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양식

영적 자녀를 키우는 성공적인 멘토링 12가지

우리밀맘마2017.10.18 07:41

기독교인의 성공적 멘토링 12가지 Key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사람이 훌륭한 신앙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그를 믿음의 길로 이끌어줄 좋은 인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멘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멘토가 프로테제를 한 사람의 온전한 신앙인으로 키워가는 것은 여간한 노력으로 되어지지 않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 말하기를 '해산의 수고'를 하였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해야 성공적인 멘토가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좋은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이 글은 미국의 주요 기독교 잡지 중의 하나인 'Ministries Today Vol.18, No.5 p.78-83'에 실린 Larry Kreider의 글 '성공적인 멘토링의 12가지 Key'를 요약정리하여 국제제자훈련원에서 공개한 자료입니다.  

 

 

1. 기도의 중요성을 인식하라.

 

바울은 그가 갈라디아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기까지 해산하는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4:19).

그의 해산의 고통은 바로 기도하는 것이었다. 욥이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매일 새벽에 일어나 번제를 드렸듯이(1:5)

멘토는 그의 프로테제를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2. 단기 멘토링인가 아니면 장기 멘토링인가?

 

자신의 프로테제와 먼저 멘토쉽이 장기간 지속될 것인지 혹은 단기간이 될 것인지에 대해 의논하라. 언젠가는 멘토쉽의 수혜자는 그의 멘토에게서 독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 까지는 자신의 멘토가 자신이 필요할 때 항상 있어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하라.

 

3. 투명하고 약점을 보이기를 주저하지 말라.

 

멘토가 투명할 때 프로테제는 그들의 싸움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고 느낀다. 그들은 멘토가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결코 우리를 얕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그러한 모습을 보며 그들의 문제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안심하게 된다.

 

4.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라.

 

우리는 우리의 프로테제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프로테제를 정죄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들을 단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것에 불과하다. 삶의 결정을 내리는 것은 프로테제들인 것이다.

 

5. 중요한 질문을 하는 것을 배우라.

 

다음과 같은 질문은 프로테제를 새로운 단계로 이끌어주며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당신과 예수그리스도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당신과 배우자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당신의 삶은 정결한 것이었습니까? 이번주에 당신을 가장 기쁘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

 

6. 정기적으로 접촉하라.

 

언제,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인가? 그들의 문제를 다 해결해 줄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렇게 되었을 때 너무 의존적이 되기 쉽다. 만일 자주 만나기 어려울 때에는 프로테제에게 도움이 될만한 신앙서적이나 설교 테입을 추천해 주라.

 

7.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라.

 

만일 멘토쉽 수혜자가 하나님보다 멘토를 더 의존하게 된다면 그 관계는 결국 멀어지게 될 것이다. 특히 성이나 알콜, 마약에 중독되거나 우울증에 걸린 프로테제를 도울 때에는 그러한 분야에 훈련받은 사람과 만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인지 고려해 보라.

 

8. 논쟁을 잘 다루라.

 

많은 경우 멘토쉽은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일들로 더 지속하기 어려워진다. 첫째, 논쟁의 뿌리를 인식하라. 그리고 가능한 상처가 나지 않게 그 뿌리를 제거하라. 만일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경우에는 멘토쉽은 영원한 언약(covenant)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라.

 

9. 프로테제들에게 힘을 부여하는 법을 배우라.

 

섬기는 리더는 그들의 능력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다른 사람들을 강하게 하기를 즐겨한다. 섬기는 리더는 권위를 가진 사람이 더 많을 수록 더 많은 권력이 분배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섬김이 중심이 된 관계는 이기적이지 않다.

 

10. 어떻게 당신의 영적 부모를 축복하는가?

 

때때로 영적 부모들은 그들이 어떻게 프로테제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듣기를 원한다. 축복의 힘은 매우 크다. 프로테제들은 그들의 멘토에게 직접적인 말로서나 혹은 카드로 감사를 표현함으로서 영적 부모를 축복할 수 있다.

 

11. 변화는 언젠가 일어난다.

 

영적인 자녀가 성장하여 그들의 프로테제를 갖게 되면 동료와 같은 관계가 된다. 자녀가 어린아이였을 때에는 부모가 모든 필요를 채워주지만 그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는 오히려 그들의 부모를 위하듯 말이다.

 

12. 당신이 훈련시키는 사람에게 당신의 사역을 넘겨주라.

 

당신의 프로테제들에게 당신의 사역을 넘겨주어 그것이 계속 다음 세대로 전달되도록 하라. 그들이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성공을 맛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에베소서 4:12이 가르치는 내용이다.

 

우리는 누구나 영적 부모가 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이번 주간도 하나님이 당신을 사용하여 다음 세대의 리더를 키울 수 있도록 당신을 오픈하십시오.

 

 

by 우리밀맘마

저의 동맹블로그 레몬박기자 오늘의 사진 바로가기 클릭

*이 글이 유익하셨다면 추천 하트 한 번 눌러주세요.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자녀를 위한 기도,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하소서

우리밀맘마2017.09.19 20:24

자녀를 위한 기도


주님, 우리 자녀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독생자를 보내사 우리를 위해 죽게 하기까지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3:16) 지금 이 아이들의 마음속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셔서, 이 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멀리 뻗치며 또 완전한지를 알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아이들을 사단의 거짓말에서 구하소서. 

사단이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의 씨앗을 심지 못하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15:9,10)

주님, 우리 자녀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아이들도 다윗이 말한 것처럼 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 

(시 143:8)
주님의 사랑을 이 아이들에게 정말로 나타내사 

이 아이들로 하여금 그것을 받아들이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이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사랑하시듯, 

저도 이 아이들을 그렇게 사랑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아이들이 수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을 이 아이들이 확실히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제가 어떻게 하면 주님의 사랑을 모범적으로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 가르쳐 주시옵소서.  


우리 가족 모두가 이 아이들을 사랑하게 하옵시고 

이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을 받게 하옵소서. 

 매일 매일 사랑받고 있다는 자신감 속에 자라나게 하옵시고 

다른 사람에게도 어렵지 않게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을 부어 주옵소서.  

이 아이들이 다른 사람과도 사랑으로 사귀게 하옵소서. 

이 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마음 속에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이 흘러 넘치는 사랑의 그릇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by 우리밀맘마

저의 동맹블로그 레몬박기자 오늘의 사진 바로가기 클릭

*이 글이 유익하셨다면 추천 하트 한 번 눌러주세요.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자녀의 안전을 위해 드리는 기도

우리밀맘마2017.09.19 13:16

자녀의 안전을 위한 기도 



주님, 우리 자녀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 아이의 둘레에 보호의 울타리를 쳐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 어 떤 종류의 악이나 해도 이 아이의 영혼과 몸과 마음을 상치 못하도록 보호해 주시옵소서. 사고와 질병, 부상, 또는 다른 신체적 , 정신적, 정서적 학대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기를 특별히 기도합니다. 


 "이 재앙이 지나가기까지" 우리 아이들 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시57:1) 피하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아이에게 접근하는 그 어떤 악의영향으로부터도 이 아이를 숨겨 주시옵소서. 


드러나지 않은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해주시고 

모든 흉기로부터 이 아이를 지켜 주시 옵소서. 




보호해 주시겠다고 여러 번 약속하신 것을 생각할 때 무한 감사합니다. 

이 아이가 하나님의 길로 행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보호의 우산 아래서 결단코 벗어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아이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안전하게 지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by 우리밀맘마

저의 동맹블로그 레몬박기자 오늘의 사진 바로가기 클릭

*이 글이 유익하셨다면 추천 하트 한 번 눌러주세요.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자녀를 위한 기도, 나의 자녀를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우리밀맘마2017.09.12 13:50

자녀를 위한 기도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신 줄을 제가 압니다. 하나님만이 이 아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이 아이들을 맡기오니 보호하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이 아이들을 위해 생각하는 것이나 

하나님께서 제 마음 에 생각나게 하시는 것들을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다짐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가르쳐 주옵시고, 무엇에 대해 기도해야 할 지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저 자신의 뜻대로 기도하지 않게 하옵시고, 

이 아이의 인생에 하나님의 뜻 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이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하나님의 파트너가 되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저 혼자서 하지 않아도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바뀌어 믿을 것이 없는 세상의 자녀 양육 방법을 따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주시는 지혜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분명한 지시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 아이들을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을 돌보고 양육하라고 주신 줄을 압니다.  

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아이들의 어떤 면을 계속 주시해야 하는지 깨닫게 하옵시고 

또한 이 아이들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에 맡길 수 있게 하옵소서. 

위험의 가 능성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시고 

하나님의 주관하심을 아는 평안과 기쁨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 아이들 하나님께 맡기오며  

하나님의 손에 드리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by 우리밀맘마

저의 동맹블로그 레몬박기자 오늘의 사진 바로가기 클릭

*이 글이 유익하셨다면 추천 하트 한 번 눌러주세요.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평생 길에 떨어진 동전을 주운 아이 얼마나 모았을까?

우리밀맘마2016.10.31 17:11

잃어버린 기회

 

 

한 어린 소년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동전을 주웠습니다.

소년은 가슴이 떨리며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건 내거야 . 아무 고생도 않고 나는 돈을 번거야."

 

 

그날 이후로 소년은

어디를 가든지 머리를 숙이고 눈을 크게 뜬 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보물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평생동안

262개의 일 페니 동전, 48개의 오 센트 동전, 19개의 십센트 동전, 16개의 이십오 센트 동전,

2개의 오십센트 은화, 똘똘 뭉친 한 장의 일 달러 지폐 등

십삼 달러 이십육 센트를 땅에서 주웠습니다.

 

 

그는 그것들 대신 31,369회의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노을을 볼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눈부시게 영롱한 157회의 무지개 빛, 몇 천 개의 단풍잎이 가을을 물들인 풍경,

푸른 하늘이 흰구름으로 곱게 그려내는 몇 백 몇 천 번의 모습,

지나가는 행인들의 아름다운 미소로 삶을 빛낼 수 있는

수많은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박성철님이 엮은 '쉼터'라는 책에서 가져왔습니다.)

 

이 소년에겐 길에 떨어진 돈이 더 소중했을 겁니다.

아름다운 노을과 단풍, 무지개.. 이런 것의 소중함을 알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죠.

아니.. 나이가 들어도 이런 것을 보고 누리며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by우리밀맘마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완벽주의를 극복하고 마침내 진실한 친구를 사귀게 되다

우리밀맘마2016.04.06 07:29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신감에 가득 찬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어려웠습니다. 

그녀가 어릴 적에 부모는 이혼하였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그녀가 겪은 시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적극적인 성격의 그녀는 학창 시절 내내 그리고 대학을 졸업할 때도 우수한 성적을 얻었고, 졸업 후 사회사업에 관련된 직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컴퓨터 기술자인 남편과 결혼하여,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으며, 토끼 같은 자식들도 낳고 교외에 아름다운 집을 짓고 오순도순 참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녀는 이전까지 만나지 못했던 자신보다 상류층이라 생각했던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예뻤다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한 장면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녀는 집안을 어느 집보다 아름답게 장식했고, 손님들을 집에 초대할 경우 정성을 다해 대접했습니다. 

아이들의 옷, 파티 차림, 여름 휴가 장소에 이르기까지 무슨 일이든 남과는 다른 특별한 것을 보였습니다. 

그녀는 일처러를 단지 훌륭하게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의 평판은 좋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하루하루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리며 원인 모를 불안에 허덕입니다. .

불면증도 찾아왔습니다. 사는 즐거움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야단법석을 떨다가 문득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초대한 사람들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아니었습니다. 초대한 손님들을 두 번 다시 만나지 않더라도 조금도 섭섭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파티를 여는 것이 즐겁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항상 걱정이 앞섰지 즐거움 따위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인가 기대하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좀 지나치다며 부담스러워 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나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애쓰고 있는 것일까?

 

불안...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불안감 때문에 이러한 과장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직도 좋은 성적을 얻고 싶고, 그렇게 인정받고 싶은 소녀기를 벗어나질 못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아직도 시험을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파티를 연 것이 아니라 이런 행동을 통해 더 좋은 점수를 얻고 싶었던 것입니다. 

학창시절 때도 그랬지만 그녀가 만족할만한 성적은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자신과 주변을 더 닦달하고, 그녀가 초대한 손님들에게 더 좋은 점수를 달라고 떼를 써왔던 것이죠. 그러니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이 파티를 편안하게 즐기기 보다는 도리어 불편했고, 그러기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이 무한 반복되면서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었고, 그녀는 그런 상황에 슬슬 지쳐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마침내 정직하게 대면하게 된 것입니다. 

 

나는 뭘 위해 이렇게 힘들게 노력하는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었고, 특히 자기보다 상층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구나. 그래서 이렇게 뭔가 더 특별해야 이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고, 또 이런 방법이 최상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드디어 그녀는 이때껏 자신을 괴롭혔던 불안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하지만 곧 새로운 불안이 그녀를 엄습하는 것을 느낍니다. 

이유는 어떻더라도 내가 이렇게까지 억척스럽게 했으니 이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는 것이고, 나는 이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갈 수 있었는데, 이마저도 안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러다가 이 사람들에게서 외면당하는 것은 아닐까? 소외당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해왔고, 이 두려움은 조금 전 깨닫게 된 자각보다 더 그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녀는 다시 갈등하며, 곰곰이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달라지기로 결정했고, 삶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친구가 된다는 것은 상대에게 좋은 점수를 받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서로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죠.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구약성경 잠언17장17절)  

 

 

by우리밀맘마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성공한 명사들의 인생을 바꾸게 한 격려와 칭찬

우리밀맘마2015.10.21 12:43

인생을 바꾸게 한 격려에는 특별한 뭔가가 있다

 


예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칭찬과 격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칭찬과 격려의 중요성을 더 인식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칭찬 잘못하면 도리어 독이 되기도 하고, 단지 립서비스에 그치기도 합니다. 이런 영혼이 없는 칭찬을 들을 때는 그저 입술만 슬쩍 들썩이게 하죠. 칭찬을 제대로 할 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칭찬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명사들의 경험을 통해 알아봅시다.




 

김병종 화가 - “너는 화가가 되면 잘될 거다”

 

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인 김병종 화가는 어릴 때에도 그림 솜씨가 남달랐습니다. 그는 전북 송정초등학교에 다녔는데, 4학년 때 미술시간에 담임선생님이신 정문자 선생님이 그의 그림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그림을 잘 그리는구나. 선생님의 이 말은 김병종 화가가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데 한줄기 빛이 되었고, 서울대 美大(미대) 교수가 된 지금까지 정신적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는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앙드레김 - “이 그림은 독창적이고 창의적이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예회 등에서 노래, 연극, 그림 등 다양한 재능을가진 학생이었습니다. 고양공립중학교에 다녔는데, 하루는 미술시간에 미술 선생님이 앙드레 김의 그림을 보고 "이 그림은 독창적이고 창의적이다. 굉장하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선생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의 칭찬에 앙드레 김은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최불암 - “네가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해라”


국민배우 탤런트 최불암씨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학 시절 연기보다는 연출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연기자의 조건은 지금과는 달라서 신성일처럼 잘생겨야만 했다네요. 하루는 「어느 하늘빛」이라는 창작극의 연출을 맡아 연습을 하고 있는데, 극중 할아버지 배역을 맡은 친구의 연기가 영 엉망이었다고 합니다. 연출을 하고 있던 최불암씨가 연기 시범을 보였는데, 그것을 지켜보던 이광래 교수는 "『아예 네가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 한마디에 그는 용기를 얻어 연출자 최불암이 아닌 연기자 최불암이 되었다고 합니다.

 

배한성 - “배한성은 앞으로 연기 쪽으로 성공하겠다.”


KBS 성우 배한성씨는 영화배우 지망생이었습니다. 서울 고명중학교 2학년 때 국어를 가르치시던 전시균 선생님의 지도로 「신숙주와 그의 부인」이라는 희곡으로 연극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배한성씨가 신숙주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가 연기하는 것을 본 선생님이 “배한성은 앞으로 연기 쪽으로 성공하겠다. 내가 알고 있는 아나운서도 있으니까 열심히 해라” 친구들에게도 늘 듣던 말이지만 절대적으로 존중을 하던 선생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렵게 공부를 하면서도 중학교 국어 선생님의 칭찬이 계기가 되어 일찌감치 진로를 정해 노력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최정화 - “박사학위는 운전면허증과 같다”


동시통역사이며 한국외대 교수인 최정화선생님은 프랑스 파리 제3대학 유학 시절, 그는 고비 때마다 선생님의 사랑과 격려의 말 한마디가 인생의 등불이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박사학위를 준비하였지만 모든 것이 미흡하다는 생각 때문에 논문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을 때 셀레스코비치 교수는 “너의 논문은 이미 무르익어 발표해도 괜찮다. 현명한 사람은 항상 끝맺음을 할 줄 알아야한다. 박사학위란게 운전면허와 같아서 처음부터 완벽한 주행 실력을 기대한다는 것은 욕심”이라는 말에 용기를 얻은 그는 무사히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후 한불정상회담 전담통역사가 되었는데, 그 때문에 그를 질시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것을 속상해 하는 것을 안 셀레스코비치 교수는 “그만큼 네가 성공했다는 것이라 생각하고 항상 의연하게 묵묵히 길을 가라. 진실은 시간이 가면 밝혀진다.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말아라” 하고 위로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상벽 - “이상을 좇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라”


방송인 이상벽씨는 서울 숭문고등학교 시절 당시 학생들의 진학상담을 직접 하신 서기원 선생님은 그가 정치외교학과에 지망한다고 하자 만류하면서 “이상을 좇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충고하였습니다. 이상벽씨의 가정형편을 잘 아는 선생님은 그에게 학연도 없고 혈연도 전혀 없고, 더군다나 집안의 장남으로 형제를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니 안정적인 직업인이 되길 권하면서 산업미술학과를 권하였습니다. 이상벽씨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해 합격했고, 미술공부를 하면서 길러진 정서적인 사고는 졸업 후 기자생활과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을 달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조훈현 - 스승의 언행일치의 삶을 보고 배우다


프로 바둑기사 조훈현씨가 일본인 스승 세고에를 만난 것은 열 살 때였습니다. 그에게 입문하기 위해 갔을 때 세고에 선생은 76세였는데, 그 때까지 중국인과 일본인 제자 단 두 명만 길러냈던 분입니다. 세고에 선생은 기자들이 조훈현에 대해 물으면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로 칭찬을 대신했습니다. 세고에 선생은 언행일치의 모범을 보여주는 분이었습니다. 장관이든, 기업인이든, 공무원이든 그를 찾아오는 사람의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언제나 한결같은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어릴 적 스승의 언행일치를 보고 배운 조훈현씨는 스승의 말과 정신을 깊이 새겨 훗날 자신이 제자를 기를 때 본보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전유성-너도 이런 스크랩북 하나 만들어봐라

 

개그맨 전유성은 메모광이라 할만큼 메로를 잘합니다. 그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메모 습관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던 중학교 2학년 때 교회 중등부 담임 선생님은 메모 습관이 대단했는데, 자신이 읽은 책의 줄거리, 등장인물 등을 꼼꼼히 정리를 해 파일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유성이 너도 꼭 이런 스크랩북을 하나 만들어라. 꼭 해봐라.”하고 말했습니다. 당시 전유성은 선생님의 그 말을 그냥 생각만 할 뿐 실천하지는 않았고, 대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선생님의 말을 실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의 메모들은 책을 읽다 발견한 「명문장」을 비롯해 세세한 내용들이 모여져 있어 「말로 먹고사는」 그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좋은 칭찬과 격려는 상대방의 뛰어난 점, 좋은 점, 밝은 점, 장점, 특이한 점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킴으로 상대방에게 힘과 용기를 줍니다. 격려를 받은 사람은 불가능에 도전하고 커다란 역경을 극복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내게 필요한 격려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게 격려해주는 이가 없더라도, 나 스스로 격려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합시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10장 24절, 표준새번역) 




 

 

by우리밀맘마

*이 글이 유익하셨다면 아래 추천 하트 한 번 눌러주고 가세요. ^^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권리침해 제한

임시조치된 글입니다

권리침해신고센타2015.03.19 20:24

attention이 글은 관리자에 의해 임시조치된 글입니다. 관련내용 보기

댓글

영혼의 양식

사형제도 합헌과 사형수의 자살,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밀맘마2015.02.17 15:17


사형제도, 사형수의 자살로 본 사형제도에 관한 성경의 이해


 

 

사형제도는 과연 인권을 무시한 시대에 뒤쳐진 구시대의 유물로 봐야하는가? 사형제도는 사람의 생명을 도외시하며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끊는다는 점에서 신에 대한 도전인가? 성경은 사형제도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그리고 자살한 사형수, 그의 죽음을 어떻게 봐야할까?
 

이전에 모 구치소에서 수감중이던 한 사형수가 자살한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적이 있습니다. 자살한 사형수의 내력을 살펴보니 사실 동정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사형수의 그런 자살로 인해 그를 수감한 교도관과 구치소 소장 등 엄한 사람들이 줄줄이 곤욕치르겠다 싶은 마음이 더 앞서더군요. 저와 친한 분이 구치소를 다니면서 제소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고, 또 우리 교회도 사형수를 교화시키는 일에 열심이다 보니, 간혹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라 그런 생각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소자를 돌보는 사역을 하는 친인으로 부터 이번에 자살한 사형수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살짝 마음에 혼란이 왔습니다. 그 사형수도 모 교회에서 교화를 맡았고, 돌보는 목사님이 물심양면으로 정말 열심히 보살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형수도 점점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며 회개하였고, 또 세례를 받으며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변화되어가던 그가 갑자기 이런 극단적인 일을 벌인 것에 대해 그 목사님의 충격이 실로 컸다고 합니다. 그리고 추측하건데 요즘 조두순 사건 등을 통해 사형제도 부활론이 현실로 나타나자 이에 더이상 희망을 잃고 자살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더군요.

얼마 전 대법원에서 사형제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합헌이지만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던가요? 앞의 사건과 맞물려 이것을 신앙인으로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 궁금증이 들더군요. 그래서 목사님을 찾았습니다. 아마 저같은 교인 땜에 우리 목사님 참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가 물을 곳은 우리 목사님이죠. 그래서 심방갔다 돌아오시는 목사님을 교회 마당에서 잡고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목사님, 사형제도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갑작스런 나의 공격에 당황하신 목사님이 황당하다는 듯이 저를 바라보시더니, 커피 한잔 빼오면 가르쳐주겠다시네요. 그래서 교회 자판기에 제일 비싼 커피를 대접해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제가 답을 해주시네요. 

1. 성경은 사형제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분명히 사형제도가 명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천륜과 인륜을 저버린 극악무도한 죄, 특히 하나님을 경멸하거나 부모에게 불효하거나, 살인 등의 흉악한 죄, 남의 아내를 범한 죄, 강간 등은 그 죄를 고소한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지며, 함께 한 증인과 모여든 사람들이 공개 처형시켰다고 하네요. 이렇게 단호한 처벌을 통해 그 당시 아주 무질서했던 사회의 질서를 유지시켰던 것이죠. 이렇게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형제도가 성경에 어긋나는 제도가 아니라고 하시네요. 
  
2. 그러나 사형을 실행할 때는 그에 따른 엄격한 증거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일방적인 증언으로 사형을 집행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혹 살인을 했더라도 그가 고의로 하지 않은 경우는 도피성이라는 구제책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일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현 시대의 사형제도가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법을 빌미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독재시대 때에 정적을 없애는 수단으로 사용된 적이 많거나,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후 그를 사형당하게 하여 죄의 흔적을 지우고자 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당시는 완벽한 증거를 갖고 구형을 했지만 나중에 예기치 않은 다른 정황이 나와 무죄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할 때는 정말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3. 예수님도 사형을 당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형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유대의 집권층에 의해 모함을 당했고, 로마 총독의 정치적인 이유로 십자가라고 하는 가장 극악한 형벌을 받아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를 봐서도 사형은 잘못 집행되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억울한 죽음이 없어야 하는데, 이런 억울한 죽음이 사람의 제도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이죠.

4. 우리가 사형제도 등 형벌을 두는 목적은 어디에 있나요?

이런 형벌은 두 가지의 목적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 죄를 처형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런 죄를 못하도록 예방하는 것과 또 하나는 그런 처벌을 통해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고 살도록 교화시키는 것이죠. 사형은 그런 회개의 기회조차 박탈하는 엄한 형벌입니다. 그렇게 엄한 형벌을 내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도저히 재심의 여지가 없는 사람인지 잘 살펴야하겠죠. 그래서 성경은 그 사람의 죄는 미워하되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면 용서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에스겔서에 있는 말씀을 목사님이 들려주시네요. 바로 하나님의 뜻은 죄인이 그 죄로 죽고 멸망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살아나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 지은 채 그렇게 죽어버리기를 바라지 않고,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도 자신이 이 인간 세계에 오신 이유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사형수라 할지라도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런 기회를 주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6. 우리 나라에는 억울한 죽음이 많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보면 참 억울한 죽음이 많았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또 여러 가지 이유로 사형당할 사람이 아닌데 사형을 당한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까?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사형제도는 다시 점검해봐야 할 것이 많다고 보여집니다. 사형제도를 통해서 갖는 이익보다는 도리어 억울한 죽음을 더욱 많이 양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십자가_골고다언덕 예수님이 사형당하신 골도다 언덕과 세개의 십자가



여기까지 말씀하셨을 때 제가 목사님께 정말 묻고 싶은 것을 또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사실 사형제도가 없어져서 사형받을 사람들이 무기수가 되어 감형을 받고 다시 사회로 나와서 또 같은 죄를 저지를 수 있잖아요. 늙어 사회에 나오니 사회에 적응할 수 없고, 그래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데 대상이 더 힘없고 약한 아이들에게 행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경우를 봐도 사형제도는 있어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또 사형수들도 평생 감옥에서 사는 것이 더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목사님이 좀 고민스러워 하시네요. 제가 좀 미워지실텐데 걱정이네요. ㅎ 목사님께서 답변을 주십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죠. 이 세상에 완벽한 제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완벽하게 해도 헛점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출감 대상자들이 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적응 교육을 시키거나 사회에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호장치를 마련해주는 것도 필요하겠죠. 그러나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한 사람이라도 회개해서 새 사람이 되는 가능성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이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 기독교인들은 사형수들이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도와야하지 않겠습니까? ... 

예전에 어떤 목사님으로 부터 저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 죄인에게 가장 큰 형벌은 착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

상당히 역설적인 말이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갑니다. 그래서 저도 간혹 저에게 못된 짓을 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 주님 저 사람들도 저처럼 착한 사람이 되어서 자신에게 해꼬지 하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옵소서" 

여기까지가 목사님과의 대화입니다. 
솔직히 목사님 말씀이 다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왠지 시원하지는 않지만,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오늘 우리 교회가 돌보고 있는 사형수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업데이트(Update) : “새로운 포스트 제목”과 관련된 더 많은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신고

댓글

  • Favicon of http://killerich.com BlogIcon killerich2010.03.13 07:36 신고 우리밀맘마님~ 즐겁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우리밀맘마2010.03.13 10:09 신고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 Favicon of http://blog.daum.net/maisan2 BlogIcon 표고아빠2010.03.13 07:37 신고 죄인에게 가장 큰 형벌은 착한 사람이 되는것이다
    라는 말씀이 참 인상적이네요.
  • 우리밀맘마2010.03.13 10:10 신고 사실은 그게 제일 힘든일이겠지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 Favicon of http://bloping.tistory.com BlogIcon 새라새2010.03.13 07:48 신고 사형제도도 제도지만 솔직히 죄값을 치르고 나온사람들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정책이 많이 부족하니..
    항상 죄인들은 그밥에 그나물로 전과자라는 명찰만 달고 세상에서 등을 지게 되는거지요..

    그렇다고 중죄를 지은사람들은 당연히 마땅한 죄값을 치러야 되는건 맞고요..사형이 오히려 세상을 등지는 삶보다
    나을 수도 있겠네요.......음~~~ 너무 무겁게 무슨말인지도 모르겠네요 ㅋㅋ

    즐거운 주말 되세요^^
  • 우리밀맘마2010.03.13 10:11 신고 그러게요.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 Favicon of http://heysukim114.tistory.com/ BlogIcon 저녁노을2010.03.13 08:45 신고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좋은 말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 우리밀맘마2010.03.13 10:12 신고 정말요. 그런데 이런 말이 생각이 나네요. 죄는 미워하데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 Favicon of http://iconiron.tistory.com BlogIcon 레오2010.03.13 10:40 신고 살인자에게는 '사형'이라는 형벌이 반드시 필요하답니다
    교화가 되지 않는 극악한 인간이 있답니다
  • 우리밀맘마2010.03.13 10:52 신고 제가 보기에도 그런사람들도 있어보입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 Favicon of http://blog.daum.net/nhicblog BlogIcon 건강천사2010.03.13 12:01 신고 글 읽으면서 '사형제도' 에 대해 생각가지게 되네요.
    좋은 대화 경청하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 우리밀맘마2010.03.13 13:55 신고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 Favicon of http://www.tory-burch-outletstore.com/ BlogIcon tory burch2011.11.12 12:47 신고
    .글 읽으면서 '사형제도' 에 대해 생각가지게 되네요.
    좋은 대화 경청하고 갑니다.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부부가 와인 한 잔 하는 것도 죄가 되나요? 목사님께 물었더니..

우리밀맘마2014.09.12 06:46

기독교의 금주 금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부부가 와인 한 잔 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기독교인

 

부부가 와인 한잔 하는 것도 죄가 되나요?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또는 기독교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일 것입니다. 일단 교회다니는데 술담배를 한다고 하면 제대로 된 기독교인 취급을 안하죠. 이것이 어떤 때는 순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처음 예수를 믿으려 하는 사람에게는 큰 걸림돌이 됩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언제가 술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게 되기 때문이죠.

 

기독교인은 왜 술담배를 하지 않아야 할까요? 그런데 가끔 외국 영화 같은 것을 보면 목사님들도 가볍게 와인 한 잔 하는 그런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술담배를 하지 않는 것은 한국교회만의 특수한 상황인가 그런 의구심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이 술담배에 대해 한 번 심도 있게 알아보고자 합니다.  

 

 

 

금주_구세군신문

한국교회에서는 술담배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한국교회사를 보면 성탄절에 술을 빚어서 교인들과 함께 나누어 마신 일이나 예배 전에 담뱃대를 정렬해 두었다가 예배를 마치고 함께 담배를 피웠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 담벼락에 삿갓과 함께 긴 곰팡대 그려져 있었다고 하고, 언더우드 선교사가 선교 초기에 담배를 피었지만 나중에 금연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처럼 선교 초기 한국교회에서 술담배는 크게 문제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선교가 본격화되면서 한국 교회에 금주 금연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한국 기독교에 금주 금연 운동이 일어난 때는 1890년대 이후로 보고 있는데,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먼저 당시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대부분 대중설교가로 알려진 무디나 R. A. 토레이 또는 조지 휫필드의 영향을 받은 청교도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들 청교도주의자들은 신앙운동으로 내면적인 경건 운동을 펼치면서, 음주, 흡연은 물론 껌을 씹는 것이나 연극을 보는 것까지 금할 정도로 삶에 직접적으로 필요 없는 것들에 대해 철저히 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음주와 흡연에 대체로 너그러운 태도를 가진 선교사들도 음주와 흡연이 한국사회에 끼치는 폐해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무엇보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한 것입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독점하고 있는 일제가 이를 통해 엄청난 경제수탈을 일삼고 있었고, 이로 인해 한국경제는 더욱 피폐해져 갔으며, 이런 조선을 살리기 위해 금주 금연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즉 교회에서의 금주 금연 운동은 기독교인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개혁하는 사회 운동으로 변모하였으며, 나라를 살리는 운동으로 발전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선교사들이 금주, 금연운동을 추진할 때 크게 3가지 점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첫째는 신앙상 유익하지 않다는 것이죠. 극단적인 분들은 “술 먹다가 죽으면 그 영혼이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는 주장까지도 펼쳤습니다. 둘째는 건강에 해롭다는 의학적인 이유와 셋째는 개화 혹은 국민의식계몽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전개된 기독교의 금주 금연 운동은 마침내 술 담배를 기독교인이 해서는 안되는 4중적 범죄로 규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술 담배가 왜 나쁜 것인가? 첫째는 하나님께 범죄하는 일이며, 둘째는 교회 법을 어기는 일이요, 셋째 부모, 형제, 처자에게 광언지설(狂言至設)하는 일이 되고, 넷째 자기 몸을 망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죠. 이렇게 나쁜 짓이니 기독교인은 절대 음주 흡연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전통에서는 주일성수, 제사 중지, 노름 및 도박의 금지, 축첩(蓄妾) 금지 등과 함께 금주 금연은 세례 받을 때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취급되었으며, 마침내 이러한 금주 금연은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와인_부부

 

얼마 전 제 지인 중 한 분이 전화가 왔습니다. 추석을 맞아 아주 좋은 포도주를 누가 선물해줬는데 이거 마셔도 되겠냐구요? 아마 집에 들고 가면 아내가 기독교인이 무슨 술이냐며 혼을 낼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남 주기엔 아깝고 어쩌면 좋겠냐는 것입니다.

 

제가 웃으며 '와인 한 잔 하며 부부가 분위기를 내는 것을 두고 하나님께서 뭐라하시진 않을 것 같다, 도리어 와인 한 잔이 부부관계를 더욱 좋게 한다면 하나님도 좋아하시지 않겠는가?' 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술버릇 나쁘게 들면 어떡할 거냐고 곁에서 따지는 분이 있어서 또 한 마디 해주었었습니다.

 

"여지껏 예수 믿고 살면서 술 하나 다스리지 못한다면 그것도 참 큰일이로세~"

 

술은 중독성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절제하는 신앙의 훈련을 통해 그것을 인생에 유익할 수 있도록 다듬는 것도 필요합니다. 술의 위험을 잘 경계하여 멀리하는 것도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이며, 또한 술이 인생에 유익을 줄 수 있도록 음주 문화를 바꾸어가는 것도 그리스도인이 해야할 일인 것이죠.

 

다음 편에는 술담배 신앙의 척도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주제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by 이글은 코이네 목사님께서 주셨습니다.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어린이날 우리 아이들에게 꼭 가르쳐야 할 네 가지

우리밀맘마2014.05.05 07:25

우리 아이들 꽃처럼 아름답게 자라길 바라며...


어떤 무명시인의 글입니다.

만일 어린이가 비평과 함께 살면 그는 정죄라는 것을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증오와 함께 살면 그는 싸우는 것을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고통속에 살면 그는 자학을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수치 가운데 살면 그는 죄책을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관용과 함께 살면 그는 참된 것을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격려와 함께 살면 그는 자신감을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칭찬과 함께 살면 그는 감사를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공정한 가운데 살면 그는 정의를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안정한 가운데 살면 그는 믿는 것을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인정 받으며 살면 그는 스스로 사랑함을 배운다.
만일 어린이가 용납되는 환경 속에서 우리와 함께 살면 그는 세상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것을 배운다.

어린이날, 그저 아이들에게 무슨 선물을 해줄까 하는 고민도 좋지만, 마땅히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이 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우리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첫째로, 자기 발견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어른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어린이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데 촉매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오늘 한국사회 속에서 어린이들을 생각해 볼 때 그들은 시간과 활동의 공간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마치 영재교육을 시키듯이 부모가 열의를 보이고, "공부하라" 반복적인 명령에 따뜻한 대화의 창구를 잃어버린 어린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부모는 자녀들과 인격적인 성장을 위한 따뜻한 대화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오히려 감시 당하고 감시하는 비뚤어진 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경시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어린이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생각을 펼 수 있는 대화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대화의 장을 통하여 억압과 피해의식에 잡혀 있는 아이들의 사랑결핍을 치유해야 합니다.

부모의 기준으로 자녀를 대할 것이 아니라, 자녀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용납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용납을 믿고 자란 자녀는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며, 나아가 다른 사람과 사회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아이들

둘째는 봉사정신을 갖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올바른 가치관을 가르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그릇된 가치관을 권력과 물질 만능의 가치관입니다. 기독교 신앙과 예수의 정신에서 볼 때에 사회 속에 이러한 병리현상은 큰 문제입니다.

은연중에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큰 사랑, 높은 사람이 되라, 많은 가진 부자가 되라"는 암시적인 압력은 가치관의 전도와 생활관의 파멸의 씨를 뿌리게 되는 것입니다. 권력과 물질 지향적인 가치관 내지 생활관은 결국 이기적인 자기 중심성의 인간이 되게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크리스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섬김의 가치관을 분명히 터득시켜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 꽃과 같이 자기 향기를 풍기며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어린이를 꽃과 같다고 하는 것은 꽃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린이도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꽃은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그 모습 그대로를 보존해 가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방법으로 분장을 하거나 꾸미지 아니하고도 아름답습니다. 어른들 처럼 화장을 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어른들처럼 고운 옷을 입지 않아도 귀엽고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꽃을 바라보게 될 때 진실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어린이도 진실합니다. 꽃은 사람을 속일 줄 모릅니다. 문자 그대로 순결합니다. 순수하고 깨끗합니다. 어린이의 티없이 맑은 눈동자 속에서는 진실하고 순전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꽃에서 향기가 나듯이 어린이에게는 무언가 모르게 어른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습니다. 자신의 향기를 발하여 세상에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넷째,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고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꽃이 아름답고 순결하기는 하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꽃에는 열매라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망스러운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린이의 마음속에는 천국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H.F. 아미엘이란 사람은 "어린 아이들 틈에서만, 우리는 이 지상에서 천국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의 생활은 고스란히 하늘에 속한다"고 말했습니다. 꽃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는 꽃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꽃에서 순결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에게서 더 맑은 천진난만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에게서 천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인 타고르는 "모든 아이는 아직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절망하고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품고 탄생된다"고 했습니다. 어린이는 소망입니다. 예수님은 아이들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의 메시지, 미래를 위한 가능성을 보셨던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중한 것은 꽃보다 더 아름다운 어린이입니다. 어린이는 인생의 계승자, 소망의 씨앗, 내일을 밝히는 등불, 남자와 여자가 사랑해서 이룩하는 오직 하나의 진실입니다. 


--2014년 어린이 날에, 오늘은 참 우울한 어린이날입니다. 우리 아이들과 어린이날 연휴를 즐기고자 했건만, 첫째는 친구 만나러 가서 안된다 하고, 둘째는 친구만나고 학원가야 한다 하고, 셋째는 공부하러 학교 가야 한다 하고, 넷째는 친구만나러 간다 합니다. 우리 부부 어린이날에 왕따 당했습니다. 그저 둘이 서로 마주보고 방바닥이나 긁어야겠네요.

 



 


by 우울한 어린이날에 우리밀맘마와 우리밀파파가 끄적거렸습니다.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부활절 칼럼, 부활은 우리의 소망

우리밀맘마2014.04.16 06:31

부활절 칼럼, 부활은 우리의 소망

 



부활절을 앞두고 저와 같이 팀블로그를 하고 있는 코이네 목사님께서 좋은 칼럼을 보내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부활은 우리의 희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셔서 모든 사람들과 온 세상의 소망이 되셨다.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당시 제자들은 두려움과 절망의 세월을 보내었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그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이 되었다.

세계 경제의 침체와 더불어 경제상황이 더욱 악화되면서 우리사회는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어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마땅히 취직할 곳이 없어 청년실업이 늘어나고 있으며, 무너지는 기업, 직장을 잃어버려 생계가 위협받는 가정, 무엇 하나 안정적인 것이 보이지 않는 무덤같은 현실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사리사욕을 위해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는 정치인들과 생명을 경시하는 우리 사회의 비극적 사건들, 퇴폐와 향락으로 병들어 가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 또한 불안과 위기가 커지고 있어 어디를 둘러보아도 더 이상 희망을 갖지 못할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두려움과 절망의 벽에 에워싸여 아파하는 우리 사회의 참된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주님의 부활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하신 위대한 승리의 사건이다. 우리는 이 희망을 이루는 사명자로서 부름을 받았다. 주님의 부활의 날, 성령충만한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절망에 신음하는 이 땅을 치유하며 행진하는 영광의 날이 되길 기원한다.

by 코이네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CCM 십자가 그 사랑, 날 감동시켜 울려버린 찬양 가사

우리밀맘마2014.02.26 08:09

찬양인도 콘티짜기, 십자가 그 사랑 찬양 가사에 은혜 받고 펑펑 울어버린 사연


 

제가 올해부터 우리교회 오후 찬양예배 찬양인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얼떨결에 맡게된 것이었는데, 솔직히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크게 부담이 되고 힘이 드네요. 찬양인도자들의 고충을 조금 몸으로 이해하고 있는 중입니다.

완벽음치인 제가 우리교회 찬양인도자가 되었습니다

3번째 찬양인도가 끝난 주일부터 다음 주일 찬양을 어떻게 준비할지 부산하게 생각하며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먼저 찬양을 뽑은 후 컴퓨터에도 저장을 하고, 찬양멤버들에게 다음주 찬양곡을 문자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울 아들에게 어떻게 하면 핸드폰에 원하는 찬양을 저장한 후 반복해서 들을 수 있는지 도움을 청했습니다.


십자가

 



그런 후 매일 시간이 있을 때마다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남편에게 찬양곡을 보여주며, 좋은 찬양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십자가 그사랑’을 권해주네요. 다른 곡들은 내가 원하는 곡을 뽑아서 어느정도 느낌도 감정도 있는 것 같은데 ‘십자가 그사랑’은 가사가 귀에도 잘 들어오지 않고 감정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도 남편의 추천곡인지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찬양을 들었습니다. 토요일날은 십자가 그사랑만 계속 반복해서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찬양을 듣는 중 찬양가사와 제가 돌보고 있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오버랩되어 생각나는 겁니다. 

우리 아기들 정말 귀엽고 이쁩니다. 그런데요, 이 아기들 중에도 청개구리처럼 하지 말라는 건 하고, 하라는 건 하지 않는 애기도 있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애들 중에도 하나가 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럽다가도 청개구리처럼 반복해서 행동할 때면 속에서 좋지 않는 감정이 올라옵니다. 영화배우 김희애씨가 사내애들 키우면서 열받을 때 장롱문을 열어놓고 그 안에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던데, 어떨 땐 좀 그러고 싶을만큼 부아를 치미게 만드는 녀석이 있답니다. 

우리 집에도 그런 사람 한 분 있습니다. 치매가 있는 친정엄마, 뭔가에 꼿히면 아무리 말려도 계속적으로 얄미운 행동을 반복합니다. 거의 제 머리 뚜껑을 열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지 그렇게 제 마음을 뒤집어 놓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십자가그사랑_악보

 




그런데 '십자가 그 사랑' 찬양 가사에 실린 노랫말이 계속 반복해서 제 마음에 들어오니, 내가 하나님께 이랬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날 사랑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구나.. 찬양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면서 어느 새 전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돌 같은 내 마음, 어루만지사, 다시 일으켜 세우신 주를 사랑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고집스러우면 우리의 마음이 돌같다고 표현할까요? 하나님은 그런 돌같은 내마음을 욕하지도 때리지도 부서버리지도 않고, 어루만지시구나!

2절의 가사도 절 감동시킵니다.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지 않고, 이전에 행한 모든 일 생각지 않으리"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들추지 않으십니다. 그저 용서하시고 잊어버리신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가족에게 우리의 이웃들에게 묵은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고, 그것이 쓴뿌리가 되어 서로를 미워하고 할키고, 마침내 원수가 되기까지도 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지나간 모든 일들은 생각하지 않고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여전히 고집스럽고, 자기 생각대로 욕심대로 사는 저희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모습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놓치지 않고 계시지 않습니까? 강제로 우리를 바꿔놓으시려 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변화되길 마음모아 기다리신다는 겁니다. 

‘아하! 그렇구나!’ 치매 엄마를 모시면서 나에게 부족한 마음이 그런 마음인 것 같습니다 돌같이 굳은 것 같은 엄마의 생각을 어루만지지 못한 것, 앞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더 좋은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는 소망을 덜 가진 것입니다. 

십자가 그사랑,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기에는 저는 아직 믿음도 생각도 어립니다. 하지만 이렇게 찬양을 통해 느끼게 하시고, 또 소망가운데 일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by우리밀맘마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산타클로스의 정체, 산타는 성니콜라스가 아니라 짬뽕이다

우리밀맘마2013.12.24 07:40


산타의 정체, 성니콜라스에서 코카콜라의 CF 주인공 산타가 되기까지 변신 과정을 밝힌다.

 

 

 

드디어 성탄절이 다가왔습니다. 성탄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과 산타일 것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생일날인데, 어떻게 된 건지 요즘 예수님은 잊혀진 주인공이 되고, 산타가 안방을 차지한 느낌..그래서인지 요즘 교회에서는 되려 산타 추방 운동까지 벌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옛날에는 산타가 들어간 "루돌프 사슴코, 울면 안돼.." 등의 캐럴송을 즐겨 불렀는데, 요즘 교회에서 그런 캐럴송은 듣기 어려워졌네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산타, 예수님의 생일날, 도리어 예수님을 제치고, 주인 행세를 하는 산타의 정체에 대해 지난 주일 교회에서 목사님께 배웠습니다. 그런데 산타의 정체, 전 좀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ㅎㅎ 그게 아니더군요. 오늘 이 시간에 제가 배운 산타의 정체를 알려드릴께요.  

 

산타_니콜라스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는 산타

 



산타란 누구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Santa는 아마 북부 추운 나라 어딘가 에서 탄생했을 거라 믿습니다. 그러나, Santa는 Turkey의 중앙, Anatolia 지방의 남쪽 Myra라는 곳, 그러니까 추운 곳이 아니라 오히려 사막지형에 가까운 곳에서 기원전 4세기에 일생을 보낸 실존 인물 St.Nicholas가 원조입니다. 
 
당시 그 지역의 주교로 있던 성니콜라스는 어린이를 특히 좋아하였고, 또 많은 선행을 행했습니다. 어느 날 그 마을에 사는 세 명의 자매가 구혼자가 있음에도 가난해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자 이들을 몰래 도와 주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저녁에 그 집 지붕에 몰래 올라가 금 주머니를 굴뚝으로 떨어뜨렸는데, 공교롭게도 그 금 주머니가 벽난로에 걸어 두었던 양말에 들어가게 되었다네요.그래서 성탄절 전날에 아이들이 선물을 받기 위해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두는 풍습이 생긴 것이라 합니다. 

 

산타_성니콜라스 산타의 원조가 된 성 니콜라스 주교

 



그후 12세기 초 프랑스의 수녀들이 니콜라우스의 축일 (12월 6일)의 하루 전날인 12월 5일에 과거 성 니콜라우스의 선행을 기념해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했고, 그 풍습이 유럽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17세기쯤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사람들이 자선을 베푸는 사람을 성 니콜라우스라는 이름 대신 산테 클라스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산타클라스는 뉴욕에서 자본화, 상품화의 연금술사 미국인들에 의해 지금 모습의 Santa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재탄생된 산타클로스는 그 정체마저 다시 세탁이 되어 터키의 성자 니콜라스가 아니라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는 전설적인 인물로 각색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산타가 스칸디나비아 반도 어디에 산타 본부가 있다고 여겨져 매년 전세계 어린이들이 자신의 소망과 받고 싶은 선물을 적은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스칸디나비아에 있다고 알려진 Santa 는 원래 이 지역에서 구전되던 말을 타고 선물을 나눠줬다는 바이킹의 신 Odin과 염소를 타고 비슷한 일을 했다는 그의 아들 Thor의 전설이 미국식 Santa와 결합된 것이라고 하네요. 


 

산타_오딘산타와 결합된 바이킹의 신 오딘

 



그러니까, 터키에 살았던 St.Nicholas와 염소를 타고 다녔다는 바이킹의 신이 미국에서 만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지금도 아이들의 동심에서 살아, 성탄절의 주인공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Santa 할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산타는 짬뽕이라고 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슬프기까지 한 전설의 우여곡절이지만 그 모든 것이 섞이고 무쳐 오늘날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핵심은 바로 St.Nicholas의 인류애와 박애정신이 지금의 Santa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배불뚝이 빨간 옷의 산타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그런데 성니콜라스의 화신이라는 산타, 그 산타는 어떻게 빨간 옷을 입은 뚱뚱하고 배가 불룩할 뿐 아니라 기분좋게 "호! 호! 호!"하고 웃는 흰 수염이 있는 싼타클로스 할아버지로 캐릭터화 되었을까요? 

그리고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면서 "호~ 호~ 호 메리크리스마스" 하고 달리는 싼타클로스의 모습은 1822년 성탄절 이브에 미국의 신학자인 클레멘트 무어라는 분이 쓴 시인 "성 니콜라스의 방문"에서 처음 등장하였다고 합니다.

산타_성니콜라스의 방문 무어가 지은 성니콜라스의 방문

 



그런데 재밌는 것은 호주에서는 산타의 '호~호~호~'라는 웃음소리가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를 가졌다하여, 법적으로 산타에게 이렇게 웃는 것을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웃음 소리인 Ho-Ho-Ho에서 'Ho'와 비슷하게 들리는 'Hoe'가 '매춘부'라는 뜻의 단어 'whore'의 속어이기 때문이라네요. 산타는 호주에선 또 다른 웃음을 개발해야 감옥에 가지 않겠네요.  

산타_네이트Tomas Nast가 그린 산타

 



그리고 원래 날씬 했던 산타가 흰 털이 달린 빨간옷과 검은 벧트를 두르고 긴 고깔모자를 쓴 뚱뚱보가 된 것은 미국 만화가 Thomas Nast가 1863년에 그린 만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20년동안 잡지에서 산타의 캐릭터를 계속 발전시켜왔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1931년, 미국의 음료 회사 코카콜라가 겨울철 콜라 제품 판매량이 급격히 감소하자 이를 막기 위해 홍보 전략으로 코카콜라의 상징적인 색, 붉은 색을 산타클로스에게 입히면서, 백화점 홍보에 나선 이후 이 모습이 크게 유행이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산타_코카콜라 코카콜라의 CF에 등장하는 산타

 



이제 산타의 정체를 아셨죠? 제 생각에는 예수님을 닮은 성니콜라스처럼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하는 착한 마음을 가지고 이번 성탄에 선한 일을 하신다면 (물론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는 것도 포함해서요) 그도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산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Merry Christmas ~~~  행복한 성탄 되세요.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성탄절 꽁트, 롤러코스터 예수님의 성탄절 탐구생활

우리밀맘마2013.12.09 20:32

 


성탄절 꽁트, 롤러코스터로 꾸며본 예수님의 성탄절 탐구생활


 

예전 정가은, 정형돈이 열연한 “롤러코스터 남녀탐구생활”이란 프로그램이 있었잖아요? 아주 흥미진진하면서도 정말 공감가는 내용이라 참 즐겨봤더랬습니다. 울 큰 딸이 당시 중 3이었는데, 이 롤러코스터를 모방해서 성탄절 꽁트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지금 읽어도 참 재밌어서 이전 버전을 조금 수정하여 발행합니다. 혹 성탄절 꽁트 필요하심 첨부화일 다운 받으셔서 사용하셔도 됩니다.
 

 

 

 

 

롤러코스터 성탄절 탐구생활

여자의 성탄절탐구생활이에요

(성탄캐럴이 흐르며, 나레이트가 대사를 한다. 나레이터가 읽는 내용을 미리 동영상으로 찍어 화면으로 보여준다.)

나레이터: 여자는 얼마 전에 맞춘 성탄절 캐럴소리로 성탄아침을 맞이해요. 이런 벌써 교회가기 한 시간 전이에요 어제 성탄이브랍시고 교회에서 뽀사지게 놀다 늦잠 잤어요. 아침햇살이 너무 눈이 부셔요. 못일어나겠어요.

두 번째 알람소리에 결국 일어나 알람을 끌려고 폰을 봐요. 성탄절에 문자 주는 친구도 없고, 놀러가자는 남친도 없어요. 어제 교회애들이랑 놀았어요. 다 쏠로들인데, 이상하게 남은 것들끼리는 썸씽이 잘 안나요. 나고 싶지도 않아요. 잠시 그런 자신이 한심해져요.

앗! 또 뾰루지가 났어요 이런 우라질 브라질 양치질. 어저께 놀러간다고 얼굴을 달덩이처럼 하얗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비비를 떡으로 발랐어요. 근데 폼클랜징한 기억이 없어요. 앞머리를 들춰보니 곧 있으면 맛있게 익을 여드름도 보여요 망했어요.

오늘은 예수님 탄생하신 날인데 사실 기쁜지 모르겠어요. 한마디로 그냥 그래요. 기뻐해야 될 것 같아서 기뻐해봐요. 조금 기쁜 거 같아 다행이에요. 어쨌든 교회에 가야해요. 크리스마스라서 뭔가 하나 빨강색을 입어야할 거 같아요. 빨간 코트는 너무 튀어요. 빨간 스키니는 유행 지났어요. 그냥 빨간 머플러를 감아요. 이 정도가 딱 간지나요.

얼짱 누구가 했다는 대로 따라 매 봐요. 나도 잠시 얼짱이 된 거 같아요. 뾰루지 따위는 보이지 않아요. 다시 예수님께 감사하며 곧장 교회에 가요.


성탄공연성탄공연 중 캐럴댄싱



남자의 성탄절 탐구생활이에요

(배경 음악이 바뀌고, 앞과 마찬가지로 나레이터의 대사에 따라 동영상 화면이 나타난다.)

알람이 울려요. 성탄절이든 뭐든 상관 없어요.  몇 주 전과 같은 알람이예요. ‘오빠 일어나세요’ 목소리가 김태희 같아요. 목소리는 김태희인데 얼굴도 김태희일까 생각해요. 그냥 그러리라 믿어요. 알람 듣고는 절대 일어나지 않아요.

이차 알람이 울려요. 무시해요. 눈을 떴는데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 얼굴이 눈앞에 있어요. 이런 화난 엄마예요. 엄마는 용돈 줄때는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지만, 잠 깨우러 식칼들고 내 눈 앞에 있을 때는 사람인지 괴물인지 구분이 가지 않아요. 결국 엉덩이를 한 대 걷어차이고서는 일어나요.

교회 집합 시간까지 이십 오분 남았어요. 자신의 용모를 점검해보아요. 머리에 또 새가 집을 지었어요. 머리 모양은 그대로 두면 에네르기파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화장실로 가서 머리를 감아요. 내 머리가 한겨울 팥빙수의 일부가 돼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난 괜찮아요. 난 강한남자니까요.

머리 말리고 무스 바르고 옷 입고, 침으로 구렛나루를 정리하는데 10분이면 오케이. 거울 앞에서 구레나룻을 간지 나게 정리하면서 한탄해요. 나 같은 잘난 남자를 여자들은 왜 이렇게 몰라볼까 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금방 자존심을 회복해요.

괴물(엄마)이 째려봐요. 얼른 이곳을 탈출해야겠어요. 갈등의 순간이예요. 왼쪽은 교회고 오른쪽은 피씨방이에요. 오늘 크리스마스라고 따블 따따블 이벤트를하는 게임들이 생각나요. 딱 두시간만하면 만렙을 찍을수 있을 것만 같아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이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데, 누군가 보고 있는 거 같아요. 그냥 교회에 가기로 해요.




 

성탄공연아이들의 멋진 캐럴댄스



<배경은 무대 위>

나레이터: 교회에 가니 아이들이 득실득실해요. 여자와 남자는 오늘 해야 하는 공연이 걱정돼서 심장이 바깥으로 튀어나올 거 같아요. 하지만 괜찮아요. 그냥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어요.

여자: “야 늦어서 미안해~”

나레이터: 여자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것을 한번 어필하고 은근히 자신의 간지 나는 머플러를 쪼물락거리면서 다른 아이들의 패션을 스캔해요. 나 정도면 중간이상은 가겠다고 생각해요.

남자 : “아 진짜 오늘 피씨 갈까하다 니들하고 의리 땜에 걍왔다”

나레이터: 늦게 왔지만 같은 녀석들 속에서 미안하단 말은 절대 못해요. 자존심 상해요. 모두 다 대충 미안하다는 걸 알아 듣는것 같아요. 한 녀석이 눈치를 줘요. 앗싸 가오리. 나중에 결국 피씨 가겠어요. 리허설한다고 모이레요. 근데 어떤 애가 잡아 세우고는 몰아붙여요.

예쁜여자: “니들 땜에 늦게 시작했잖아. 아 진짜 난 솔로 파트 맡아서 이것 저것 맞춰야하는 것도 많다고, 이렇게 하려면 그냥 하지 마”

나레이터: 여자는 생각해요. 얼굴 쬐끔 이쁘다고 설치는 저 애가 정말로 맘에 안들어요. 나보다 간지도 안 나는게 어디서 까부냐고 생각은 하지만 잘못했기에 뭐라 말할 수 없어요. 저애 맘에 담아 두겠어요. 남자는 생각해요. 자존심도 무너지고 잘난 체나 하는 저 여자애가 심히 재수 없고 눈에 거슬리지만 이쁘니까 참아주기로 해요. 예쁘면 ㅎㅎ 용서가 되요.

예쁜여자 : 자 얘들아 시작한다.
(캐럴에 맞춰 멋진 율동 군무를 한다.)


성탄공연천사들의 합창



 

예수님의 탐구 생활이예요


(배경음악이 바뀌고, 예수님 무대에 나온다. 나레이터의 대사에 따라 예수님이 모션으로 연기하고, 화면에는 관련 사진들이 보여진다)


천사와 마리아 마리아에게 예수 탄생을 알리는 천사 가브리엘



나레이터: 예수님이 생각해요. 일단 오늘 여자와 남자에 대한 불만을 한번 털어놓아 보겠어요. 아침부터 맘에 안들어요. 누구 하나 내 생일 축하해주는 사람 없어요. 여자는 캐롤이라고 틀어놨는데 루돌푸사슴코에요. 그래도 난 고요한밤 거룩한 밤은 될 줄 알았어요. 거기다 나의 탄생을 기뻐하는 것 보다는 자기 외모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남자도 마찬가지에요. 나한테는 관심 쥐뿔도 없어요. 여자와 피씨방에 밀린 느낌이에요. 평소엔 내 생각도 안하다가 맘에 드는 애 나타나면 그제야 나한테 기도해요.

그리고! 요즘 보면 말이죠. 성탄절이 내가 난 날인지 산타가 난 날인지 잘 구분이가지 않아요.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나한테 기도를 해야지, 생존이 불투명한 산타에게 기도를 해요. 알아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해요. 어이가 없어요, 나한테 한마디만 하면 다 들어줄 텐데 말이죠. 내가 얼마나 자기들을 사랑하는 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왜 그걸 모를까요. 나에게 사랑 하나만 준다면 몇 백배 몇 천배로 갚아줄 수 있다는 것을요. 아무래도 내 자식들은 내가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 내려왔다는 걸 자꾸 까먹는것 같아요.

(무대에 아이들 등장하여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다)

저거 저거~ 또 싸우고 난리에요. 오늘은 사랑의 성탄절이에요. 우리 서로 화목하고 사랑하며 지내기로 해요. 화해하세요. 손잡고 악수하고.. 네 잘했어요.

(아이들 악수하고, 포옹한다. 그리고 두손을 올려 사랑의 하트 만들기)  



예수의 탄생 연극 탈모 완료된 예수님 인형을 안고 있는 요셉과 마리아


 


오늘 날 위해 이렇게나 많은 공연들을 한다니 사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요. 하지만 성극할 때 탈모 완료된 인형 하나 포대기에 씌워 놓고 나라고 하는 것만은 피해주세요. 저거 나 아니에요. 잘하고 못하고는 신경 쓰지 않아요. 그저 여러분의 나를 향한 마음과 그 정성을 받고 싶어요. 그것만으로도 난 정말 행복하니까요. (*)


이 꽁트는 당일 무대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장면은 아주 적습니다. 대신 무대에 아이들이 나오는 장면에서 멋지게 캐럴이나 율동 공연을 하면 더 흥겨워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영상도 사람이 움직이는 동영상보다는 나레이터 대사에 맞는 스틸컷을 연결해서 나레이터 대사와 맞추는 것이 더 재미나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 교회 아이들은 그렇게 만들었는데 아주 재밌었습니다.
이상입니다. 재미있으셨나요. 예수님이 행복하시는 그런 성탄절을 만들어봐요.
 

예수님의 평화와 사랑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하시는 일에 만땅으로 임하시길 바래요.

메리 크리스마스 ~~~~~


성탄절 꽁트_성탄절 남녀탐구생활.hwp



 



 


by 우리밀맘마

신고

댓글

  • Favicon of http://blog.naver.com/lm5sja7/10181029226 BlogIcon 은주2013.12.10 18:15 신고 감사히 잘봤어요! 재미있네요~
    다른 페이지에서보니 중딩이 썼다고 되있는데 대다나다.ㅎㅎㅎ
    예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어 감사한 것 같아요~~^^
  • Favicon of http://gajokstory.com BlogIcon 우리밀맘마2013.12.11 22:11 신고 감사합니다. 이 글은 제 큰 딸이 중학교 때 쓴 것인데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네요. 행복한 성탄 맞으세요.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하트경영시대와 마음을 가꾸는 지혜로운 사람

우리밀맘마2013.12.06 09:30


마음을 가꾸는 지혜로운 사람, 하트경영시대와 예수님이 하신 좋은 밭의 비유

 


변화 관리 전문가 윤은기 씨는 21세기를 ‘하트 경영 시대’라고 정의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 머리를 잘 쓰는 사람은 초반에는 성공하지만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을 잘 쓰는 사람은 점점 더 좋아지게 됩니다. 마음도 잘 쓰고 머리도 잘 돌아가게 되면 물론 더 잘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마음을 잘 쓰면 머리도 잘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마음씨도 모자라고 머리도 나쁘면 큰 사고는 내지 않지만 마음씨가 나쁘면서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대개 큰 위험을 겪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땅에 비유하셨습니다. 그 비유에는 길가와 흙이 얕은 돌밭, 가시 떨기가 많은 땅 그리고 좋은 땅, 이렇게 4가지 모습의 땅이 등장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4가지 종류의 마음 밭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우리 힘으로는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태어날 때부터 그 운명이 정해진 우리들을 약올리는(?) 그런 말씀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예수님께서 그러실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비유를 통해, 우리 모두의 마음이 옥토가 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희망”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구라도 그 마음이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옥토, 수십, 수백 배의 결실을 맺는 옥토가 될 수 있다는 그런 가능성 말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절망시키는 말씀이 아니라 희망을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익은 곡식마음밭이 좋아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마음을 잘 가꾼다는 것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열심히 배우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을 잘 가꾼다는 것은 매일 매순간의 일상생활 가운데에서 마음을 잘 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아기를 가진 엄마가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으면서 아기에게 아름다운 것을 주고 싶어 하듯이 자기 마음을 그렇게 돌보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을 대하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그것들이 내 마음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하며, 악한 생각들로부터 자유롭게 살 수는 없지만 그런 생각들이 나를 지배하고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마음을 가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을 가꾸고 다듬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속사람을 단장하라고 강조합니다. 겉사람을 아무리 단장해도 속사람이 단장되지 않으면 언젠가는 표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쓰는 언어를 자세히 관찰하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늘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말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언어는 마음속에 집을 짓고 삽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에게 자신도 모르게 눈길이 갑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고개가 숙여지도록 만드는 아름다운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마음은 정원과 같습니다. 잘 가꾸면 아름답지만 방치해두면 금새 잡초로 뒤덮혀 악취가 나고 보기 흉해집니다. 마음에 잡초가 뒤덮혀 버리면 우리들의 말과 행동도 아름다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혹 너무 바빠서 마음을 가꿀 여유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일은 중요하기는 하지만 긴급한 일이 아니기에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 가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2)

위 글은 어느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제가 편집한 것입니다. 마음을 가꾸어야한다는 제목이 너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오늘도 제 마음을 주님께서 아름답게 가다듬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by 우리밀맘마

소를 타고 다니는 명정승 맹사성 문지방에 머리를 박은 이유는?
☞40대 아줌마의 마음을 감동시킨 행복에 관한 명언들
☞탈북가수 한옥정 작은 시골교회에 주고간 큰 감동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40대 아줌마의 마음을 감동시킨 행복에 관한 명언들

우리밀맘마2013.10.21 06:47

행복에 관한 명언, 아줌마의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행복이란?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저도 행복하게 살고 싶고, 그래서 일도 하고, 글도 쓰고, 신앙생활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이라는 것은 뭐랄까요? 파랑새라는 소설처럼 멀리 있는 무지개처럼 보였다가도 때로는 바로 내 옆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하구요. 있는 듯 하면서도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갑자기 행복이 무얼까 하는 생각에 행복이 무엇인지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밀맘마가 뽑은 "행복이란? 베스트 5"라 할까요? ㅎㅎ 이번 한 주간 시작하면서 이 글을 읽으시면서 나는 행복한 사람인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해보는 것도 좋을 것같습니다.  

1. 톨스토이가 말하는 행복이란? 

“남을 위하여 봉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스펜서라고 하는 소설가도 비슷한 말을 하였네요.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이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사람은 남에게 선을 베풀고 자비를 베풀 때 마음 깊은 속에서 알 수 없는 기쁨과 자부심 그리고 생의 희열이 솟아나게 될까? 이렇게 하면 자신에게는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원치 않는 희생을 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손해보고 희생하는데도 행복한 느낌을 갖는 것, 사람의 속은 참 요지경입니다.

2. 칸트가 말하는 행복이란?

우리가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말로 잘 알려진 철학자 칸트는 행복에 대해 아주 피부에 와닿는 말을 했습니다. 들어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그리 별스런 것은 아니다 싶기도 하구요. 칸트는 세가지가 있으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첫째,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


그렇죠. 내가 할 일이 있고, 사랑할 사람이 있고,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으면 그 사람은 정말 행복하게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억새_온천천가을햇살로 반짝이는 온천천의 억새

 



3. 염세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

그는 행복을 그리 호락호락한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것도 쉽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에, 도리어 행복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보다는 그냥 적당히 포기하고, 기대를 낮추고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라고 보았습니다. 

아마 제가 좀 더 나이가 어렸다면 쇼펜하우어의 이 말에 화를 냈을 것입니다. 뭐 적당히 살라고? 꿈과 이상은 높게 그리고 최선을 다하며 살라고 가르쳐야지 무슨 철학자가 대충 적당히 살라고 하나? 그런데 지금은 쇼펜하우어의 말이 가슴에 와닿네요. 우리를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게 하는 가장 주범이 바로 과도한 욕심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능력보다 훨씬 높은 기대와 목표는 스스로 못난이라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죠.
 
요즘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내몰리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자기 스스로 재미와 열정을 갖고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욕심과 기대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공부하도록 내몰리니, 인생의 꽃을 피워야 할 황금같은 청소년기를 전혀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4. 하버드 대학 교수인 존 롤즈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경청해야 할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그는 행복한 사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회적 약자가 유리해질수록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된다"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여서 그 약자마저도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을 불행하다고 탓할 그런 약자가 없는 사회를 만든다는 것, 그건 그저 이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요?

5. 신앙적인 관점에서 행복이란?

미국의 유명한 설교가 포스틱 목사는 “시험과 실패를 이기고 세상을 이긴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역경을 이기고 승리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연약한 사람이 역경을 이기며 살기 위해서는 역경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그의 책 팡세에서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이 행복하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였고, 시편에 "죄인이 되지 않고 의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 시편에 제 마음에 딱 와닿는 행복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행복감으로 한 주를 정말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27편)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소를 타고 다니는 명정승 맹사성 문지방에 머리를 박은 이유는?

우리밀맘마2013.10.08 09:07


겸손, 조선시대 명정승 맹사성의 일화,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친다는 스님의 충고

 


 

오늘 새벽기도회 때 목사님 하신 말씀의 요지가 완고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교만하고, 자만심에 가득차 있으면, 항상 자신의 생각에 가득차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질 않는다는 것이죠. 이 말씀을 듣다 보니, 세종대왕 때 정승을 지낸 맹사성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맹사성_소세종 때의 명정승으로 유명한 맹사성 그는 소를 타고 다니기로 또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그림:이무성)

 



열 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여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가 무명 선사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대답했습니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 말에 기분 나쁜 듯 피식 웃으며 맹사성이 대답합니다.
 
"그런 건 삼척 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것 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습니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녹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구요,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찻물이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까?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맹사성이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나 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문지방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18:12)






by 우리밀맘마

기독교인들 전도할 때 제발 혐오감이 들지 않게 말해주세요
예수님은 왜 손가락질받는 죄인들과 식사하셨는가?
염려 대신에 기도합시다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기독교인들 전도할 때 제발 혐오감이 들지 않게 말해주세요

우리밀맘마2013.10.02 09:11


잠언25장 경우에 합당한 말, 말은 경우에 합당하게 할 때 빛이 난다. 사람을 빛내는 경우에 합당한 말 10가지, 전도도 경우에 합당하게 하라

 



성경 잠언에 보면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잠 25:11)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라는 말은 은쟁반 안에 금으로 아주 아름답게 사과 무늬를 새긴 것을 뜻합니다. 반짝이는 은쟁반이 식탁에 놓였는데, 그 은쟁반에 더 반짝이는 금으로 수놓은 사과 무늬,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겠습니다. 당시 이렇게 금으로 아로새긴 사과무늬가 있는 은쟁반을 최고의 예술품으로 알아줬고, 또 이런 은쟁반에 음식을 담아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최고의 예우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빗대에 경우에 합당한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 말은 함부로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과 대상에 맞게 잘 사용해야 말이 갖는 가치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죠. 


장미_오월장미, 경우에 합당한 말은 그 사람을 아름답게 합니다.

 



은쟁반에 아로새겨진 금빛 사과 무늬처럼 사람의 인품을 빛내주는 멋진 말이 있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10가지의 말입니다.  

⑴ 마음을 넓고 깊게 해주는 말 『미안해요...』
⑵ 겸손한 인격의 탑을 쌓는 말 『고마워요...』
⑶ 날마다 새롭고 감미로운 말  『사랑해요...』
⑷ 사람을 사람답게 자리 잡아 주는 말 『잘했어요...』
⑸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말 『내가 잘 못했어요...』
⑹ 모든 것 덮어 하나 되게 해주는 말 『우리는...』
⑺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배로운 말 『친구야...』
⑻ 봄비처럼 사람을 쑥쑥 키워주는 말『네 생각은 어때 ?...』
⑼ 언제이든 모든 날들을 새로워지게 하는 말
   『처음의 마음으로 살아가자...』
⑽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말 『너를 위해 기도할께 ...』


동백꽃_꽃몽우리저 꽃몽우리 활짝 피면 아름다운 꽃이 되듯 우리의 말도 그렇습니다.

 



전 기독교인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이 경우에 합당한 말보다는 함부로 말해서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경우를 종종 발견합니다.

특히 전도할 때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사정을 보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전하려고 하거나, 피켓을 들고 동네방네 시끄럽게 떠들며 다니거나, 어떤 경우는 확성기를 들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예수 믿으라고 소리치는 경우를 봅니다. 그런 경우 저도 그 자리를 얼른 피하고 싶은 충동이 듭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에게서 도망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하더군요.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다 저렇게 무례한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심어줘서 교회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하구요. 제발 좀 자제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아침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거울에 이런 광고 문구가 새겨져 있더군요.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예수님_웃음'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라는 문구 옆에 이렇게 환하게 웃고 계시는 예수님 사진이 함께 있더군요. 사진은 제 집에 있는 액자에 있는 그림 스캐닝했습니다.

 



양산에 있는 모 교회를 선전하는 광고문안에 새겨져 있는 글귀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읽고 나니 괜시리 오늘 좋은 일일 있을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어서 아주 기분이 좋더군요. 기분 좋은 말 여러분에게 다시 전해드립니다. 혹 오늘의 운세를 읽어보고 마음이 급 우울해지셨다든지, 괜시리 뭔가 잘 안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든다든지한 분들에게 전해드립니다.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by 우리밀맘마

명절 교회와야한다는 목사님과 고향가라는 목사님
기독교 진리, 질문을 해야 신앙이 성장한다고 하네요
그릇된 신앙으로 아이 죽인 부모 그 비슷한 사례들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이단종교비판,이단연구 발표 적법하다는 대법원판결의 의의

우리밀맘마2013.09.05 17:59


이단종교, 박윤식목사와 총신대교수들 간의 법정공방과 대법원판결,“이단 연구 발표 적법하다”

 


얼마 전 제 블로그에 이단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교단의 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단체의 이름과 그들의 활동에 관한 글이었는데, 사이버 수사대에서 연락이 왔네요.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니 해당 글을 삭제해 달라구요. 내용을 들어보니 제 글에서 오해를 살만한 부분이 있어 이를 수정해 주었고, 문제를 일단락하였습니다. 이런 사정을 블로그로 친분이 있는 코이네 목사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제게 좋은 글을 하나 보내주셨습니다. 아래는 코이네 목사님이 제게 보내주신 글입니다. 이단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좋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박동진_목사_코이네_소토교회글을 보내주신 박동진 목사님,"코이네로 말하라'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1년 5월에 대법원에서 이단에 대한 중요한 판결이 있었습니다.이전 대성교회로 알려진 평강제일교회의 박윤식 원로목사와 우리나라 대표 신학교 중 하나인 총신대 신대원 교수들 간에 벌어진 명예웨손에 관한 법적 다툼에 관한 최종판결이었고, 대법원은 이단에 대해 기독교가 대응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1. 이단으로 정죄된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


대성교회(현 평강제일교회)의 설립자인 박윤식 원로목사는1928년생으로 1957년 5월 동마산 감리교회에서 2년간 서리 전도사로 목회활동을 했으며, 1964년 용산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1966년 11월 예장 호헌총회신학교 본과를 졸업하여, 1967년 2월 목사안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1969년 9월 시온산 한돌교회를 설립한 후, 1971년 11월 일석교회, 1977년 7월 대성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지금은 교회 이름을 평강제일교회로 바꾸었습니다.

박윤식씨는 자신이 지리산에서 3년 6개월 동안 기도하다가 비밀말씀을 받았다 주장하며, 자신을 '말씀의 아버지'라고 하며, 자신을  신격화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비밀말씀을 받았다고 하며 주장한 내용들은 통일교 출신인 변찬린씨가 썼던 [성경의 원리]로부터 대부분 인용 표절된 것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정통교회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여러 주장들을 폈습니다. 이 때문에 박윤식씨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총회와 합동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던 것입니다.
 

2. 박윤식 목사와 탁명환 소장


1994년 2월 18일 밤 우리나라 최고의 이단 문제 연구가인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소장인 탁명환씨가 피습을 받아 숨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그 '범인'이 문제의 대성교회 운전사 임모씨로 밝혀졌으며, 이 교회관계자들이 '범행'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다 들통나 목사와 장로가 구속되기도 하였습니다. 사건을 저지른 임모씨는 탁소장이 박윤식씨의 이단성을 폭로해 온 것에 대해 분개해서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대성교회는 소속되어 있던 총회에서 제명되었고, 이후  대성교회는 평강제일교회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3. 박윤식 목사와 총신대 신대원 교수들 간의 법정공방


이렇게 이단으로 정죄된 평강제일교회 박윤식씨는 어떻게 하든 기성교단에 편입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던 중 지난 2005년 예장합동 교단 가입을 시도하였고, 박목사측에 이단성이 있다고 판단한 합동 교단 소속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들이 교단 가입을 반대하고 나섭니다. 교수들은 박목사의 이단성을 알리기 위해 연구한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해 배포했고, 교단 신문에도 광고 형식으로 게재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측은 총신대 신대원 교수들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하였고, 이 때부터 지리한 법정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5월 대법원은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단성이 의심되는 목회자의 교리를 비판하거나 이를 신문에 광고한 것은 적법하다며 박윤식 원로목사를 비판한 총신대 신대원 교수들의 손을 들어줌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의 설교 내용 속에 총신대 교수들이 신문에 게제한 광고 내용과 같이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 포함돼 있다"고 지적하였고, 또, 박 목사에 대해 이단성을 문제삼은 탁명환 소장을 박 목사의 운전기사가 살해한 사건과 예장통합총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박윤식 목사와 평강제일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점 등도 이번 판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이단_시위예장개혁연석회의에서 다락방 영입반대 시위를 하고 있는 목회자들

 


 자신을 이단으로 몰아 명예를 훼손했다며 총신대 신대원 교수들을 상대로 법정싸움을 벌인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원로목사가 결국 대법원에서 패소하였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살펴보면 박윤식 목사의 이단성에 대한 논란이 많이 나와있습니다. 그 중에는 그가 이단이 아니라는 주장과 이단설이 몇 이단전문가들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단성에 관한 공개적인 논의와 이에 대한 명예훼손에 관한 재판 결과는 사회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직간접적으로 기독교를 이용하는 이단 사이비 종교들이 상당히 많고, 이에 따른 개인적 사회적인 문제와 피해가 커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사실을 제대로 알리고자 할 때 명예훼손과 같은 법적인 제약이 따랐고, 이단 사이비 종교측에서는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보호막이 일부 걷히게 된 것입니다.


요즘 언론을 보면 정통교회라도 각종 부정과 비리 그리고 비신앙적인 모습으로 비난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도마에 오른 교회들을 보면 공통적인 점이 있습니다. 바로 교회의 운영이 투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원래 성도들의 연합체로 회계에서 인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회의를 통해 공개적으로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목사님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독단적이며 비공개적, 폐쇄적인 방식으로 운영으로 하여 각종 문제를 야기시킨 것입니다.

한 공동체가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건강한 비판과 투명한 운영은 필수적입니다. 이단과 사이비종교들이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을 개방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정통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2011년의 대법원 판결로 이 땅의 모든 종교들이 좀 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탈북가수 한옥정 작은 시골교회에 주고간 큰 감동

우리밀맘마2013.06.17 06:00

밀알심장재단 초청 탈북가수 한옥정, 작은 시골교회에 주고간 큰 감동

 


우리 시골교회에도 유명인이 다녀갔습니다. 밀알심장재단 헌신예배를 우리 교회에서 낮예배 시간에 가졌는데, 이 날 밀알심장재단에서 특별 손님을 초청했습니다. 바로 탈북가수 한옥정씨입니다. 한옥정씨는 요즘 채널 A '이제 만나러 갑니다'란 프로에서 재치있는 말로 주목받고 있는 CCM가수입니다.

프로필을 보니 1998년 탈북해서 2003년 한국에 입국한 한옥정은 탈북 여성으로 조직된 6인조 그룹 `달래음악단`을 통해 활동했습니다. 독특한 북한식 억양으로 `멋쟁이`와 `홍콩아가씨`, `댄서의 순정` '흔들어'란 노래로 대중가수 활동을 하다 지금은 CCM가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옥정-탈북가수-밀알심장재단밀알심장재단 초청으로 작은시골교회 특별손님으로 온 한옥정 가수

 


 
그녀는 노래와 함께 자신의 삶에 대해 간증하였습니다. 1998년 탈북해서 2003년에 한국에 들어온 그녀,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까지 그녀는 인신매매단에 팔려 온갖 고초를 당했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동생까지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되자 그녀는 죽기를 각오하고 탈출에 성공, 자유 대한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녀는 가족에 대한 애정이 참 강했습니다. 지금 자신이 기도하고 있는 가장 간절한 바람은 탈북한 자신 때문에 수용소에 있는 부모님과 여기서 함께 오손도손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것이라 합니다.

그녀는 새터민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지금 탈북하여 여기에 살고 있는 새터민들이 참 많이 있는데, 그중에는 이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다시 북으로 넘가는 사람도 있고, 그저 남한으로 오기만하면 호의호식하며 잘 살 줄 알았는데, 도리어 더 힘들게 사는 현실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새터민들은 이곳에서 잘 정착해 살고자 노력하고 있으니, 소수의 몇 사람들 때문에 새터민 전부를 오해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한옥정-탈북가수-CCM자신의 이야기를 간증하고 있는 한옥정씨

 


한옥정씨는 참 재능이 많습니다. 북에서는 인민가수 뿐만 아니라 MC 경력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북한 뉴스에서 본 북한 아나운서 흉내를 개인기로 보여주는데, 정말 잘하더군요. 그녀 말로 북한의 MC들은 대중을 선동해야 하는데, 전달해야 할 내용에 따라 목소리가 다 달라진다고 합니다. 애절한 소리, 밝은 소리, 분노하며 대중을 선동하는 소리. 이걸 하나하나 시범을 보여주는 정말 마음이 울컥하며 선동되더라구요.

그러면서 이런 비판도 하더군요. 자기가 북한의 지도자의 근황을 소개할 때 대부분 하는 대사가 북한의 지도자는 쪽잠과 주먹밥을 먹어가며 북한 주민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고 있다며, 깊은 감정을 넣어 그렇게 선전해 주었는데, 남한에 와서 예전 북한지도자의 요리사를 했던 일본 사람의 책에 보니 자기가 먹고 싶은 요리 한접시를 가져오기 위해 전용기를 띄웠다는 내용을 읽으며 정말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지금도 굶주림에 허덕이는데, 그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쪽잠과 주먹밥으로 국민들을 위한다는 선전을 하면서, 뒤로는 그런 호화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게 도저히 용납도 안되고, 또 믿기도 힘들더라는 것입니다.


가수니 노래실력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듣기는 창법이 북한식이라는게 아직 많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자신은 예전에 북한에 있을 땐 김일성이 좋아하는 목소리로만 노래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자기가 하고 싶대로 자기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북한가수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내야했던 소리와 지금 자기가 내고 있는 소리를 비교해서 들려주는데 그렇게 들으니 차이가 느껴지더군요.

한옥정씨가 부르는 찬양은 노래 가사마다 깊은 감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곡한곡 우리에게 들려질 때 깊은 감동이 느껴졌고, 우린 시간이 지나가는게 너무 아쉬웠답니다. 한 시간 정도 더 공연해주었으면 어땠을까? 그건 너무 큰 바람이겠죠. 그렇게 밀알심장재단 헌신예배는 끝이 났습니다.

한옥정-탈북가수-CCM한옥정씨는 여기서 모든 가족들이 함께 오손도손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후예배 때 목사님께 광고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시네요.

"여러분, 오늘 낮예배 시간에 우리 교회에 오신 한옥정 가수, 정말 미안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밀알심장재단과 3개월 전에 오늘 우리교회에서 헌신예배를 드리기로 약속했고, 한 주 뒤에 특별가수로 한옥정씨가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침에 우리 교회 왔으면, 오후와 저녁 부산 인근에 있는 다른 교회에 스케줄을 가지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우리와 약속할 때 한옥정씨 이미 서울에서 저녁 공연이 잡혀져 있는 상태였답니다. 그런데 경남 양산에 있는 작은 교회 헌신예배 특별손님으로 오실 수 있냐는 요청에 흔쾌히 승락하여 오늘 오신 거랍니다. 아까 점심드시고 바로 서울로 가셨다고 하네요." 

우리교회, 흠 겨우 50여명 정도가 모여 예배 드리는 시골의 작은 교회입니다. 이 날도 50명 남짓되는 성도들이 모여있었구요. 그런데도 혼신의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찬양해주시고, 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깊은 감동을 끼쳐준 한옥정씨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목사님께서 이 말 꼭 해달라십니다. ㅎㅎ)  저 이 날, 한옥정씨 CD 두 장을 샀습니다. 하나는 제가 듣고, 또 하나는 어린이집 선생님께 선물로 드리려고합니다.

한옥정-북녘에도 복음이한옥정씨의 앨범 표지

 



노래도 잘하고, 마음씨도 곱고.. 한옥정씨 앞길에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by 우리밀맘마
 
기독교 진리, 질문을 해야 신앙이 성장한다고 하네요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본 운동선수들의 기도세레머니
우리가족 기독교인이지만 명절에 제사상 차리는 이유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본 기독교인들의 수다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KFC커낼샌더스 질릴만큼 실패해도 오똑이처럼 일어선 성공이야기

우리밀맘마2013.03.25 09:58


성공신화, KFC 창립자 커낼샌더스의 성공이야기, 질릴만큼 실패해도 오똑이처럼 일어서라




KFC라는 프랜차이즈 기업을 일으킨 분이 커넬 샌더스라고 하네요. 저의 블로그 동맹인 미디어로(옛날 아나누리) 팀의 코이네 목사님께서 이 분에 대한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제게 보내주신 글을 제 성향에 맞게 살짝 수정해서 발행합니다. 커넬 샌더스..역시 성공의 바탕엔 고난이 있었습니다.  
 
커넬 샌더스(Colonel Harland Sanders, 1890년 9월 9일 - 1989년 12월 16일)는 인디애나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할랜드 데이빗 샌더스(Harland David Sanders)였는데, 그가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일을 하시는 동안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종종 요리를 했고(이 때의 경험이 나중 샌더스가 레스토랑을 차릴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열 살 때부터 농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가 열두 살 때 어머니가 재혼하여 혼자 나와 살게 되었습니다. 자료를 살펴보니 의붓아버지의 폭행이 심했다고 하더군요. 샌더스는 어린 시절을 참 불우하게 보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보험 판매원, 타이어 영업 사원, 주유소 직원 등 여러 가지 힘든 일을 하다 22세 때 램프 제조 판매업을 하다 망했습니다. 이후 힘든 직장생활에도 열심히 저축한 돈과 퇴직금으로 서른아홉에 미국 켄터키 주의 코빈이라는 작은 도시에 조그만 주유소를 차렸습니다. 39세 때 주유소 경영에 뛰어든 그는 대공황으로 인해 또 다시 전 재산을 날려버렸습니다.

그는 40세 때 다시 주유소를 경영하다가, 어느 날 주유소에 들른 한 세일즈맨이 “코빈에는 마음에 드는 식당이 하나도 없어.” 하고 투덜대는 소리를 듣곤 식당을 차릴 생각을 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이렇게 지나가는 소리를 놓치지 않고 사업을 위한 아이디어로 만들더군요.

요리는 어릴 때부터 해와서 나름 자신이 있었기에 자신이 경영하는 주유소 뒤에 있는 작은 창고를 개조해 식당을 개업했습니다. 메뉴는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서 배운 남부 지방의 토속적인 음식들로 닭튀김, 시골 스타일의 햄, 직접 구운 비스킷 등 요리하기 쉬운 것들이었만 이를 한번 맛본 사람은 누구나 감탄해마지 않았습니다.

식당을 개업한 지 2년이 지나자 맛있는 음식점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습니다. 주유소에 딸린 식당으로 시작했지만, 손님이 몰리다 보니 이제는 식당에 딸린 주유소가 될 정도였습니다. 나중에는 주유소를 없애고 식당을 확장해 본격적으로 요식업에 뛰어들었으며, 사업은 날로 번창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는 슬픔을 맛봐야 했습니다.


 

 



59살이 되던 1949년에 샌더스는 켄터키 주 정부로부터 '커넬Colonel'이라는 명예 호칭을 수여받습니다. 커넬이라는 호칭은 우리말로 대령이나 각하쯤으로 직역할 수 있는 만큼, 원래는 군대의 지휘관에게 붙이는 경칭이었는데, 당시 켄터키 주에서는 지역에 공헌한 일이 많은 인물에게 명예와 함께 수여하는 이름이었습니다. 언제나 반가운 단골손님으로 가득한 일상에서 그는 정말 남부러울 정도로 안정적인 성공과 풍요로움 속에 행복감에 충만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 지역에 고속도로가 생겨나면서 그의 식당이 있던 마을은 고속도로 반대편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커넬의 식당은 마치 외딴섬처럼 고립되었습니다. 당연히 식당을 찾는 손님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단골마저 하나 둘 외면하게 되고, 마침내 손을 써 볼 틈도 없이 식당은 경매에 넘어갔습니다. 커넬 샌더슨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알거지가 되었고, 당시 정부가 빈민들에게 베풀어 주는 사회 보장 프로그램에 신청을 해서 받은 105달러가 그의 전부였습니다. 이 때 그의 나이 65세였습니다.


하는 사업마다 망한 절망감과 아들마저 잃은 충격으로 커넬 샌더스는 정신병까지 앓게 되었고, 결국 사랑하던 그의 아내마저도 그를 떠나 버리게 됩니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절망과 낙심과 상처 속에 괴로워 하고 있던 어느 날 밤 그는 정신병원을 몰래 나와 이리저리 방황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래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 노래 소리를 듣는 순간, 그는 마치 그 소리에 취한 듯이 그곳으로 따라 갔습니다. 그곳은 어느 조그마한 교회였습니다. 그 예배당에는 한 여인이 너무나 평화롭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 노래 가사가 그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너 근심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어려워 낙심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너 쓸 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지키리
어려운 시험 당해도 주 너를 지키리 구주의 품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후렴)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찬송가432장 새382장)

이 찬송소리를 듣고 커넬 샌더슨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주님, 제가 평생 예수님 없이 돈만 벌려고 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그렇게 한참 동안 울며 회개의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의 품에 안겨 그렇게 울다보니 어느 순간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의 정신병이 울며 기도하는 중 치료된 것입니다. 샌더슨은 기도하고 힘과 지혜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내어 새로운 인생에 도전합니다.

그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11가지 치킨 양념 비법을 개발했고, 투자자를 찾았습니다. 낡은 트럭에 이 양념을 싣고 미국 전역을 돌며 이 양념을 사줄 식당을 찾아 나선 것이죠. 무려 3년에 걸쳐 1,008개의 식당에서 거절당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낡은 트럭에 압력솥과 양념통을 싣고 나타난 생면부지 노인의 제안을 누가 믿고 투자하려 하겠습니까? 그런데 1,009번째 방문한 식당에서 ‘예스’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웬디즈 올드 패션드 버거즈의 창립자인 데이브 토마스는 이때 샌더스를 후원하여 식당을 유지하게 해주었고, 그 식당을 출발점으로 전 세계에 3만개 이상의 매장을 가진 KFC(Kentucky Fried Chicken)가 시작된 것입니다.  

 

KFC_커낼샌더스절은날의 커넬샌더스와 KFC로고 그리고 샌더스의 캐리컬쳐

 



그렇게 새 출발한 그의 나이가 68세입니다. 65세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3년을 준비하여 투자자를 찾은 끝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나에게는 맛있는 치킨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고, 세상 사람들이 언젠가 이것을 알아줄 것이라는 꿈을 가졌고, 개척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훌륭한 생각, 멋진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죠 나는 남들이 포기할 만한 일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포기하는 대신 무언가 해내려고 애썼습니다.”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나는 내게 특출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럼에도 내가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열심히 일한 것, 그거 하나입니다. 열심히 일하세요. 열심히 일하는 것, 그건 성공을 위한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땐 자기를 던져야 합니다. 내가 쑥스러움, 거절, 때로 당하는 수모를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신감이었습니다. 절대적인 자신감. 나는 된다, 이건 된다. 나는 내 치킨 맛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이후 커넬은 가난하고 불쌍하고 소외된 수많은 사람들을 도왔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비로 수익금의 많은 부분을 사용하였습니다. 미국전역을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자기의 삶을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신 살아 계신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 하였고,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어 삶의 진정한 행복과 영원의 축복을 소유하게 되기를 권고하는데 남은 인생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9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그를 만나는 사람마다 시편 50편 15절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by 우리밀맘마

 하워드핸드릭스목사 아들의 자전거를 고치려고 만찬기도를 포기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본 운동선수들의 기도세레머니
  가슴 먹먹해지는 강영우 박사의 아내 석은옥여사의 고백
 그릇된 신앙으로 아이 죽인 부모 그 비슷한 사례들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인생의 성공을 좌우하는 습관, 습관에 관한 성경 말씀

우리밀맘마2013.03.05 15:03


 

습관은 삶의 방식을 결정합니다. 좋은 습관을 가져야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죠. 그 사람 인생의 성공의 열쇠는 습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생의 성공을 결정하는 습관에 관한 좋은 성경말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 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 디모데전서 4 : 7 ~10)


위의 성경말씀으로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 주일 예배 때 습관에 대해 이런 설교를 하셨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짤막한 시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성공자의 충실한 하인이기도 하고, 실패한 충실한 하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해서 위대한 줄로 알지만 위대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다. 나를 잘 길들이기만 하면 내가 그 사람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그런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 줄 것이지만, 나를 무시하고 거부하면 결국 패배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누구인가〉에서 ‘나’는 습관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인생은 습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습관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 모든 것의 90% 이상이 전부 습관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잠을 자는 것도 습관에 따라서 다 다르고 일어나는 것도 습관에 따라서 다 다르며, 밥을 먹는 것도 다 다른 습관을 갖고 살아갑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도 어떤 사람은 아무리 끼어들기를 해도 미안한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반면에, 행여나 비켜주지 않을 세라 손짓 발짓 해가면서 점잖게 끼어들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을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일에 대한 습관도 다 다르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의 생활 스타일에 따라서 사람들은 행동하고 움직이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나쁜 습관을 갖고 사는 사람이고 또 한편으로는 좋은 습관을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나쁜 습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 나쁜 습관 때문에 계속해서 안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게 되고, 결국 패망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좋은 습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좋은 습관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도 하고, 또 자기 스스로도 자존감에 차 있어서 자신만만하게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쁜 습관에 젖어 있느냐, 좋은 습관에 젖어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승리하는 인생이냐, 실패하는 인생이냐가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으며, 정말 습관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엇 하나 습관과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시작해서 잠이 들 때까지 우리는 익숙한 생활의 패턴대로 살아가게 되고, 또 그런 습관이 배이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하면, 불편하고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습관에 배이도록만 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쉽게 해낼 수 있는데, 그 습관을 들이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야하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을 꼽으라면 또 이 습관이 생각나네요. 잘못된 습관이나 혹 습관처럼 굳어진 행동을 고치는거 말입니다. 이건 정말 뇌를 수술하는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고통을 격기 전에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어떻게 나쁜 습관을 들이는 것은 그리 쉬운데,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이 왜 그리 힘든지 모르겠어요.

남편에게 들은 이야긴데요, 우리나라 옛날 선비들 있잖아요. 선비답게 사는 행동 규범이랄까요? 아님 수칙이랄까요? 그런게 있답니다. 일단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누운 채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인답니다. 그러면 혈액순환이 잘되면서 몸이 활력을 찾는다고 하네요. 그렇게 뒤척인 후 방에서 일어나면 그 다음 뭘할까요? 저는 남편의 대답을 듣고 뒤로 넘어졌습니다. ㅎㅎ 뭘하냐면요? 동이 터오길 기다린답니다. 추울 땐 방문을 닫고, 날이 좀 따뜻하면 방문을 열어둔 채 가만히 방에 앉아 해가 뜨길 기다린다는 거죠. 아마 명상을 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 이런 습관 참 좋은 거 같습니다. 그저 눈을 뜨면 벌떡 일어나서 아침 일거리부터 시작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잠시 묵상을 하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또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면 하루가 더 보람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남편에게 한 가지를 더 배웠습니다. 동학에서 하는 훈련이라는데요,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하늘님께 고하고 하는 것이랍니다. 즉 책을 읽는다고 한다면 마음 속으로 하나님을 향해 '이제 책을 읽겠습니다.' 하고 책을 읽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 참 쉬울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한다면 하나님과 상당히 친해질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항상 듣는 말이 "성령이 앞서고 기도가 앞서야 합니다."라고 하는데, 이런식으로 습관을 들이면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항상 기도가 앞서게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오늘 자신을 습관을 되돌아보심 어떨까요? 

 



 

 

 

업데이트(Update) : “새로운 포스트 제목”과 관련된 더 많은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이 유익하셨다면 추천 부탁드려요.
댓글달아주심 오늘 하루 행복한 일이 많이 생기실거예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노력하지 않아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하네요

우리밀맘마2013.02.20 22:24



아이들아, 아버지의 훈계를 잘 듣고, 어머니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말아라.
진정 이것은 머리에 쓸 아름다운 관이요, 너의 목에 걸 목걸이이다. 
아이들아, 악인들이 너를 꾀더라도, 따라가지 말아라. 

그들이 너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함께 가서 숨어 기다렸다가, 이유를 묻지 말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자.
스올(지옥)처럼 그들을 산 채로 삼키고, 무덤이 사람을 통째로 삼키듯이,
그들을 통째로 삼키자. 우리는 온갖 값진 것을 얻게 될 것이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의 집을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너도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 사이에 돈주머니는 하나만 두자."

아이들아, 그들이 이렇게 말하더라도, 너는 그들과 함께 다니지 말고,
네 발을 그들이 가는 길에 들여놓지 말아라. 그들의 발은 악으로 치달으며,
피 흘리는 일을 서두르기 때문이다. 무릇, 새가 보는 앞에서 그물을 치는 것은
헛수고이겠거늘, 그들이 가만히 엎드려서 지키고 있으니 제 피나 흘릴 뿐이요,
숨어서 기다리고 있으니 제 목숨이나 잃을 뿐이다.
무릇 부당한 이득을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니, 재물이 목숨을 빼앗는다.
                                              (잠언 1장 8절 - 19절, 표준새번역 성경) 

 
아이들아라고 부르는 말은 스승이 제자를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즉 스승이 자기 제자들을 자신의 자녀같이 부르며 그렇게 가르치는 말씀을 담은 성경이 잠언입니다. 잠언은 우리 인생에 꼭 필요한 지혜와 지식을 전해줍니다. 오늘 그 지혜의 말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악한 자의 꾐을 따르지 말아라, 이 말씀이 제 마음에 많이 와 닿네요. 참 많은 악한 꾐이 있습니다. 그 중에 제일 쉬우면서도 흔하게 오는 유혹이 바로 "노력하지 않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는 말이 아닐까요? 그리고 또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남의 것을 빼앗는 짓도 서슴치 않는 것을 악한 유혹이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다단계의 유혹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를 찾아온 그분은 빠른 시간에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 이 성경의 말씀이 저를 그 유혹에서 지켜주었습니다. 세상에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설사 있더라도 그것은 가치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나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일은 똑같은 일을 자신도 당한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었습니다. 


재물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인데, 그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재물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것은 내 생명을 해치는 일이라고 경고하는 말씀, 오늘 제 가슴에 깊이 담아두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오늘 주일, 이곳에 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자살한 사람 문상가도 되냐고 목사님께 물었더니


 



 

 

by우리밀맘마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자살한 사람 문상가도 되냐고 목사님께 물었더니

우리밀맘마2013.02.13 22:55


기독교 신앙과 자살, 노무현, 김다울 등 유명인들의 연이은 자살소식, 자살한 고인의 빈소에 문상 가는 것과 고인에 대한 예의

 



 
김다울의 자살

요즘 간간히 연예인들이나 유명인사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분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기사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예전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는 울 우가가 김다울이라는 패션모델의 자살 소식에 큰 충격을 받고 힘들어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자택에서 목매어 죽었다는 소식에 밤에 학원에서 다녀온 큰 딸이 거의 울먹이다시피


"엄마, 김다울이 자살했데, 어쩜 좋아" 그럽니다.

딸은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어 그 쪽 방면에 많은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김다울에 대해서도 아주 자세하게 알고 있더군요.

"엄마, 우리나라 패션계의 큰 별이 졌어. 조금만 더 있으면 거장으로 불려질텐데 너무 마음이 아파~"

딸의 말을 듣고 김다울이 누구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딸의 말처럼 정말 별이 졌더군요. 인터넷에 올라온 글 중 그녀의 블로그에 실려있는 내용들, 특히 꿈을 꾸다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는 그녀의 일상의 고백들이 제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눈물이 자꾸 흘러내립니다. 

요즘 왜 이리 안타까운 죽음이 많은 걸까요? 김다울의 사인은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을 대하면 기독교인으로 저는 참 혼란스럽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지난 번 최진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 소식에도 참 많이 울고, 노전대통령의 빈소에 꽃 한송이 올려놓고 왔지만,어릴 때부터 자살하면 안된다, 자살하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 자살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교리적인 가르침 때문인지 그런 안타까운 순간에도 태도의 혼란을 겪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목사님께 가서 물었습니다. 


자살_김다울고 김다울씨, 우리나라 패션모델계에 큰 별이 졌습니다.@구글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목사님, 자살한 친구가 있는데요, 문상가야하나요?"

그런데 저의 그런 질문에 목사님은 아주 이상하다는 듯이 도리어 제게 되물으시네요. 

"아니 친구가 돌아가셨는데 문상 안가시려구요?"

"자살했는데요.. 자살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것이잖아요." 

"그거야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처리하실 일이지, 그게 성도님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자살을 했던 어찌됐던 간에 친구가 죽었다면 빨리 달려가야죠. 뭔 생각이 그리 많으세요. 빨리 가세요" 

"목사님, 그러면요 자살한 사람 장례를 교회에서 치러도 되나요? 만일 목사님께 부탁하면 장례 치뤄주실 건가요?" 

그러자 목사님께서 대답하시네요. 

"요청하면 당연히 치러드려야죠. 그 분이 교인이시다면 교회의 절차에 따라 치루면 되고, 만일 그렇지 않는데 유족들께서 요청해오시면 제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장례를 집례해드려야죠" 

그러시면서 성경을 펼치시면서 제게 다시 설명을 하십니다. 성경은 사무엘 하 1장에 있는 사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다윗의 시를 두고 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다윗과 사울은 거의 원수지간이었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사위 다윗을 사울이 얼마나 미워하는지 그를 죽이기 위해 엄청난 만행도 서슴치 않았고, 이 때문에 다윗은 십수년을 도망자로 피말리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울이 전쟁을 하다가 부상을 입었고, 마침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죽음을 본 그의 아들들과 신복들이 그 옆에서 동반자살하기도 하구요. 이 부분을 두고 목사님께서 설명하시네요. 


"사울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죽음의 소식을 들은 다윗은 사울의 죽음에 대한 평가를 일절 내리지 않고, 그저 그가 모시던 왕, 그의 장인, 그가 존경했던 인물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그를 위해 애도가를 부르고 있잖아요? 시의 내용을 보시면 알겠지만 사울을 큰 용사로 부르며, 그의 용맹함에 대해, 그런 그의 덧없는 죽음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이 잘 드러나 있죠? 인간에 대한 존경심..다윗이 부르는 애도가가 갖는 내용의 전부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사울에 대한 악한 감정은 다윗에게 가장 많았을 겁니다. 얼마나 원망스럽고 저주스런 인물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다윗은 사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런 자신과의 원한을 모두 잊어버린 채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살아야 할 마음자세라고 봅니다.


십자가_예수님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가장 무거운 죄의 짐을 대신 져주셨습니다.



그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들이 냉철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생에 대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명령하시잖아요. 그 인생을 판단하는 것은 우리가 할 몫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을 사람으로서 깊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용납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고인의 죽음에 대해 자꾸 평가하려는 태도는 그리 성경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이 할려고 하는 교만의 발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자살에 대한 경계심과 그에 대한 교훈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죠. 나중에 해도 될 일, 그건 나중에 하고, 지금 해야할 일은 다윗처럼 그 사람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함께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 가장 힘든 사람들은 그 사람의 가족과 함께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금 찾아가서 함께 울어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빨리 가세요" 


목사님의 설명을 듣다 보니 부끄러운 것이 많네요. 목사님 말씀대로 제가 참 교만했던 것 같습니다. 

고인과 유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신고

댓글

  • Favicon of http://www.semiye.com BlogIcon 세미예2009.11.21 12:50 신고 그렇군요. 잘보고 갑니다.
  • 우리밀맘마2009.11.21 14:53 신고 댓글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 Favicon of http://querer.egloos.com BlogIcon cafe19302009.11.21 17:19 신고 덕분에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고맙습니다.
    김다울님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매스컴에 나오는 정황상 조심스레 자살이라 추측해보면, 우울증(혹은 조울증) 같이 드러나지 않는 병을 앓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서 자살인구도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큰 사랑을 많은 사람이 알면 좋겠습니다.
  • Favicon of http://gajokstory.com BlogIcon 우리밀맘마2009.11.21 22:16 신고 마음의 병이 가장 큰 어려움을 주는 것 같아요. 우리가 조금만 더 서로를 이해한다면 서로 친구가 될텐데 말이죠.제글이 마음을 시원케하였다니 넘 감사합니다. 종종 들러주세요.
  • Favicon of http://jsapark.tistory.com BlogIcon 탐진강2009.11.22 11:09 신고 사랑하고 화해하고 용서해야 하는데 인간은 그런 것들이 어려운 게 현실인가 봅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평안하길.
  • 우리밀맘마2009.11.23 07:14 신고 예 우리의 힘으론 무지 어려운 것 같아요. 주님의 은혜로 가능하겠죠. 행복하세요. ^^
  • Favicon of http://blog.daum.net/parismadame BlogIcon 파리아줌마2009.11.23 19:03 신고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공감가는 글들이 많아
    계속 글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니 저는 항상 제가 판단하려하는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까지 제가 하려는,,, 말도 할수 없는 교만에
    빠져해매곤 하죠,,,

    좋은 글 보고 저도 다시 한번 다져봅니다..^^
  • Favicon of http://gajokstory.com BlogIcon 우리밀맘마2009.11.24 06:59 신고 예 저도 그러네요. 저도 다시 다짐했답니다. 행복하세요. ^^
  • 뮤직님2009.11.23 20:27 신고 저도 교회를 다니는데 --- 이렇게 의문사항을 정리해주시는 목사님,,,어느 교회인지 가고 싶네요

    그냥 무조건적인 설교에 아이들이 반감을 가져가는 중이라서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형식적이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분위기를 맛보고 싶네요,,
  • Favicon of http://gajokstory.com BlogIcon 우리밀맘마2009.11.24 07:01 신고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 Favicon of http://jacobsladder.tistory.com BlogIcon 루까2009.12.25 07:09 신고 목사님이 하신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저도 어렸을 적에 자살하면 지옥간다는 얘길 듣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자살하면 지옥간다는 말이 없죠.

    오히려 위선으로 온몸을 칭칭 감은 바리사이파인들과 사두가이파인들이
    파멸의 길로 향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살이라는 것도 인간이 살면서 저지르는 수많은 실수, 잘못, 죄 중 하나로 본다면,
    그리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써 어떠한 사람이 천국을 가고 지옥을 가는지에 대해 성경말씀을 알수는 있어도, 이 사람 또는 저 사람이 천국 간다 또는 지옥 간다라는 섣부른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처럼요.
  • 우리밀맘마2010.01.06 14:09 신고 말씀에 저도 동감합니다.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닌 듯 합니다. 행복하세요. ^^
  • 정은정2010.04.07 15:28 신고 우연히 들렀다가 도저히 그냥 지나칠수 없어 글을 올립니다.
    혹 루까와 같은 분들이 또 있을까 두려운 마음에 꼭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려야겠다 생각했읍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우리 몸의 소유권에 관해서 명확히 하고 계십니다.
    고린도 전서 6장 19-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 몸에 관한 소유권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신 분이심을 명확히 하셨고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죽었던 우리를 다시 살리신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입으로 시인하고 믿기에 감히 그리스도인이라 하나님앞에 의인이라 칭함을 받으며 구원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우리몸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으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지요. 그러나 그 가운데에 죄가 개입하여 즉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다시 갈라놓기위하여 마귀는 항상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들로 유혹을 합니다. 하나님께 소유권이 있는 내 몸을 내 스스로 생명을 끊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살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롯유다를 보십시오.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유다와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정하였던 베드로는 비슷한 실수를 죄를 지었읍니다.. 하지만 가롯유다는 끝까지 회개치 않고 자살을 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불순종하였고 베드로는 눈물로 회개하고 죽기까지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 주님의 이름으로 영생을 얻게 되었읍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교인들에게는 일반사람들이 가진 인간양심과 더불어 신앙양심을 가지게 됩니다.
    님의 교회 목사님께 묻고 싶읍니다.
    그 자살한 교인의 집에 가서 혹 예배를 요구한 일반인들의 집에 가셔서 어떻게 예배를 드리실 겁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라는것을 모르는 바보는 없을겁니다.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자살한 교인의 집에 가셔서 예배를 드리신다는 것 자체가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겁니다. 예배에는 순서가 있지요. 기도하고 설교하고 찬양하고 축복하고.... 어떤 기도를 하실것이며 어떤 설교를 하실 것이며 무슨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수가 있겠읍니까?
    다윗의 말씀을 하셨읍니다. 원수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고 도리어 그를 높이고 왕의 대우를 끝까지 해주었던 다윗은 예수님의 성품을 그대로 뺴닯았기에 하나님께로부터 의인이라 칭찬받으시며 오늘날까지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죽음을 애도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지는 않았읍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이를 위해 애도하고 슬퍼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기리며 그 가족을 위로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목사님이 그곳에 가셔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아닌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예배일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목사님은 많은 양무리를 하나님의 정확한 말씀으로 인도하여야 할 사명을 가지신 영향력 있는 위치십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중에 이사람은 천국가고 저 사람은 절대로 천국 갈수 없을거야..라고 우리는 판단할수 없읍니다.. 하지만 우리가 십일조생활을 잘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나 안주시나 나를 시험해도 좋다고 성경에 명확히 하고 계신것과 같이 성경을 바로 보고 말씀안에 바로 서 있으면 자살을 하는 교인들은 결코 천국에 임하지 못할것이라는 것을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긴 글이 되었네요.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우리밀맘마2010.04.25 22:27 신고 긴 글 감사합니다. 저는 믿음을 가지고 살면서 정답은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이 의인인지 알았지만, 주님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욕하셨지요. 도리어 세인과 같은 죄인과 같이 하시며, 자신은 죄인을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 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그 누가 나는 죄를 짓지 않고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살을 한사람만 죄인일까요?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도 주님의 뜻과 상반된 생각과 행동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의롭다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할 때에 벌써 우린 죄를 짓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럼 누가 과연 예배드릴 자격이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면 그것은 예배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교회에서도 논쟁이 벌어지는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싸우고 분쟁하게 되지요. 사탄이 너무나 좋아하는 일이지요. 하나님은 정의로우시지만, 또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서로 내가 옳다고 싸우는 것보다는 사랑의 덕으로 해결해 나가시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판단하고 정죄하기에 앞서, 주님께 기도하며 주님의 마음을 알아가며, 닮아가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 Favicon of http://toyvillage.tistory.com BlogIcon 라이너스™2010.04.25 11:13 신고 자살은 택해선 안되는 최악의선택인것같아요.
    스스로를 위해서든 남겨진 사람을 위해서든...
    잘보고갑니다.멋진 주일되세요^^
  • 우리밀맘마2010.04.25 22:28 신고 안타까운 일이지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 Favicon of http://lifestorys.tistory.com BlogIcon 버니스2010.04.25 13:32 신고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살한 사람을 탓할수도 없는 것이겠지요. 그 사람은 그 사람나름의 최악의 상황이었을테니까요. 정말 슬픈일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살한 경우에는, 그 영혼이, 일정 시간동안 저승도 이승도 아닌 공간에서 떠돈다고 말입니다. 누군가가 가서, 그의 원혼을 위로해줘야 떠날수 있다라고 하기도 하더군요. 자살이라고 하는 것을 경계라기 보다도, 그 상황에 쳐해 있는 그 어쩔수 없는 분이 없었으면 할뿐입니다만, 어떤 분은 전생의 덕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는 반대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전생의 덕이라기 보다도, 지금 이 이승의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이에게, 인간으로서 전생의 덕이라고 말하는 것을 판단 기준으로 집어 넣는 행위는 아주 좋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으로서 오직 그 사람, 그 본연의 모습만 볼뿐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자살은 나쁜거라고요' '자살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 라고요'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왜? 그 자살한 사람의 심정은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살한건 무조건 멍청이다. 라는 명제는 성립이 된다고 볼수가 없습니다.그건 틀렸습니다.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 우리밀맘마2010.04.25 22:33 신고 보통 자살을 하는 사람은 굉장한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울증은 병이지요. 심한 우울증은 숨을 쉬는 것조차 싫다고 하더군요. 병의 증세중에 하나가 자살이지 않나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감기에 걸리면 기침을 하고 콧물이 나오고 나중엔 폐렴에 걸려 죽기도 하지요. 우울증에 걸려서 자살하는 것도 어쩜 병의 증세중에 하나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사람이 되어 보지 않고는 감히 그사람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우린 우리수준에서 그사람을 생각하고 판단할 뿐이니까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힐링캠프 차인표 그가 탈북동포와 함께 울어주고 싶다한 사연

우리밀맘마2013.02.10 06:00

힐링캠프 차인표 탈북동포 북송반대 시위한 이유는 함께 울어주기 위해

 

즐거운 주일이자 우리 민족 최고의 명절인 설입니다. 설을 맞아  가족들 간에 그리고 연인 간에 친구 간에 좋은 시간들을 보내시며,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저처럼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두 좋구요. ㅎㅎ 오늘도 유익한 성경 말씀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시편 32편 12절 -13절)



요즘 우리나라의 현실은 상당히 위태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사건사고들, 그리고 사대강사업으로 인한 자연의 파괴, 반인륜적 사건들, 북핵문제, 정권말기의 권력누수현상, 그리고 새로운 정권수립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제대로 개각도 할 수 없는 .. 이런 속에서 사실 많이 두렵기도 하고, 이러다 정말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불안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들려오는 지진과 여러 재앙의 소식들이 이런 마음을 더욱 부추기도 있죠. 이런 불안감이 엄습할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불안할까?"

 



차인표_힐링캠프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고 있고, 죽어도 천국간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면서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하는 생각이 제 뇌리를 스칠 때, 이 두려움의 근간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가 생각이 나더군요.

첫째는 제가 너무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저를 그리고 우리를 위해 많은 것을 주셨는데, 언제나 제 마음을 누르는 것은 가진 것이 없는 것에 대한 불안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기보다는 지금 내 손에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때문에 불평하고 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성경 잠언에 보면 거머리의 이름이 다고다고라고 하는데, 이 거머리처럼 더 달라고 아우성치며 살아가는 것이죠. 우리는 항상 경제타령을 하고, 경제를 살리는 것이 최우선 덕목이라고 생각하며 정치 지도자들에게 경제만 살리면 다른 것은 다 용서해준다는 식으로 살다보니 이렇게 반인륜적인 일들, 가슴 아픈 일들, 미래의 소망을 잃어버리게 하는 일들이 자꾸 생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부끄러움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너무 큰 차이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 그리고 사랑을 원하시는데, 우리는 언제나 돈만 생각하고, 이기적인 욕심을 이루는데 혈안이 되어 있어서 그런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하는 것입니다. 그 부끄러움이 저를 두렵게 합니다. 

세번째는 인색함과 무관심 때문입니다. 

어느 새 저도 우리 이웃의 슬픔과 어려움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너무 많은 아픔들을 들어서 그럴까요? 요즘은 눈물 흘리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꾸 잊어버리구요. 이전에 사이판에서 사고를 당하신 박재형씨 이야기를 들을 때 정말 분노하고 울었더랬습니다.하지만 그 분의 상황은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는데, 그저 마음을 나누고 기도하는 것조차도 어려워지게 되었네요. 그래도 아직 그 분 곁에서 많은 분들이 함께 하고 있기에 그 분 역시 힘을 내고 있는데, 그런 분들에게 전 너무 미안할 따름이고, 또 부끄럽습니다.


차인표씨 힐링캠프에 나와 탈북동포들 북으로 다시 돌려보내지 않는 운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그들과 함께 울어주고 싶어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는 세상, 서로 격려하고 어깨 두드려주며, 함께 울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위 차인표씨 힐링 캠프 동영상 보며 저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 울고 있어도 그 소리 세상에 들리지도 못하는 탈북동포들을 하나님께서 굽어살펴주셔서 그들에게 살길을 열어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by우리밀맘마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댓글

  • Favicon of http://kariere.tistory.com BlogIcon 클레망스2010.04.18 12:05 신고 저도 똑같은 생각을 했어요. ^^;;;
    왜 요즘 이렇게 불안한거죠? ㅠㅠ
    아이슬란드 화산폭발, 중국지진참사...
    전세계과학자들도 요즘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이
    과학적으로도 너무 이상하다고 하네요. ㅡ.ㅜ
    흔들리지 않는 하루하루의 삶
    지금 현재 중요한건 그거 아닐까요. ㅠㅠ
    오늘도 행복하세요(__)
  • 우리밀맘마2010.04.25 22:13 신고 클레망스님도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
  • Favicon of http://blog.daum.net / uri - modu BlogIcon 시림, 김 재덕2010.04.25 23:26 신고 우리밀맘마님!

    아름다운 마음에 담긴 모습
    바라보면 다 아름다워
    화분에 꽃 보며 그런 생각은 안해 보셨나요
    그런 마음에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생각 자체가 그 마음 소유해...

    행복은 곁에 있어요
    아름다운
    사랑으로...
  • 우리밀맘마2010.04.26 07:37 신고 예 명심할께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기독교 진리, 질문을 해야 신앙이 성장한다고 하네요

우리밀맘마2013.02.08 06:30


믿음의 성장과 질문, 질문과 의심, 질문해야 신앙이 성장하는 이유, 신앙의 성장은 의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한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 따라 교회에 갔는데, 벌써 20년이 지났네요. 그동안 성경에 대해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은 정기적으로 시간을 정해두고 매일 매일 읽어가고 있는데, 사실 성경은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모르는 단어가 왜 그리 많은지, 그리고 솔직히 믿어지지 않은 부분도 많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많습니다.

래서 교회에서 개설하는 성경공부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목사님과 성경에 대해 공부를 합니다. 공부할 때마다 참 많은 감동을 느끼며, 삶의 공감이 일어나서 기도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공부하면서 지금도 잘 극복되지 않는 여러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모르는 부분이나 믿기지 않는 부분, 이해가 선뜻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질문하는 것입니다. 

도 믿으면 된다는 이야기에 세뇌가 되어서 그런지, 괜히 질문했다가 믿음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지, 아니면 예전 학교 다닐 때도 질문하는 것이 금기시 된 그런 교육 풍토 때문인지..하여간 수업시간에 질문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용기를 내어 목사님께 손을 들어 질문을 했습니다.

 
" 목사님 질문있습니다. 질문해도 되나요?"


순간 모든 이목이 제게로 쏠리는 것이 느껴집니다. 목이 화끈거리고, 눈이 저절로 바닥을 향하네요. 뭔가 못할 짓을 했다는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의외로 목사님께서 아주 따뜻한 눈길로 말씀하시네요. 

"물론이죠, 질문해도 될 뿐만 아니라 질문 하셔야 합니다."


신앙_믿음_성장신앙은 의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심을 극복하는 것이다.

 



잉? 질문을 해야한다니 이건 또 무슨 말씀? 제 표정에서 저의 또 다른 질문이 느껴지셨는지 목사님께서 이렇게 부연 설명을 하시더군요.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너무 믿습니다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라는 것은 그저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문과 질문을 통해 그리고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문과 질문, 경험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는 마음을 주시고, 제대로 알고 믿을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죠. 

제대로 이해하지도 않은 채 무조건 믿는다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그럴 때 광신이 되고 맹신이 되는 것이죠. 신앙은 광신도 맹신도 아닙니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믿을 수 있고, 이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바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질문하고, 고민하고, 삶에서 체험해보아야 합니다. 의문을 갖는 것과 의심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리고 의심해보아야 진실을 체험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한 번씩 목사님들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 무조건 믿고 보세요라고 하는 말은 우리의 지적인 능력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금 내가 믿기지 않는다고 해서 성경에서 말하는 내용이 진리가 아니라는 편견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믿어보면 이해가 되는 것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지, 무조건 무턱대고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소통하시는 분이시지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거든요.

그러니 우리의 신앙이 점점 더 좋아지려면 성경을 읽고, 열심히 질문해야 하는 것이죠. 참된 믿음은 의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심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질문한다고 하시니 저는 제가 잘 가르치고 있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휴~ 마음이 개운해지는 거 있죠? 어깨도 으쓱해지고요.


목사님의 그 말씀 덕분에 저는 성경을 읽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줄을 쳐놓고 질문을 만들어봅니다. 다음에 목사님께 또 질문있습니다 하고 손을 들어 질문하려구요. ㅎㅎ






by 우리밀맘마

그릇된 신앙으로 아이 죽인 부모 그 비슷한 사례들
일흔 넘은 암환자 당신이 나라면 의사에게 물었더니
예수님이 부활한 것을 어떻게 믿었냐고 묻는다면

신고

댓글

  • 사랑의열매2009.11.20 10:12 신고 아자 값진 답을 얻으셨내요. 올바른 신앙생활은 묻고 듣고 경험해가면서
    알아가는거 다알고 싶어도 알순 없지만
    그속에 뭔가 알듯 말듯한 크고 작은 비밀들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는 순간이
    바로 감사 찬양이 나오고 기쁨의 노래가 나오죠 현제 그러한 믿음으로 평생을
    그 믿음안에서 즐기면서 행복하게 승리하세요.

    아무리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수 있고
    오직의인은 믿음으로 산데요. 이러한 열매 가지고 쭉. ..ㅋ
  • 우리밀맘마2009.11.20 15:48 신고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항상 승리하시는 삶 되시길..... ^^
  • Favicon of http://biblesecret.tistory.com BlogIcon 노바울2010.08.17 00:00 신고 이번에 성경의 비밀들이라는 블로그를 오픈한 노바울입니다....님에게는 참으로 훌륭한 목자님이 계시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 할수있습니다...저는 님의 글을 보고 참으로 놀라운것이 신앙에서 '의문' 이란 더 큰 단계의 이르는 시작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의문과 의심을 혼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앞으로 저의 블로그가 어떻게 나가야 할지 한번더 생각하게 됩니다....
  • Favicon of http://gajokstory.com BlogIcon 우리밀맘마2010.10.19 20:44 신고 바울님의 블로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도마는 정말 나쁜제자인가2010.10.16 01:20 신고 우리교회 목사님은 질문하면 의심한다 핍박한다하면서 방어적으로 나옵니다.
    왜 그냥 못믿냐 그냥믿어라, 질문도 토론도 의견도 모든것이 믿지않는 의심이고 불경스러운것이고 목회자와 교회를 혼란시키고 핍박하려는 의도다 하면서 철저히 쇄국적방어적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성경공부 참석안하면 왜 참석안하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자신은 질문을 합니다. 물론 목사님이 원하는 정해진 대답만을 해야합니다.
    늘 복음주의 근본주의만 강조하고 개혁주의는 나쁜거고 은혜.축복만 바라는것도 안되고 그저 죄. 용서.와 ...늘 설교나 성경공부 결론은 예수님이 죽어마땅할 우리죄를 피값치뤄서 구원받아서 너무 기쁘다 오직 이 한가지 뿐입니다.

    제가 질문을 몇번했더니 당장 그주 주일설교 주제가 의심하는 도마 였습니다.

    정말로 성경에대해서 믿음생활에 대해서 일체 질문이나 의견등을 말하면 하나님께 불경스럽고 의심하는 믿음이고 교회를 핍박하려는 사탄같은것인가요? 점점 교회생활이 싫어집니다.
  • Favicon of http://gajokstory.com BlogIcon 우리밀맘마2010.10.19 20:46 신고 그 목사님도 아마 그런 교회의 풍토에서 자라나고 또 그렇게 신학을 배우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저는 참 행운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님의 교회 목사님도 좀 더 열린 마음이 되시길 기도할께요. 감사합니다.
  • 도마는...2010.10.20 14:23 신고 그런풍토에서 신앙생활과 신학공부를 하셨기때문일수도 있지만 과거 어느교인에게 시달림을 받아서 피해의식때문에 모든교인에 대해서 질문하면 너희는 가해자고 나는 피해자다 하는식의 뉴앙스도 있습니다. 아님 질문에대해서 답변할 지식등의 자신이 없어서 생긴 노이로제같은 반응일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목사님들이 의외로 많다고 하더군요... 또한 그런목회자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신 나이드신분들또한 사고방식 신학철학.신념등이 질문하고 건의하고 토론하고 아님 조금이라도 불만을 토로한다든지 하는거는 아주 위험하고 불경스러운거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제 생각이 지나친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을 믿는이유가 하나님이 무서워서 믿는걸로 밖에 안보여질때가 있씁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노여워하시고 또 이런생각하면 하나님께 불경한것이고 또 이런질문하면 감히 하나님께 성경에대해 그런 벌받을생각을 하냐이고. 또 이런 불만을 표현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끊어지고... 징벌이 있을수 있고 ...등등.. 하나님이 무서워 믿는걸로 보여지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그러면서 이렇게 벌벌떠면서 믿어야하냐 좀 부당하거난 공의롭지 않을때도 있는가 하고 물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기 때문이라고도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공의롭고 또 완벽한 말씀이라면 인간의 생각이나 질문이 무지하고 엉뚱하다 하더라도 그것에 답변하고 이해시킬수 있는게 아닌지요?

    이해하려고 하지도 마라 어디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닭대가리 같은 인간의 사고로 이렇다 저렇냐 하느냐

    질문하지마라 하나님의 말씀은 곧 지상명령이고 절대주권적인 말씀인데 어디 감히 이러면 어떻고 제생각은 어떻고 하냐..

    앞에 증거가 있고 자료가 있어도 보려고 하지말아라. 도마 같은놈이된다. 눈감고 보지않고 믿느자가 복되다.

    알려고 하고, 이해하려하고, 여러가지 가정해보려하고 .. 모든것이 의심에서 비롯된 불경스러운 믿음이라는 겁니다.



    아무튼 이래저래 그저 하나님이 무서워서 믿는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말할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갑니다.
  • Favicon of http://gajokstory.com BlogIcon 우리밀맘마2010.10.25 19:15 신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대하지 않으시는데 많이 안타깝습니다.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펜팔로 사귀던 여친 빵집에서 만나자 바로 도망친 사연

우리밀맘마2012.11.05 07:25


연애이야기, 펜팔로 사귄 여친 빵집에서 만나 도망친 사연,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아야 할 이유


중학교 때 우리 반 친구 중에 펜팔을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당시 남중학교, 여자 선생님 한 분 없는 그 삭막한 곳에서 이 친구가 자신의 펜팔을 친구들에게 읽어주기도 하고, 또 그 여친이 전하는 이야기는 정말 한 줄기 샘물 같았습니다. 그 친구 얼마나 어깨에 힘주며 다녔는지..하루는 편지를 읽어주며 "캬 앤 정말 천사야.." 그리고 편지 속에 넣어온 여친의 사진은 우리 모두의 로망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펜팔로 사귀던 그 친구, 마침내는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전화로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그 친구는 더 의기양양해서는 전화로 들은 그녀의 목소리는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았다며 침이 마르게 자랑합니다. 그리고는 이번 주말에 남포동 모 제과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네요. 우린 모두 그 친구를 격려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우리의 관심사는 당연 그 친구에게 쏠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월요일 학교에 온 그 친구의 얼굴은 어두워 있었고, 점심시간에 왜 그런지 자초지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제과점 안에서 그녀를 기다렸는데, 그를 찾아온 그녀를 본 순간 깜짝 놀랐답니다. 왜냐면 그녀가 신발을 구겨신은 채 들어오더라는 것이죠. 제가 학교 다닐 때 그랬습니다. 모범생과 불량학생을 구별하는 일차적인 방법이 바로 신발을 어떻게 신고 다니냐는 것이었습니다. 껄렁한 불량학생들은 신발을 구겨신고 껄렁한 포즈로 걸어다녔거든요. 그런데 그녀가 신발을 구겨신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순간적으로 아 얘는 불량학생이구나, 껌좀 십었겠구나, 말로만 들었던 그 무서운 언니였구나, 그렇게 생각이 미치니까 어서 이 자리를 뜨야겠다는 생각밖에 없고, 빵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못한 채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우리들은 정말 잘했다, 별 탈 없이 돌아와서 다행이라며 그 친구를 위로했습니다. 그러자 그런 우리를 보던 한 친구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합니다.

"야, 넌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여친 만나서 구겨진 신발 말고는 보이는게 없더냐?"

순간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우린 비로소 이성을 찾았습니다. 그 친구 말마따나 그렇게 오랜기간 펜팔을 하며 서로에 대한 정을 키워왔는데, 그렇게 보고 싶어 만났는데 단지 신발 구겨신은 것 하나만 보고 그 여학생이 불량학생이라고 단정짓고는 그냥 도망치듯이 왔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마태복은 7장 1절에 너희는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비판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크리노"인데, 이 말은 잘못된 것에 대해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그런 비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관이 사건에 대해 결정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분리한다는 그런 뜻입니다. 즉 비판하지 말라는 말은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죠. 예수님의 이어진 말씀을 보면 너희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그거 내가 빼주겠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즉 내 눈이 잘못되고 왜곡되어 있는데, 그런 마음으로 함부로 판단하거나 사실을 결정하거나 그래서 정죄하거나 그 사람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알게모르게 그렇게 많이 행동하며 그런 문화 속에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런 왜곡된 판단을 하도록 강요당하기도 합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런 말을 지어내기도 합니다. 우리 개신교를 영어로 하면 프로테스탄트인데, 이 말뜻은 "반항아, 저항아"라는 뜻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개혁 대상자들이 개혁자들의 행위를 폄하하기 위해 그들은 두고 반항아라고 불렀던 것이죠. 요즘 우리 사회는 사회를 비판하거나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싸그리 "종북"이라는 말로 쓸어담아 부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어떤 말 어떤 행동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알 필요 없이 그저 그들은 종북주의자들이니까 잘못된 사람들이라는 왜곡된 시선을 갖게 만드는 것이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것에 현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작은 말, 작은 행동을 보고 전체를 가늠하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입은 차림새, 성적과 학력, 출신학교, 사는 곳, 종교, 그리고 국가를 두고 쉽게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것이죠. 그래서 입은 옷이 비싸고 명품이면 오 좀 사는데 그렇게 생각하다, 그 사람 공부도 잘해 하면 더 호감을 갖죠, 서울대 나왔어, 그리고 강남 살아, 변호사야 그러면 갑자기 엄친아가 되어버립니다. 거기다 교회 다녀 라고 하면 참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 정말 훌륭한 사람일까요? 일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그런 눈으로 사람 됨됨이를 쉽게 판단하거나 결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빵집_추억_연애옛날엔 이렇게 빵집에서 연애를 했었다고 하네요.



여기까지가 어제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내용 중 일부분입니다. 설교 말씀 듣다가 엄청 찔리더군요. 저도 제 눈에 들보가 있는데, 그 들보는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티끌은 잘 보는 것 같습니다. 제 관점에서 함부로 판단하고, 때로는 정죄하기도 하고, 그리고 멀리하기도 하죠. 그래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바른 눈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다음뷰추천과 댓글 부탁드려요^^



 

 

by우리밀맘마


연애소설의 심각한 폐해, 이래서 연애를 못하는구나

울 남편 연애할 때 쏟던 정성 다시 시작한 사연
프로포즈 이벤트, 만남을 부르는 남편 20년전 한 바닷가에서의 추억



신고

댓글

  • Favicon of http://yahoe.tistory.com BlogIcon 금정산2012.11.05 08:06 신고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신발을 꾸겨 신었다고 불량학생으로 단정 지을 수 없지만 그래도 첫 미팅인데 ㅎㅎ
    그런 태도는 좀 너무한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멋진 시간 되세요.
  • Favicon of http://funzy.tistory.com BlogIcon 도플겡어2012.11.05 09:15 신고 그래도 겉모습은 행동의 거울이잖아요.ㅋ
    요즘같은 때도 아니고 옛날이었으면...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중에 나이먹으면 얼굴에서 성격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할정도니ㅋ

    참 프로테스탄트의 어원은 영어가 아니라 독일어 입니다 ㅎ 좋은 하루되세욯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본 운동선수들의 기도세레머니

우리밀맘마2012.08.06 06:00

기독교인 입장에서 본 기도 세레머니

 

 

 

요즘 런던 올림픽에서 선전하는 우리나라 선수들의 소식 때문에 그나마 이 폭염을 견디며 사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여간 궁금한게 아닙니다. 그리고 어제 축구경기 같이 새벽 3시경에 하는 경기는 도저히 볼래야 볼 수 없는 최강의 시간대가 아닙니까? 눈이 뜨지자 마자 어떻게 되었을까? 스마트폰으로 결과 확인해본답니다. 또 어떨 때는 아파트 아래 위층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탄식 소리로 뭔 일이 벌어졌구나 꿈결에서 나름대로 생각을 하죠. ㅎㅎ

 

그런데 오늘 새벽은 함성 소리가 좀 이상하더라구요. 느낌이 비겼나 싶기도 하고, 정말 애매한 함성소리.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 핸폰을 열어 확인해보니 우리나라가 축구종가 영국을 그것도 영국 안방에서, 영국이 이길려고 하는 온갖 꼼수와 심판의 편판 판정까지 다 이기고 승부차기로 승리했다는 소식이 뜨네요. 너무 좋아 소리를 질렀더니, 울 큰 딸 징징거리며 우리방으로 들어옵니다.

 

"엄마, 알람 세 개나 맞혀놨는데 그냥 자버렸어요. ㅜㅜㅜ"

 

사실 이번 런던 올림픽 우리나라에는 시작부터 아주 큰 시련을 안겨준 대회입니다. 어떻게 이런 결정적 오심을 그것도 세번이나 우리나라에게만 일어나야 하는지.. MB 대통령 열씨미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며 코리아의 국격을 높였다고 동네방네 자랑해서 그런가 했더니, 이번 올림픽을 보니 동네북을 만들어논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체육행정의 수장이라는 사람은 우리 선수의 입장이나 명예는 생각하지 않고 은밀한 꼼수나 써서 국격을 더욱 얕잡아보게 하고 있지 않나 정말 한심한 생각도 들구요.

 

 

김재범의 기도다음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열심히 하고 메달을 딴 선수들, 그 선수들을 향해 종교적인 이유로 악플과 비판을 하는데, 너무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메달리스트들 중 기독교인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 중에 많은 이들은 경기를 마친 후 일명 "기도세레머니"라는 것을 합니다. 이전 차범근 축구 감독도 이 때문에 도올 김용옥씨와 설전을 벌였고, 박주영 선수의 기도세레머니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것도 유행일까요? 물론 그 이전에도 축구나 다른 경기에서 이런 기도 세레머니를 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더 많은 이들이 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이 기도세레머니에 대해 더 큰 관심이 집중되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기도세레머니에 대해 비판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크게 세 가지의 이유인 것 같습니다.

 

첫째는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특정 종교를 선전하는 행동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가?

 

둘째는 좋은 일이 일어날 때만 기도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하지 않는가? 종교인으로서 바람직한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다.

 

셋째는 하나님에게 오직 자기만 이기게 해달라고 그리고 이기게 해주었다고 감사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행동이 아닌가? 그런 것은 종교인이 가져야할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이전 차범근 감독님과 김용옥 선생님의 논쟁은 유명하죠. 간단하게 요약하면

 

먼저 김용옥님은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우리나라에서 공인이 특정 종료적 행위를 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 팀이 주님이 은총으로 이겼으면 우리에게 진 국가는 주님의 저주 때문에 졌냐는 질책과 함께 예수님도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하셨으니 기도하고 싶으면 골방가서 기도하라. 말끝마다 매 행동마다 주님의 은총을 들먹이는 행태는 기독교 신앙의 실천이 아니고, 한국 기독교의 병폐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해 차범근 감독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내 삶이고, 내가 경기전이나 후에 그리고 경기 중 중요한 순간에 기도하는 것 역시 내 생활의 습관이다. 또한 나의 기도가 응답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하는 것은 공인이기 이전에 개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며, 이것은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비난하기 보다는 이해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런 논지로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두 분의 이야기를 모두 읽으면서 두 분 다 참 생각이 깊구나 감탄하였습니다. 그런데 김용옥님이 하신 말 중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이겼으면 상대는 주님의 저주로 졌느냐?" 이 말은 사실 마음으로 많이 뜨끔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1995년 이 논쟁이 일어날 그 당시 우리나라 기독교는 승리주의라는 조금은 많이 기복적인 신앙관이 유행했더랬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남보다 잘되고 성공하면 그 경위야 어떻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이에 반해 우리가 제대로 못살면 그것은 하나님께 누를 끼치는 것이니,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하든 잘살아야 한다는 것이 주요 논지였습니다.

 

이것은 지금 기독교계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고, 지금은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많이 사라진 듯합니다. 김용옥님의 비판은 사실 그 당시의 정황으로보면 아주 정확한 비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김용옥님의 비판이 큰 힘을 얻게 된 것은 지금도 그러한 경향이 있지만 기독교가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것이 어느정도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배타적인 것은 꼭 기독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불교나 천주교 여타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더군요. 서로 자신이 진리라고 주장하기에 종교에서 어느 정도의 배타성은 어쩔 수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기독교인으로서 선수들이 경기를 하기 전이나 후에 기도하는 것, 또는 기도 세레머니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왜냐면 이런 신앙적인 행위는 경기를 하는 당사자에게 아주 큰 힘과 위로를 줍니다. 최선을 다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상황에서 하는 행동인 것입니다. 그것을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능력을 반감시키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기도 세레머니 외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이나 여러 신앙을 의지하며,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세레머니는 참 많이 있더군요. 외국 천주교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성호를 긋고 경기에 들어간다든지, 뉴질랜드 럭비선수들은 상대팀을 겁주기 위한 종교적인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구요. 저는 이런 행동들이 그리 눈에 거슬리지 않고 도리어 참신하고 좋아보이더군요.

 

 

 

 

 

이전에 제가 기도세레머니로 감동받은 적이 있습니다. 유도였던 것 같은데 이 선수 경기를 졌는데도 잠시 기도하더군요. 이기든 지든 자신이 믿고 있는 신에게 감사할 수 있다는 것도 참 좋은 일이라 보여집니다. 단 김용옥님의 말씀처럼 그것이 오직 나에게만 신의 축복이 있고, 상대에게는 저주가 있으라는 식의 기도라면 그것은 하나님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그런 분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자신의 신앙적인 행동을 간단하게 표현하는 것은 그저 저 사람은 저렇게 사는 사람이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인 답게, 불교인은 불교인 답게, 유교인은 유교인답게, 힌두교와 이슬람교인들은 그들 답게 살아가는 방식을 표현하는 것 이것도 민주사회의 건강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by우리밀맘마

 

 

 

신고

댓글

  • Favicon of http://heysukim114.tistory.com/ BlogIcon 저녁노을2012.08.06 06:12 신고 신앙가지고 왈가왈부할 건 못된다고 봅니다.
    보기 괜찮던데...노을이두 불교를 믿지만..
    생각하기 나름이죠...

    잘 보고가요
  • 강춘2012.08.06 06:22 신고 좋은 글에 추천 때립니다 ㅋ
    너무 더워료.
    하느님이 화 나셨나? ㅋ
  • 뜨개쟁이2012.08.06 06:26 신고 전 종교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이해해주고 받아주고...에 동의합니다..^^
  • Favicon of http://blog.daum.net/kangdante BlogIcon kangdante2012.08.06 07:53 신고 승패가 있는 경기에서
    자신을 이기게 해 달라는 이기적 기도보다는.
    아마도 최선을 다하게 해달라는 기도와
    감사의 기도가 아닐련지요.. ^.^
  • 윤중2012.08.06 08:02 신고 우리나라 선수들의 건투를 빕니다
  • 2012.08.06 08:29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chamstory.tistory.com/ BlogIcon 참교육2012.08.06 08:44 신고 어제 시간여유가 있어 밀양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종교가 삶에서 무엇인가를 묻는 그래서 갈등하고 또 회의하는 인간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 있더군요.
    신앙의 자유는 좋지만 글쎄요.
    저는 김용옥선생님에게 한 표 던지고 싶습니다.
  • Favicon of http://daddymoo.tistory.com BlogIcon 아빠소2012.08.06 13:05 신고 이렇게 종교적인 소신을 밝히면 있는 그대로 읽어주면 좋은데 꼭 딴지걸고
    시비거는 사람들이 댓글을 남길겁니다. 혹시 그렇다고해도 무시해버리세요.
    저도 기도 세리모니 하는거 나쁘게 보지않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고,
    본인이 정말 감사에서 나오는 기도를 드린다는데 그걸 왜 뭐라합니까. 다만
    맘마님 글중에 기독교가 배타적인 부분은 인정하시면서 불교나 천주교도
    그렇다고 하시는 부분은 동의하기 어렵네요. 불교는 애초에 타종교에 대해
    관심이 없고 -본인이 수양해서 득도하는게 목표라- 천주교도 타죵교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기독교는 천주교, 불교 모두 우상숭배라고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지요. 물론 그중에 깨인 목사님들은 종교화합을
    얘기하지만요~
  • Favicon of http://yypbd.tistory.com BlogIcon 와이군2012.08.06 16:49 신고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데 왜 개인적인 믿음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는지 의문이긴 합니다.
    선수들 선전 응원이나 잘 했으면 좋겠네요 ^^
  • 2012.08.06 20:08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omi3027@hanmail.net BlogIcon 엔학고레2012.10.25 20:36 신고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말씀없는기도 주문에 불과할뿐~~
    하늘이 이룬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도^^
    하늘에서 이루어진것이 무엇인지 먼저깨달아야겠습니다
    www.scj.tv
  • Favicon of http://blacktownobba.tistory.com BlogIcon 블랙타운오빠2012.11.07 14:20 신고 지든이기든 하나님께 감사하는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거같습니다! 나만이기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는 성경이 말해주는 기도가 아니겠죠? 세레머니를통해 이것을 이룬게 내힘이 아니라 주님힘으로 이루었다는 노력은내가했지만 노력하게 해주신이도 주님이라고 표시인거같아요.좋은글감사합니다~^_^
댓글쓰기 폼

영혼의 양식

성경도 섹시한 여성을 아름답다고 한다는데 이유는?

우리밀맘마2012.07.05 06:00


미의 기준, 섹시한 여자와 아름다운 여성, 성경이 섹시한 여자가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




 


 

울 교회 목사님, 어제 수요예배 시간에 아주 쇼킹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성경에서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이 나오는데, 성경에서 아름답다고 한 미의 기준에 대해 설명하시네요. 그런데, 어떻게 섹시한 여성, 목사님의 말로는 성적인 매력이 풍부한 여인도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한답니다.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구요, 그러면서도 왜 그럴까 궁금하기도 해서 울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옮겨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가 여자에 대한 일차적 관심은 미모인 것 같다. 성경에 많은 여성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 가장 관심을 끄는 사람들은 대부분 탁월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성경은 그런데 여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겨야 아름다운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현숙한 여인을 말하지만 그건 외모만이 아니고 그녀의 재능과 마음 그리고 신앙을 총 망라한 표현이다.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성경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는데, 과연  어떤 여인을 두고 아름답다고 할까? 

 

첫째, 피부가 고와야 한다. 그래서 유대여인들은 피부가 햇빛에 타지 않도록 조심하였다. 한 낮에는 일하는 것을 꺼려하였고, 아침과 저녁에 주로 일한 것을 볼 수 있으며, 아가서를 보면 적당히 그을린 모습에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둘째, 몸매가 고와야 했다. 당시 여인들이 살찌고 뚱뚱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왜냐면 그렇게 비만이 될 정도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계층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글래머스 한 여인을 아름답게 보았다. 아가서에 보면 내 누이의 가슴이 성벽처럼 보이면 어떡할까 걱정한다. 즉 나올 것은 나오고 들어갈 것은 적당히 들어간 그런 모습에 매력을 느낀 것이다.

 

 

 

오드리 햅번저도 이 여인처럼 늙었으면 좋겠습니다.

 

 

셋째 섹시한 여자를 아름답다고 하였다. 성경은 재밌게도 성적인 매력을 지닌 여인을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다윗이 유혹당한 밧세바이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이삭의 아내 리브가 역시 그렇게 성적으로도 매력적인 여인들이었다. 또한 왕비 에스더 역시 상당히 아름다운 여인이었는데, 왕의 마음이 동할만큼 성적인 매력이 풍부한 여인이었다. 특이한 것은 그녀는 그런 자신의 성적인 매력을 통해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해내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성적인 매력이 풍부한 여인을 아름답다고 할까? 그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우리도 그렇지만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이 가장 큰 일 중의 하나인데, 만일 성적인 매력이 없다면 그건 가문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적인 매력은 부부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고, 사랑을 불타오르게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요즘 다시 생각해봐야할 것 중 하나가 왜 여인들이 남의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가? 자기 남자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해야 하는 것, 이것이 성적인 매력을 지닌 여인을 성경이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이다.

 

 

넷째, 여인을 아름답게 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달랐다. 야곱은 삼촌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 중 라헬을 더 사랑했다고 하였다. 두 여인의 외모에 대한 설명을 보면 언니 레아에 대해서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땁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안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부드럽고 매력적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레아는 총기가 없는 그런 못생긴 여인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대부분 자매들은 서로 닮고 같은 유전자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둘 다 비슷하다. 라헬이 그렇게 곱고 이뻤다면 레아 역시 매력이 있는 여인이라 생각할 수 있다. 즉 야곱은 여성의 부드러움을 가진 그런 매력적인 여성보다는 눈에 띄는 화려한 외모에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총기있는 여인을 더 좋아했던 것이다. 

 

어떤 여인이 아름다울까? 유대에 완벽한 부인에 대해 이런 설명이 있다.

 

"부인의 은혜는 그의 남편을 기쁘게 하며 그의 분별력은 그의 뼈를 살지게 하느니라. 조용하고 사랑스러운 여인은 주님의 선물이다. 잘 다스려진 마음처럼 가치 있는 것은 없느니라. 수줍어하며 신실한 여인은 이중 은혜가 되느니라. 그의 절제하는 마음은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느니라. 태양이 떠오를 때는 하늘 높이 떠 있는 것처럼 좋은 부인의 아름다움은 그의 집을 사려할 때 나타나느니라"

 

 

 

 목사님 설명 중에 왜 자기 남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고, 남의 남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치장하고, 화장하느냐고 야단치시는데 조금 뜨끔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그러면 왜 남자들은 안그렇나요? 목사님은 사모님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얼마나 노력하시나요? 하는 그런 생각이 살짝 들더군요.

 

야곱이 아내 라헬을 보자 한 눈에 반해 그녀를 위해 그 집에서 7년을 무임금으로 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라헬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7년을 수일같이 여겼다고 하네요. 울 목사님 이 대목을 설명하면서 인생사에 아주 중요한 것들 중 남여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그 첫째가 아닐까 생각하며, 그렇게 사랑한 사람은 정말 인생의 행복을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그 가치를 너무 소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고 하시네요.

 

아~ 옛날 연애할 때가 생각납니다. 지금 내 남자, 제 마음을 얻기 위해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그 땐 그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지금 그 때를 떠올려 보니 제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오늘 저도 성경의 가르침대로 성적인 매력을 내 남자에게 한 껏 발산해볼까 싶네요. ㅎㅎ 모두들 행복하세요.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