, 양산사랑 장학생 20명에게 3000만원 등 총 2억192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였으며, 양산사랑장학생으로 선발된 29명에게 각각 150만원씩 모두 4350만원의 장학증서를 수여하고 격려하였습니다.
 

양산사랑장학금수여식_20132013년 양산사랑장학금 수여식 @양산장학재단 제공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이 장학제도가 있는지 양산시민들은 물론 아직 일선학교 선생님들도 잘 모르시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신청해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지 몰라서, 충분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아이들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장학생 선발기준도 너무 제한적인 것 같구요. 장학기금이 더 모아지면 저변이 더 넓어질 것을 기대해봅니다.

그리고 울 아들도 이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공부 잘 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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