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인생 저런 삶

놀림을 받은 장애인 딸에게 아빠가 한 말 "잘들어~"

우리밀맘마2015.05.19 07:07

누구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예전 우리 교회 목사님이 요한복음의 말씀을 설교하시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다리를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된 딸을 둔 목사님이

하루는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걱정 서린 눈빛으로 딸을 먼저 만나라고 합니다.

평소에는 활기 있고 명랑한 아이가 슬픔에 가득 차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 자초지정을 알아보니 오늘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나누었는데 

딸이 나는 커서 발레리나와 엄마가 되고 싶다고 했답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못된 심보를 가진 애가

 

“말도 안돼, 넌 바보하고나 결혼할 건데, 어떻게 엄마가 될 수 있냐?

너 같은 장애자들은 아기도 못가져. 그리고 걷지도 못하면서 춤은 또 어떻게 춘단 말이니?”

 

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못된 애가 있네요.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잠시 눈을 감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딸에게 말합니다.


 “얘야 아빠가 지금부터 중요한 말을 할께..

넌 금방 중학생이 되고, 중학교에 가면 그런 못된 애들이 더 많이 있을거야.

그런 놈들은 너를 가만두지 않고 오늘처럼 놀려 댈거야, 알겠니?”

아빠의 말에 딸의 얼굴이 더 창백해집니다.

 

“그러면 기분이 어떻겠니?”   

 

 “나쁘지”

아이는 서러움에 목이 막히고,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집니다.

“이제 너는 어떻게 그런 애들을 상대할지 배워야 해. 알겠니?

넌 평생 그런 나쁜 애들 말만 듣고 슬퍼하며 살거니, 아니면 예수님 말을 듣고 싶니?” 

 

 “예수님”

“그래? 그럼 지금 주님이 너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들어볼까?”

아이가 눈을 감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곧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아빠 글쎄, 내가 발레리나가 된- 데 ”

아버지의 가슴에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부녀는 그 자리에서 부둥켜안고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발레리나_이수빈

 

 

우린 참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들어도 흘려버려야 할 말이 있고,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흘려버리고,

흘려버려야 할 것은 마음에 새겨두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이죠.

 

저는 어린이집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 넘 좋습니다.

울 남편이 절 데리러 와서 모셔가거든요, 집으로 가는 시간 겨우 10분 남짓이지만

전 그 시간에 그 날 어린이집에 있었던 일 중에 제일 화가 나고 마음이 상했던 이야기를 남편에게 쏟아낸답니다. 울 남편 제가 하는 말에 장단을 맞춰주며 잘 들어줄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그럽니다.

 

"스탑, 아주머니 제게 더이상 당신의 스트레스를 넘겨주지 마세요."

 

그러면 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싫어요, 내가 지금 이렇게 당신에게 풀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어요?

아님 이걸 그대로 안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어요?"

 

울 남편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심정으로 그럼 마음껏 이야기하라고 그럽니다.

ㅋㅋ 제가 좀 못됐죠?

그런데 하루는 제가 평소보다 좀 더 과격하게 말을 하는데도

울 남편 그저 빙긋이 웃으며 제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자꾸 그러니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남편이 이렇게 말하데요.

 

"이..뻐..서.. "

 

ㅋㅋ 순간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리고요, 남편의 이 말은 내 마음에 쏙들어와서 예쁜 모습으로  새겨지네요.

 

 



 

 

by우리밀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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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인생의 성공을 좌우하는 습관, 습관에 관한 성경 말씀

우리밀맘마2013.03.05 15:03


 

습관은 삶의 방식을 결정합니다. 좋은 습관을 가져야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죠. 그 사람 인생의 성공의 열쇠는 습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생의 성공을 결정하는 습관에 관한 좋은 성경말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 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 디모데전서 4 : 7 ~10)


위의 성경말씀으로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 주일 예배 때 습관에 대해 이런 설교를 하셨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짤막한 시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성공자의 충실한 하인이기도 하고, 실패한 충실한 하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해서 위대한 줄로 알지만 위대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다. 나를 잘 길들이기만 하면 내가 그 사람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그런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 줄 것이지만, 나를 무시하고 거부하면 결국 패배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누구인가〉에서 ‘나’는 습관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인생은 습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습관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 모든 것의 90% 이상이 전부 습관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잠을 자는 것도 습관에 따라서 다 다르고 일어나는 것도 습관에 따라서 다 다르며, 밥을 먹는 것도 다 다른 습관을 갖고 살아갑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도 어떤 사람은 아무리 끼어들기를 해도 미안한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반면에, 행여나 비켜주지 않을 세라 손짓 발짓 해가면서 점잖게 끼어들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을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일에 대한 습관도 다 다르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의 생활 스타일에 따라서 사람들은 행동하고 움직이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나쁜 습관을 갖고 사는 사람이고 또 한편으로는 좋은 습관을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나쁜 습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 나쁜 습관 때문에 계속해서 안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게 되고, 결국 패망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좋은 습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좋은 습관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도 하고, 또 자기 스스로도 자존감에 차 있어서 자신만만하게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쁜 습관에 젖어 있느냐, 좋은 습관에 젖어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승리하는 인생이냐, 실패하는 인생이냐가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으며, 정말 습관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엇 하나 습관과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시작해서 잠이 들 때까지 우리는 익숙한 생활의 패턴대로 살아가게 되고, 또 그런 습관이 배이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하면, 불편하고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습관에 배이도록만 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쉽게 해낼 수 있는데, 그 습관을 들이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야하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을 꼽으라면 또 이 습관이 생각나네요. 잘못된 습관이나 혹 습관처럼 굳어진 행동을 고치는거 말입니다. 이건 정말 뇌를 수술하는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고통을 격기 전에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어떻게 나쁜 습관을 들이는 것은 그리 쉬운데,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이 왜 그리 힘든지 모르겠어요.

남편에게 들은 이야긴데요, 우리나라 옛날 선비들 있잖아요. 선비답게 사는 행동 규범이랄까요? 아님 수칙이랄까요? 그런게 있답니다. 일단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누운 채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인답니다. 그러면 혈액순환이 잘되면서 몸이 활력을 찾는다고 하네요. 그렇게 뒤척인 후 방에서 일어나면 그 다음 뭘할까요? 저는 남편의 대답을 듣고 뒤로 넘어졌습니다. ㅎㅎ 뭘하냐면요? 동이 터오길 기다린답니다. 추울 땐 방문을 닫고, 날이 좀 따뜻하면 방문을 열어둔 채 가만히 방에 앉아 해가 뜨길 기다린다는 거죠. 아마 명상을 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 이런 습관 참 좋은 거 같습니다. 그저 눈을 뜨면 벌떡 일어나서 아침 일거리부터 시작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잠시 묵상을 하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또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면 하루가 더 보람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남편에게 한 가지를 더 배웠습니다. 동학에서 하는 훈련이라는데요,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하늘님께 고하고 하는 것이랍니다. 즉 책을 읽는다고 한다면 마음 속으로 하나님을 향해 '이제 책을 읽겠습니다.' 하고 책을 읽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 참 쉬울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한다면 하나님과 상당히 친해질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항상 듣는 말이 "성령이 앞서고 기도가 앞서야 합니다."라고 하는데, 이런식으로 습관을 들이면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항상 기도가 앞서게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오늘 자신을 습관을 되돌아보심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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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와 보육정책

노숙자가 된 목사님 점심 먹으러 밥퍼를 찾아갔더니

우리밀맘마2012.06.30 06:00


노숙자가 된 목사님, 목사님의 노숙자 체험, 밥퍼를 찾았더니

 



 

 

서울역 노숙인이 되다. 기도원에 가려다 사정이 생겨 계획을 바꿨다. 또 다른 경험을 위해 서울역으로 출발하였다.하루 밤 노숙인이 되기로 하였다. 갈수록 목사들이 종교 귀족화되어 사회적인 조롱과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때, 낮은 곳을 향하여 가겠다고 생각하고 달려온 길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노숙인의 삶을 경험하고 싶었다. 위해서가 아닌 함께 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밤 10시가 되기도 전에 서울역 여기 저기 박스를 펴고 잠에 든 노숙인들이 많았다. 그 중엔 폼나게 침낭니아 이불을 사용하는 분들도 계셨다. 서울역 광장 이곳 저곳에, 서부역으로 넘어가는 육교에도, 서부역 쪽에도 여러 분... 삼삼오오 술을 드시는 분들도 계셨다. 특별히 서울역 건너편으로 가는 한쪽 지하보도에 열을 지어 잠을 청하는 분들이 계셨다. 7-80여명의 노숙인들이 경찰의 호위 속에 잠들어 있었다. 광장이나 다른 곳에서 보다 이곳이 안전하다 싶어 롯데마트에서 어렵게 구한 종이박스를 펴고 누웠다. 박스를 바닥에 폈으나 한 여름인데도 한기가 그대로 몸으로 전해져 왔다. 밤새 뒤척이며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예전에 자주 매스컴을 통해 서울역 노숙인들 사이에 일어났던 불미스러운 일들을 기억하면서 약간은 긴장하면서 노숙에 들어갔다. 그러나 너무 평온한 분위기에서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4시 쯤 되자 많은 분들이 벌써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4시 30분쯤 되자 경찰들이 노숙인들을 깨워 자리를 정리하였다.옆에 계신 분에게 아침 주는 데가 있는가 물었더니 구세군으로 가라 한다. 서소문공원 근처에 가면 구세군에서 아침을 준단다. 서울시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브릿지센터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구세군에서 준다고 한다. 어림잡아 400여명이 식사를 하였다.

 

놀라운 것은 아침식사를 제공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의외로 젊은 분들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내 나이 아직 50이 안되었지만 나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분들이 많았고, 어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멀쩡한 분들이라는 사실이다. 뒤에 줄을 선 어떤 분과 대화 중에 여기 오신 모든 분들이 사연이 있는 분들이라 한다. 당신의 사연인지 모르겠으나 경마를 하다가 어려움 당한 분들, 사업에 어려움이 있던 분들, 여러 사연들을 안고 있는 분들이다.

 

 

 

노숙자_서울역서울역 지하도에 있는 노숙자들

 

 

 

예전에는 젊은 분이 왜? 열심히 일하면 되지?? 이런 생각을 하였었다. 13-4년전 쯤에 총회 사회부, 영락교회와 연합해서 을지로입구에서 1주일동안 밥을 나누고 상담사역을 진행한 바 있다. 그 때는 사실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젊은 분들이 조금만 용기를 내고, 힘을 내면 사회에 적응하고, 가정을 세울 수 있을텐데...집으로 돌아갈 차비를 준다고 해도, 직장을 알선해주겠다 해도 냉담하고 관심 없어 하던 당시의 노숙인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경험을 통해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많은 분들이 그 어떤 의욕도 없이,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과 상황에서도 자기의 삶을 연장하며 오히려 이것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면서 뒤에 계신 분이 스스로 정의한다. “이곳에 한 번 빠지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사회적 안전망이 가장 어려운 분들인 노숙인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좋은 시스템이겠으나 이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 이 시스템에 넘 익숙해지면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브릿지센터에도 숙소가 있고 여럿 쉼터가 있으나 통제가 싫고 간섭받는 것이 싫어 많은 노숙인들이 자유로운 노숙을 택한단다.

 

여기서 일하는 분들은 모두 직원들. 노숙인을 대하는 직원들의 고압적인 자세는 여전하다.브릿지센터에서 아무나 식사를 제공받을 수 있다. 그러나 들어갈 때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컴퓨터에 입력한다. 관리차원에서? 이름이 뭐냐고 물어볼 때부터 약간은 거슬림...샤워를 할 수 있다 하여 샤워까지 하고 가기로 작정하고 샤워실로 향했다. 그런데 몇 분이 게시지만 아무도 샤워를 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샤워꼭지가 없다. 따뜻한 물이 안 나온다.조금 씻고 있었더니 어떤 아저씨 들어와 청소해야 하니 빨라 나가달랜다. 찬물에 대충 샤워하고 옷을 입고 나왔다.

 

구세군 센타를 찾아가는데, 근처의 어느 교회 앞을 지나게 되었다. 목사님이신지, 관리하시는 분인지, 구세군을 찾는다 하니까.. “아~ 밥주는데요?” 하고 나를 알아보고 얘기해주신다.그러나 역시 존중감은 없었다. 그저 사무적인 응대, 젊은 사람이 안되었구먼.. 하는 정도의 느낌?? 어려운 분들을 대할 때 나도 모르게 드러나는 사무적인 모습, 지극히 주님을 모시듯 존중해 드리지 못하고 무시하는 모습은 없었는지 모르겠다..평소 별 생각 없이, 결코 무시하겠다는 마음과 생각이 없었어도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 마음을 꿰뚫게 된다. 이 분이 나에게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

 

구세군센타에서 브로셔 하나 구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 처음 만난 직원은 오히려 그게 뭐냐고 물었다. 다른 직원을 찾았을 때도 그게 뭐냐면서, 왜 필요하냐고 한다. 노숙인인 당신에게 그게 왜 필요하냐는 투였다. 그래도 이 센타에 대한 간단한 안내문 같은 거라도 달라고 했더니 없단다. 오히려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 ‘서울시립비전트레이닝센타’ 브로셔가 있기에 물어 본 것이었는데..넘 기대가 컸었나 싶다.

 

 

 

밥퍼노숙자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밥퍼 회원들

 

 

다음 목표지는 청량리 다일공동체에서 하는 밥퍼나눔운동본부. 사실 여기서 밥을 푸는 봉사를 하고 싶었으나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단다. 봉사하는 분들이 단체로 오는 경우가 많아 자리가 나지 않는단다. 이 날도 대학생들, 중학생들까지 나와서 봉사하였다. 뜨거운 땡볕에 10분 정도 줄을 서서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계속 그 줄은 끊어지지 않았고, 650여명이 식사를 하였단다. 겨울에는 1,000여명이 모인다고 한다. 그래도 아침 식사할 때보다는 분위기가 낫다. 그래도 조금은 따뜻한 분위기, 존중받는 분위기, 그러나 줄을 서 잇는 사람들 사이에 서먹함은 동일하다. 가끔씩 자기들끼리 아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인사를 나눈다.

 

자원봉사자들이 밥을 먹자마자 식기를 가져간다. 수년 간 잘 갖추어진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음을 보았다. 물론 들어가는 입구에서 술에 취한 한 분과 직원과의 마찰이 있었고, 어느 수염을 길게 기르신 어르신은 그 취객과 한바탕 전투(?)를 치른 후에 배식은 계속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예수의 이름으로 섬기는 분들이 있기에 감사할 일이다. 보상을 받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 자원봉사로 어려운 이웃을 기쁘게 섬기겠다고 헌신하는 이 분들...이분들이야말로 천사들이 아닌가??

 

오는 주일이 맥추감사주일이다. 지난 주일에 벌써 감사에 대해 설교하였다. 내가 노숙인이 되어 본 것은 하루 캠핑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어려운 이웃을 섬기겠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여러 이웃을 위한 일들을 해왔는데, 내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섬겨왔는가.. 돌아보려 하였다. 과연 노숙인의 입장에서 어떤 느낌일지...내가 섬긴다고 하는 그 분들의 마음이 어떨지...지금까지 섬긴다고 하는 것이 이 섬김을 통해 내 만족을 채우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정말 진정으로 함께하려고 했던 것인지...

 

어느 분이 길을 가시던 예수님께 "주여, 어디로 가시든 나는 따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다.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하는 것이라 하는데...나는 너무 가진 것이 많은 목사가 되었다..끊임없이 나를 비우고 또 비우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텐데...너무 가진 것에, 누리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나를 본다...

 

*** 서울의 모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님의 페이스북에서 퍼왔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이 제 마음을 오가더군요. 사람에 대한 존경심..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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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예수 부처 공자 모두 한동네에서 사신다면, 목사님께 물었더니

우리밀맘마2011.04.23 05:00

 
 


부활절이 다가오니 괜시리 영적인 호기심이 발동하여 제가 또 울 교회 착한 목사님을 좀 괴롭혔습니다. 요즘 괜시리 종교간의 분쟁이 있는 것을 봅니다.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한다고나 할까요? 아님 주도권 싸움? 뭐 그런 것이 신문보도를 통해 느껴지더군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부처님 그리고 공자님이 다 함께 한 동네에 사셨다면 어땠을까? 지금 그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거나, 성격이 좀 과격하거나 고집센이들은 아예 대놓고 싸우는데, 정작 그들의 스승인 이분들이 한 동네에 사신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목사님께 물어봤습니다. ㅋㅋ 울 목사님 엄청 당황하셨나 봅니다.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이렇게 대답하시네요. 궁금하시죠?





다음은 우리 목사님의 대답입니다.

1. 참 재밌는 상상입니다. 일단 그 동네는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동네일 겁니다.

2. 그 동네는 지금 그 제자들이 서로 눈에 불을 켜고 긴장관계에 있는 것처럼 그러진 않을 것입니다. 그건 소인배나 하는 짓이죠. 서로 내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거나 관철하기 위해 고집을 피우거나 서로를 비방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그 동네에 들어서면 두 가지 기운이 동시에 느껴질 것입니다. 하나는 깊은 정말 내공이 쌓일 것 같은 평안함이고, 또 하나는 인생을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진지함이 느껴질 것입니다. 그 기운에 이끌려 거기 사는 사람들 모두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할 겁니다.

3. 그 세분이 한 자리에 모인다면 정말 재밌을 것 같습니다. 그분의 제자들은 그 분들 덕을 보려고 하다보니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아서 어떻게 하든 좀 더 우월적인 지위를 가지려고 서로 웬수같이 노려보지만, 그분들은 그런 것은 관심이 없고 오직 진리를 찾는데 혈안이 된 분들이 진리에 대한 정말 진지한 노력들을 하실 것입니다.

아마 부처님이나 공자님의 제자들이라면 그들 선생님이 더 훌륭할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저는 목사이니까 아무래도 예수님 편을 좀 들게 되는데, 그 분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아무래도 예수님의 이야기를 다른 분들이 더 깊이 경청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냐면 공자님이나 부처님은 진리를 추구하는 분들이며, 진리를 찾는 입장입니다. 그와 달리 예수님은 그 스스로 나는 하늘에서 왔고, 하늘의 일을 안다고 하셨고, 또 스스로를 내가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찾는 자들에게 원하는 것을 보여주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 분 다 누가 뭐라고 하든 정말 서로의 이야기를 깊이 경청하며, 인생의 고뇌를 해결하고, 인간답게 사는 길, 그리고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삶의 비결을 어떻게 하면 일반 사람들에게 잘 가르치고 또 인도할지에 대해 깊은 마음을 나누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옳으냐를 따지는 것은 소인배가 하는 일입니다. 이미 도를 트신 그 분들에겐 누가 한 말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이니까요.

우리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의 제자들도 모두 그런 스승의 모습을 본받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더 낫냐 도토리 키재기 하기 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인간답게 인간의 도리를 다하며, 제대로 살아가는데 무게중심을 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스승들이 좋아하는 모습이 되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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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즐기기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본 기독교인들의 수다

우리밀맘마2010.05.25 05:00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보고

이번 칸 영화제에서 우리 이창동 감독님의 "시"라는 영화가 극본상을 받았네요. 이전 정부에서는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던 이창동 감독에 대해 제 남편은 "장관 퇴임 후에 다시 영화감독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사람"이라며 상당히 존경심을 나타내더군요. 저랑은 그리 친한 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 전도연 송강호 주연의 "밀양"이란 영화를 본 후 개인적으로 좀 친숙해졌구요, 그래서인지 이번 칸 영화제 수상소식은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오네요.

이창동 감독님의 수상소식을 접했을 때 제일 먼저 제 머리에 떠오른 것은 영화 "밀양"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한창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을 때, 우리 교회 목사님과 30여명의 성도들이 단체관람을 했답니다. 목사님께서 이거 꼭 봐야한다며 성경공부 시간에 공부 대신 영화관으로 직행했거든요. 얼떨결에 따라가 봤는데, 보고 난 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영화관람 후 점심을 먹으면서 목사님과 함께 영화에 대한 수다가 이어졌습니다. 우리 목사님, 그냥 참 편하게 이야기를 잘 이끄시거든요. 내심 답도 좀 시원스럽게 내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는데, 그냥 우리들이 편히 이야기하도록 당신은 슬쩍 화두를 던져놓고 그냥 내버려 두신답니다.
목사님께서 먼저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극 중에 보면 기독교인들의 모습들이 보이는데, 여러분 보기에는 어떠세요?"

사실 저도 영화를 보면서 좀 맘에 걸렸던 부분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뭔가 우릴 좀 비꼬는듯한 그런 느낌이 들어 영 불편했거든요. 하지만 딱 꼬집어서 이건 아니다 싶은 그런 장면을 찾는 것도 좀 어려웠구요. 우리들의 모습이 맞긴 한데 뭔가 좀 그렇다고 하기에는 찜찜한 ..ㅎㅎ 그런데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목사님, 영화를 보니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릴 보면 너희끼리 잘들 논다..이럴 것 같아요"

순간 좌중이 완전 "빵" 터졌습니다. 여기저기서 "맞다 맞다" 그렇게 맞장구를 치는 분도 있고, 순간적으로 아주 시끌시끌해졌습니다. 또 한 분이 그 말을 이어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네, 사실 우리는 아주 자연스런 행동이고, 너무 습관적인 모습이라 이상한 것을 잘 모르겠는데 오늘 영화를 보니 정말 그동안 우리끼리 너무 잘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 문화가 세상과 상당히 이질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있던 목사님 싱긋이 웃으시며 또 다른 화두를 던지십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한 번씩 말씀해보시지요."

이 질문에 많은 분들이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을 꼽더군요. 머리를 자르려고 거울을 앞에 두고 앉은 마당에 햇볕이 비치면서 "뻥"이라고 쓰인 세제통을 살짝 클로즈업하며 지나가는 장면을 두고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가 하고 묻기도 하면서요. 한 분은 그 뻥이라는 말에 뜻이 있다며 아마 전도연과 송강호는 앞으로 잘 살거다고 예언하기도 하구요. 그 햇살이 참 따뜻하고 좋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도연이 아들의 주검을 보고 밤에 미친듯이 거리를 헤메며 꺽꺽 대며 울던 그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아니 인상 깊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소름이 돋더군요. 그 절망감, 말할 수 없는 그 슬픔..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제가 주먹이 쥐어지고, 이를 꽉 악문채 바들바들 떨며 울고 있었거든요. 그 때 정말 전도연은 천상 배우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끼리 한참 열을 올리며 이야기 하고 있는 중에 목사님께서 마지막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극 중에 누가 가장 예수님 닮았습니까?"





헉, 우리가 허를 찔렸습니다. 선뜻 이 질문에 대답을 못하겠더라구요. 왜냐면 극중 전도연을 짝사랑하며 좇아 다닌 택시기사 송강호가 제일 예수님 닮은 인물로 보여졌는데, 그 사람은 극중에서 보면 이제 겨우 초신자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저뿐만 아니라 함께 영화를 본 다른 분들의 불만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기독교인들에게 불편한 이유인 것이죠. 왜 하필이면 가장 예수님 닮은 캐릭터로 초신자를 택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신앙심이 깊은 인물을 들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또 우리 바람대로 했다가는 이 영화는 기독교 선전용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고, 대중들에게 그 큰 감동을 안겨주지 않았겠지요. 이때문에 이창동 감독님이 기독교인들에게 미움을 싸긴 했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그 덕에 우리는 좀 더 객관적인 안목으로 우리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었고, 또 그렇게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죠.





이창동 감독님, 감독님은 절 모르시겠지만 축하드려요.
직접 만나면 축하 꽃다발이라도 한 아름 안겨드릴텐데 좀 아쉽네요.
이번에 만드신 영화 "시" 꼭 보겠습니다.
저만 보지 않고, 지난 번 밀양처럼 단체관람을 하던지, 아님 앞집 뒷집 다 꼬드겨 함께 보도록 해보겠습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하고 있을께요.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 "시"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추천이 필요합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 글을 추천해주시고, 댓글도 많이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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