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 엄마의 출산고통보다 10배나 힘든 고통, 아기가 자궁을 통해 세상에 나오는 고통 

 

임신과 출산, 여자가 가지는 최고의 특권은 바로 임신과 출산이 아닐까요? 결혼한 후 저도 임신을 하게 되고, 또 아기를 뱃속에 10개월을 두면서 이 녀석이 언제나 나오려나 그날을 기다렸답니다. 사실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기쁨반 걱정반이었습니다. 정말 내가 한 아이의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전 23살의 어린나이에 결혼했기에 그런 걱정이 더했답니다.

결혼한지 벌써 20년이 지났네요. 그런데 결혼한 후 지금까지 최고의 순간을 꼽으라면 아마 첫째 딸 우가(예명)가 태어난 그 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말해놓고 보니 다른 아이들은 좀 섭섭하겠네요. 그래도 어쩝니까? 첫째 딸에 대한 특별한 사랑은 있는 것이니까요. ㅎㅎ)

출산날이 다가오자 전 부산에 있는 친정으로 내려왔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이슬이 보이고, 어제 저녁에 자면서 간간히 배가 아팠다는 이야기를 하자 엄마는 바쁘게 출산준비를 하시며, 당시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산부인과로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급해서 찾았는데 그곳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첫째 아기는 오래 걸리는데 아직 멀었다며 진통이 10분 간격이 되면 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심 시간이라 병원근처 음식점을 찾아 일단 점심을 먹었습니다. 엄마는 돼지고기를 먹으면 아기가 쉽게 나오며, 힘이 있어야 한다고 참 많이도 먹게 하셨습니다. 식사 후 병원근처를 돌아다녔는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나자 10분간격으로 진통이 오더군요. 그래서 다시 병원에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간호사는 병실이 가득차 제가 있을 때가 없다며, 7분 간격이 되면 오라고 하네요.


엄마와 전 다시 병원주위를 걸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혹시나 출산시 위험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큰 병원을 다녔는데, 이날은 조금 후회가 되더군요. 그리고 몇 시간뒤 다시 병원을 찾으니 간호사는 첫 아기는 7분 간격이라도 오래걸린 다며, 5분 간격에 오라는 것입니다. 좀 짜증나려고 했지만, 기쁜일이니 참아야죠. 그래서 또 몇시간을 걸어 다니다 5분 간격이 되어 병원에 갔더니 이번에는 2분 간격에 오라고 하네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땐 저나 엄마 모두 너무 착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바보처럼 순해빠졌다고 해야 하나요. 착한 두 모녀는 안되겠다 싶어 택시타고 다시 집으로 왔습니다. 이런 사정 이야기를 들은 언니는 안타까워 하면서도 무엇이 재미있는지 계속 웃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만히 있으면 배가 더 아프게 느껴지니까, 우리 고스톱 치자."


고스톱을 잘치진 못하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로 엄마, 큰언니, 나 그렇게 세모녀가 고스톱을 치기 시작했답니다.

"설사다. 으악 피박이여~ 흔들었당께요..ㅎㅎㅎ."


한참 재밌게 고스톱을 치는데, 소문을 듣고 큰오빠와 올케언니도 찾아왔습니다. 고스톱의 재미에 빠져 웃고 있는 나를 보고 오빠는 이렇게 말하네요.


" 니 웃는 것 보니, 오늘 아기 낳기는 힘들겠다. 병원가지 말고, 푹자고, 내일 가라."


'오빠야 그게 아이다~'

사실 전 그때 배가 많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응원해 주는 가족들, 그리고 머지 않아 태어날 울 아기를 생각하니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웃는 내 모습을 보는 오빠는 아직 그리 아프지 않나 보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1-2시간 쯤 지났을 때 2분간격이 되었고, 난 내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힘이 들었으며, 구토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은 본 엄마가 놀라서


"어여 택시타고 병원 가자."


다급해진 엄마는 저를 택시에 태워  병원에 왔고 시간은 저녁 10시가 되었습니다. 전 연이어 계속 구토를 하며 휠체어에 실려 관장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아기를 낳으려면, 순서가 관장실, 대기실, 분만실이잖아요. 


엄마의 마음두 아이를 품에 안고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

 



누군가 아기가 나오려면 세상이 노래져야 한다더니, 진통이 1분간격, 30초 간격, 20, 10, 5초 간격이 되자, 쉴세없이 진통이 이어집니다. 진통이 없는 그 몇초 간이 얼마나 좋은지, 다시 진통이 계속되자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하지만 죽을 것 같은 진통에 무너져서는 안되지. 난 배 속에 있는 아기에게 진통이 올 때마다 마음으로 소리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아가 힘들지. 엄마가 도와줄께. 힘내. 그래 우리 아기 아주 잘하는구나. 엄마는 너를 정말 보고 싶단다.


그런데, 이렇게 생사를 오가고 있는 순간, 저희 엄마는 대기실에서 또다른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보호자분."


엄마는 아기가 태어났다는 이야기 인줄 알고 너무 기뻤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기가 뱃속에서 태변을 눴습니다. 빨리 제왕절개를 하지 않으면 아기가 죽을수도 있습니다."

"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수술을 하시겠습니까?"


"예."


"그럼 여기 동의서를 써 주세요."


"불쌍한 우리 아이. 이를 어째", 엄마는 울먹이며 동의서를 작성한 뒤 걱정스럽고 안된 마음에 눈물을 짓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을 알지 못한 저와 뱃속의 아기는 있는 힘을 다해 서로를 도우며, 세상을 향한 몸부림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간호사님, 아기가 나오려고 그래요."


저의 말에 간호사는 다급한 상황에 놀랬는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이내 곧  몇명의 사람이 들어 오고, 서로 호들갑을 떨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내 우리 아기는 무사히 제왕절개를 피해 간발의 차로 이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사실, 저처럼 아기 낳기 위해 병원 갔다가 3번의 거절을 받은 사람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때는 병원도 정말 야속했습니다. 다시는 이 병원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우습게도 둘째와 넷째 모두 이 병원에서 다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막내를 보면 이런 어려웠는 순간이 도리어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그때, 만일 5분간격에 제가 병원을 찾았더라면 전 제왕절개를 해야 했을 것이며, 그렇게 했다면 지금 너무나 귀여운 우리집 귀염둥이 막내는 낳지 못했을 것입니다. 


엄마는 첫아기를 낳을 때, 제가 그렇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전 그리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네요. 그것은 아기가 태어난다는 너무나 큰 기쁨이 있었기에 내몸이 겪는 아픔이 작게 느껴졌기 때문이죠.


아기가 태어났을 때 우리 아기는 부어서 눈도 보이지 않고, 얼굴도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엄마의 출산의 고통보다 아기가 세상에 나오려고 하는 고통은 출산의 고통 10배나 된다고 합니다. 너무 고생했는지 그 모습이 꼭 ET 같았습니다. ㅋㅋ 울 남편 울 아가의 얼굴을 보고 놀란 토끼눈을 하더군요. 내심 손자를 기대했던 할머니는 손녀라 섭섭하신지 울 아기를 보고 한마디로 하시더군요. 


"모개다 모개."


모개는 무슨. 세상에서 제일 예쁜데.... ㅎㅎㅎ







 by우리밀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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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밀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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