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건강

불안장애 극복을 위한 성경적 대안

우리밀맘마2017.09.07 19:59

불안장애 극복을 위한 성경적 대안

 

신약에는 염려(anxiety)로 번역된 헹라어가 25번 나온다. 성경에서는 불안이 두가지 방법, 즉 건강한 관심(healthy concern)과 근심과 염려(fret, worry)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실적 관심의 형태로 나타나는 불안을 성경에서는 정죄하거나 금한 적이 없다. 바울은 매맞고, 배곺으며, 춥고, 위험에 처하는 것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는다고 쓸 수 있었으나, “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한다고 말했다(고후 11:23~29). 디모데도 빌립보교인들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genuinely anxiety)”하며 마음을 썼다고 바울은 기록하고 있다(2:20). 


남의 복지와 안녕을 생각해 준다는 의미의 불안, 바로잡는 행동(corrective action)을 취하게 하는 행동은 언제나 건설적인 것이다. Archibald Hart는 건설적 관심으로서의 불안(딤후 2:4, 고전 2:3)을 사랑과 돌봄의 동기에서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문제에 초첨을 두고 추진하는 정신활동이라고 설명했다.

 

근심, 걱정, 염려로 불안에 대해 예수께서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입는 것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6:25-34)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사랑과 전능하심 때문에, 염려는 필요없는 정력의 낭비이다. 우리의 지배하에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염려는 무의미하다는 암시이다. 그리고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감사함으로 기도하라(4:6)고 말했고, 베드로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하라고 부탁하면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벧전 5:7)고 권면하고 있다. 성경에서 정죄하고 있는 불안은 문제해결을 위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정신활동이다.

 

우리는 주님께 등을 돌리고, 삶의 짐을 자신이 짊어지려하고 태도와 행동으로 우리만이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다고 전제할 때 걱정과 근심이 일어난다(Collins, 1988).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서,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인가?(118). 하나님의 평강은 하나님과의 평화(관계)에서 나오는 것이지 어떤 적극적인 사고나 어떤 인지적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불안에 대한 성경적 대안

 

(1) 기도하라

모든 것(상세한 것까지)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라(4:6). 성경에 약 350번이나 두려워 말라라고 명시되어 있다.


(2) 생각하라

불안은 우리가 계속 더러운 것과 부정적인 것, 악한 것에 대해 생각할 때 온다. 바울은 고상하고 옳고 깨끗한 것, 칭찬할 만한 것을 생각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한다(4:8).


(3) 행동하라

성경이 말하는 것을 실천하라(4:9).

 

우리의 두뇌는 엄청난 양의 마약을 제조해 내는 공장이다(Hart). 우리가 감사하고 즐거워 하며 웃을 때에 생산되는 자연 진정제 endorphin(endogenous morphine)은 고통을 통제하고 감소시키는 역활을 한다. 지나친 불안과 스트레스가 계속 지연되면 엔돌핀이 소모되고 오래 사용하면 생산이 중단되어 최악의 경우 졸도, 기절하는 사태까지 유발한다.

 

(4) 기독교음악을 듣도록 하라(삼상 16:23).

(5) 적절한 운동을 하라 - 일주일에 세번 정도가 이상적이다.

(6) 적절한 수면을 취하라(127:2). 대부분의 사람은 8시간의 잠이 필요하다.

(7) 불안을 야기하는 문제에 대해 대안과 가능한 해결책을 고려하고 시도해보라.

(8) 친한 친구와 일주에 한번 정도 당신의 좌절감과 불안요인을 나누라.

(9) 적절한 오락을 즐기라.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가 이상적이다.

(10) 하루하루를 살아라(6:34). 사람들이 매일 염려하는 일의 98%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11)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보라. 그리고 설령 그 일이 일어난다해도 별 것이 안된다는 것을 고려해 보라.

(12) 관심(주의)를 자신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환하라(4:10; 2:3,4). 다른 사람을 돕다보면 자신의 문제에서 해방되고 불안이 감소할 수 있다.

(13)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일을 연기하면 더 불안해질 뿐이다.

(14) 걱정거리를 염려하는 일에 시간제한을 두라. 저녁 일정한 시간에 15분씩 염려거리를 생각하기로 작정하라.

 

 

by 우리밀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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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밀파파

도둑 정당방위에 대한 사회통념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우리밀맘마2014.10.27 23:10

정당방위에 대한 사회통념, 검찰과 법원 그리고 일반 국민 간에 왜 이리 간격이 큰 것일까? 정당방위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요즘 자신의 집에 침입한 도둑을 제압하다 뇌사에 빠뜨린 20대가 징역형을 받은 사건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도대체 우리나라의 법은 누구를 보호하고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재판에 대해 여론이 악화되자 검찰은 "피해자가 최 씨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50대였고, 제압을 한 뒤에도 20여분 동안 발로 머리를 걷어차고 빨래 건조대로 내리치는 등 닥치는 대로 폭력을 휘둘렀다. 또 피해자가 피를 흘린 채 쓰러졌는데도 폭행을 멈추지 않아 정당방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이례적으로 해명자료까지 내놓았습니다.

 

이에 대해 그렇다 할지라도 이번 판결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과 아무리 도둑이라도 그렇게까지 폭력을 행사하여 뇌사까지 빠뜨린 것에 대한 처벌은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도둑을 제압한 가해자의 행동은 지나친 면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도둑을 제압한 최모씨를 정당방위나 과잉방위를 배제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등상해)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법원의 판결은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 사건을 폭행사건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집에 침입한 도둑을 제압하기 위한 정당방위로 보아야 할 지가 관건이 된 것이죠. 그러면서 자연히 관심을 가지는 것이 과연 정당방위 어디까지 인정이 되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경찰이 내놓은 정당방위의 내용을 보면 정말 기가 찹니다.

 

 

 

세이프존

 

 

한국 경찰이 제시하는 정당방위 성립요건은 8가지입니다. 이 규정을 모르고 있을 경우 이번 최모씨처럼 억울하게 폭행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럼 경찰이 제시하는 정당방위 요건 8가지는 무엇일까요?

 

①방어 행위여야 한다

②상대에게 도발하지 말아야 한다

③먼저 폭력을 행사하면 안 된다

④가해자보다 더 심한 폭력은 안 된다

⑤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면 안 된다

⑥상대가 때리는 것을 그친 뒤의 폭력은 안 된다

⑦상대의 피해 정도가 본인보다 심하면 안 된다

⑧전치 3주 이상의 상해를 입히면 안 된다

 

이 규정은 일반적으로 거리에서 시비가 붙었을 때 웬만하면 싸움을 더 크게 일으키지 않게 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상당히 괜찮은 규정이라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집에 도둑이나 강도가 들었을 때, 강간이나 범죄적인 폭력상황 등 범죄현장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규정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는 생명이 오가는 위급한 상황이고, 또 어떤 돌발적인 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과 같은 범죄현장의 상황이라면 우선 범죄자의 생명과 안전이 아니라 피해자의 생명과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이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법적인 조치가 우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후에 범죄자의 처지도 고려하도록 하는 것이 일반 상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 정당방위에 대한 논란은 대부분 법적용을 얼만큼 확대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보다 먼저 정당방위라고 하는 것이 사소한 개인 간의 다툼에서 서로를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만든 경찰의 8개 조항을 모든 영역에 일괄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그 상황에 한해 적용해야 할 규정입니다.

 

이와는 별도로 범죄현장에서 적용되어야 할 정당방위의 요건을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누가 피해를 얼만큼 입었느냐를 우선 따지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로부터 피해자를 우선 보호하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가정폭력과 조직폭력배들, 여타 많은 범죄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을 할 수 있고, 또한 그런 범죄현장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구하거나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정당방위가 인정된 판례는 드물다고 합니다. 법 적용을 그렇게 하니 당연히 드물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번처럼 피해자를 범죄자로 만드는 황당한 경우도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논란이 되는 정당방위,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구약성경 출애굽기 22장에 보면 도둑에 대한 처벌과 배상에 관한 규례를 말하면서 이런 규정이 있습니다.

 

“도둑이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를 쳐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으나 해 돋은 후에는 피 흘린 죄가 있으리라 ”(출애굽기 22:2-3절)

 

이번에 도둑을 때려 뇌사에 이르게 한 그 최모씨는 군입대를 앞두고 있다 하더군요.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최씨의 누나가 나와 인터뷰를 했는데, 뇌사에 빠진 도둑에 대해 동생도 그렇게 되어 미안하고 안타깝다고 합니다. 그리고 동생이 그렇게까지 도둑에 대해 과잉대응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새벽 자신의 집에서 도둑이 든 상황에 놀란 것도 있지만, 도둑이 엄마와 누나가 자는 방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강간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오해해서 더 그렇게 행동했다고 합니다. 검찰은 아마 동생의 이 말을 듣지 않았든지 무시해 버린 것 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사건을 판결한 판사는 이번 판결을 두고 도둑을 뇌사에 빠뜨린 최모씨의 행동은 정당방위나 과잉방위를 넘어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회는 도리어 그렇게 판결한 판사를 두고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판결을 했다고 말합니다. 사회통념, 법을 집행하는 검찰과 법원 그리고 일반 국민들 간에 왜 이리 괴리가 큰 것일까요?

 

 



 

 

 

 

by 오늘은 우리밀파파 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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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성경도 섹시한 여성을 아름답다고 한다는데 이유는?

우리밀맘마2012.07.05 06:00


미의 기준, 섹시한 여자와 아름다운 여성, 성경이 섹시한 여자가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




 


 

울 교회 목사님, 어제 수요예배 시간에 아주 쇼킹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성경에서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이 나오는데, 성경에서 아름답다고 한 미의 기준에 대해 설명하시네요. 그런데, 어떻게 섹시한 여성, 목사님의 말로는 성적인 매력이 풍부한 여인도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한답니다.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구요, 그러면서도 왜 그럴까 궁금하기도 해서 울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옮겨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가 여자에 대한 일차적 관심은 미모인 것 같다. 성경에 많은 여성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 가장 관심을 끄는 사람들은 대부분 탁월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성경은 그런데 여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겨야 아름다운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현숙한 여인을 말하지만 그건 외모만이 아니고 그녀의 재능과 마음 그리고 신앙을 총 망라한 표현이다.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성경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는데, 과연  어떤 여인을 두고 아름답다고 할까? 

 

첫째, 피부가 고와야 한다. 그래서 유대여인들은 피부가 햇빛에 타지 않도록 조심하였다. 한 낮에는 일하는 것을 꺼려하였고, 아침과 저녁에 주로 일한 것을 볼 수 있으며, 아가서를 보면 적당히 그을린 모습에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둘째, 몸매가 고와야 했다. 당시 여인들이 살찌고 뚱뚱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왜냐면 그렇게 비만이 될 정도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계층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글래머스 한 여인을 아름답게 보았다. 아가서에 보면 내 누이의 가슴이 성벽처럼 보이면 어떡할까 걱정한다. 즉 나올 것은 나오고 들어갈 것은 적당히 들어간 그런 모습에 매력을 느낀 것이다.

 

 

 

오드리 햅번저도 이 여인처럼 늙었으면 좋겠습니다.

 

 

셋째 섹시한 여자를 아름답다고 하였다. 성경은 재밌게도 성적인 매력을 지닌 여인을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다윗이 유혹당한 밧세바이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이삭의 아내 리브가 역시 그렇게 성적으로도 매력적인 여인들이었다. 또한 왕비 에스더 역시 상당히 아름다운 여인이었는데, 왕의 마음이 동할만큼 성적인 매력이 풍부한 여인이었다. 특이한 것은 그녀는 그런 자신의 성적인 매력을 통해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해내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성적인 매력이 풍부한 여인을 아름답다고 할까? 그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우리도 그렇지만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이 가장 큰 일 중의 하나인데, 만일 성적인 매력이 없다면 그건 가문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적인 매력은 부부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고, 사랑을 불타오르게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요즘 다시 생각해봐야할 것 중 하나가 왜 여인들이 남의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가? 자기 남자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해야 하는 것, 이것이 성적인 매력을 지닌 여인을 성경이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이다.

 

 

넷째, 여인을 아름답게 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달랐다. 야곱은 삼촌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 중 라헬을 더 사랑했다고 하였다. 두 여인의 외모에 대한 설명을 보면 언니 레아에 대해서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땁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안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부드럽고 매력적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레아는 총기가 없는 그런 못생긴 여인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대부분 자매들은 서로 닮고 같은 유전자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둘 다 비슷하다. 라헬이 그렇게 곱고 이뻤다면 레아 역시 매력이 있는 여인이라 생각할 수 있다. 즉 야곱은 여성의 부드러움을 가진 그런 매력적인 여성보다는 눈에 띄는 화려한 외모에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총기있는 여인을 더 좋아했던 것이다. 

 

어떤 여인이 아름다울까? 유대에 완벽한 부인에 대해 이런 설명이 있다.

 

"부인의 은혜는 그의 남편을 기쁘게 하며 그의 분별력은 그의 뼈를 살지게 하느니라. 조용하고 사랑스러운 여인은 주님의 선물이다. 잘 다스려진 마음처럼 가치 있는 것은 없느니라. 수줍어하며 신실한 여인은 이중 은혜가 되느니라. 그의 절제하는 마음은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느니라. 태양이 떠오를 때는 하늘 높이 떠 있는 것처럼 좋은 부인의 아름다움은 그의 집을 사려할 때 나타나느니라"

 

 

 

 목사님 설명 중에 왜 자기 남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고, 남의 남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치장하고, 화장하느냐고 야단치시는데 조금 뜨끔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그러면 왜 남자들은 안그렇나요? 목사님은 사모님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얼마나 노력하시나요? 하는 그런 생각이 살짝 들더군요.

 

야곱이 아내 라헬을 보자 한 눈에 반해 그녀를 위해 그 집에서 7년을 무임금으로 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라헬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7년을 수일같이 여겼다고 하네요. 울 목사님 이 대목을 설명하면서 인생사에 아주 중요한 것들 중 남여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그 첫째가 아닐까 생각하며, 그렇게 사랑한 사람은 정말 인생의 행복을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그 가치를 너무 소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고 하시네요.

 

아~ 옛날 연애할 때가 생각납니다. 지금 내 남자, 제 마음을 얻기 위해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그 땐 그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지금 그 때를 떠올려 보니 제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오늘 저도 성경의 가르침대로 성적인 매력을 내 남자에게 한 껏 발산해볼까 싶네요. ㅎㅎ 모두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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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예수님은 왜 손가락질받는 죄인들과 식사하셨는가?

우리밀맘마2012.07.02 06:00


예수님 이해, 예수님은 왜 손가락질 받는 세리와 식사하셨을까? 왜 예수님을 죄인들의 친구라고 하였을까?



 

 
 

 

 

옛날 예수님이 살던 시대 유대인들 중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지식인이고 상위계층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금을 걷는 세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죄인과 같은 사람이지요. 제가 만약 예수님이었다면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어울리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야 제 자신이 그에 맞게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위치에 있게 될테니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이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세리의 집에서 음식을 먹고 함께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도 죄인과 같은 사람, 그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으로 손가락질을 했을 것입니다.


저나 사람들은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리와 한자리에서 음식을 먹고 함께 하는 것은 자신을 세리의 자리까지 낮추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바리새파의 비방에 예수님은 '의사가 필요한 사람은 병든 사람이며,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고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예수님은 연약한 사람, 외로운 사람,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찾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연약한 우리들과 같이 낮아지셔서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죄인에서 의인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이지요.

 

 

 

병자를 고친 예수님병자를 고친 예수님

 

 


몇 년 전 '겸손'이라는 단어를 유심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겸손은 그저 자신을 모든 사람보다 낮추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겸손은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겸손은 제 자신을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인정하고 나타내는 것이 겸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 높게 생각하지도 않고, 더 낮게 생각하지도 않는 있는 내 모습 그대로 드러내고, 또 남을 그렇게 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 모든 사람에는 잘나가는 사람, 평범한 사람도 물론 들어있고, 좀 모자라고 연약한 자, 어려움을 가진 자, 슬픈 자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모든 사람들을 그저 평범하게 여기시고 평범하게 여기시니 거리낄 사람도 멀리할 사람도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그 마음, 그 사랑을 제 마음에 담기를 원합니다. 저의 사랑은 부족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끝이 없는 사랑이기에 예수님이 저를 사랑하셨듯이 저도 다른 연약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한 주, 그런데 올해 절반이 훌쩍 지나가고 7월 첫주를 살아가네요. 아깝지 않는 세월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울 아기들의 웃음 소리가 제 귀에 울립니다. 이 번 한 주 울 아이들 예수님의 그런 마음으로 제대로 사랑해보렵니다. 여러분도 힘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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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blog.daum.net/yongnjee BlogIcon 꿈 꾸는 자2012.07.02 08:39 신고 겸손이 자신을 아는것이라는 말에 참 많이 공감 합니다.
    저도 어느날부턴가 남들이 내리는 저에대한 평가와는 상관없이
    내 자신의 한계를 확실하게 느꼅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자복 할 수 밖에 없었지요.
    세리와 함께 한 예수님이 전엔 이해 되지 않았지만
    그 천한 세리가 곧 나라는걸 깨달은 순간의 그 벅찬 감동이란! .....

    이렇게 오늘 같은 마음을 나누게 되니 감사하네요! ^^
  • Favicon of http://rubygarden.tistory.com BlogIcon 루비2012.07.02 15:42 신고 높디 놓은 자리에 서신 분이
    자기를 낮추어 종의 자리까지 서시는 것은
    예수님이나 가능한 일이지요.
    저희는 만분의 일이라도 따라 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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